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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강 (제6장) 다윗의 사명
이드보라  2018-02-08 22:09:10, 조회 : 176, 추천 : 40

제 6 장 다윗의 사명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삼하 7:8-12



지난 시간에는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다윗의 의도가 가진 문제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께 좋은 것을 드리고자 했던 다윗의 열정은 높이 평가하나, 하나님을 인간의 수준으로 생각했던 것은 잘못이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권자이시다. 그분의 선하고 영원하신 뜻에 따라 세상을 다스리고 섭리하는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완성되지 못한 안식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성전 건축에 대한 잘못된 신관 때문에 그의 계획을 기각하셨을까?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하나님은 누군가가 실수하고 잘못했다는 이유로 모든 기회를 박탈해 버리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신 분이다. 그리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다. 우리의 잘못에 대해서 고치시고 다듬으시어 하나님의 선한 바를 이루게 하신다.

그렇다면 다윗에게 성전 건축이 허락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우리는 성전과 안식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서 알아본 바 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은 안식의 개념과 상관된다. 태초의 에덴동산도 안식의 장소이자 성소의 의미를 가졌었다. 다윗의 성전도 그의 시대에 안식이 이루어진 것과 관련이 있다. 성전은 하나님의 신적 왕궁을 뜻하며, 하나님의 통치 하에 있는 세상은 참된 안식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하 7장 1절과 9절에서 분명히 다윗의 시대에 평안이 있었음을 말씀한다. 1절과 9절에서 평안, 즉 안식을 말씀할 때에는 분명히 완료형 동사를 썼다. 그런데 그 뒷구절인 11절의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를 보면 미완료형의 동사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평안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미래에 끝날 것을 의미한다. 즉 다윗이 현재 누리고 있는 평안은 절대적인 평안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미래에 이루어질 완전한 안식이 있고, 그 안식에 비해 현재의 안식은 불완전한 안식이라는 뜻이다.

다윗은 많은 정복을 이루었지만 그의 안식은 완전하지 않았다. 그가 속한 시대는 전쟁을 더 치루어야 하는 특수한 시대에 속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그가 성전을 지을 수 없었던 주된 이유였다.


- 전쟁 시대에 속한 다윗


왕상 5장 3절을 보자. “당신도 알거니와 내 아버지 다윗이 사방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들을 그의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 이 말은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위해 두로 왕 히람과 협상하는 중에 한 말이다. 솔로몬은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이유로 적들과의 전쟁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역대상 22장 7-10절에는 다윗이 솔로몬에게 직접 한 말이 기록되었다.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찌라 저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저의 아비가 되어 그 나라 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

다윗의 피흘리는 전쟁은 하나님의 뜻에 반대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 전쟁을 직접 이끄시고 적들을 물리치시며 승리를 가져다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성전을 짓지 못하는 이유로 전쟁에서 피흘린 것이 언급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윗의 허물과 문제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처한 시대적 특수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다윗은 전쟁하고 피를 흘려야 하는 시대에 속한 사람이었다. 평화와 안식의 시대에 속한 성전 건축의 과업은 그에게 주어진 임무가 아니었다는 말씀이다. 성전 건축은 전쟁과 피의 시대를 마치고 솔로몬 시대에야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솔로몬은 평화를 뜻하는 히브리어 샬롬에서 온 이름이다. 그 이름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평화의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전쟁의 시대에서 하나님은 전장에 선두로 서신다. 성경은 하나님을 용사라 칭하기도 하고(출 15:3),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고도 하고(삼상 17:47), 전쟁에 능한 여호와라고도 한다(시 24:8). 군대 행렬에서 하나님의 궤는 늘 앞에 앞장서 갔고 전쟁을 이끄셨다. 다윗의 시대에 용사들은 전투태세에 들어간 자들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궤도 성전에서의 안식이 아닌, 이동이 편리한 장막에 머물러야 했다. 이 전쟁의 시대가 끝나야만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며 하나님의 궤는 성전에서 안식을 얻고,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평화롭게 통치하시는 복된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 교회의 사명


시대마다 각자에게 주어지는 역할과 사명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고, 여호수아는 그들을 가나안 땅에 정착시키는 일을 했다. 다윗은 정복전쟁을 완수하여 왕국의 기초를 쌓았고, 솔로몬은 전쟁을 마치고 평화로운 왕국의 토대위에 성전을 건축함으로써 신정국가의 이상을 구현하였다. 이렇게 볼 때, 모세와 여호수아의 역할은 다윗과 솔로몬의 역할에서 더욱 발전된 형태로 나타난다. 모세의 시대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광야로 이동하는 시대였고, 다윗의 시대는 약속의 땅에서 안식이 이루어지도록 전투한 시대였다. 또한 여호수아의 시대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시대였고 솔로몬의 시대는 그 땅에서 안식을 누리는 시대였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떠한 시대적 사명이 있을까? 이것은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사명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염두해 두고 엡 2장 19-22절의 말씀을 보자.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건물마다(에베소 교회의 각 성도들마다=각각의 성도들마다) 서로 연결되어 주 안에서 하나의 큰 성전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씀이다. 성도들 각자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또한 그들이 모여 연합을 이루는 일이 곧 그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사명이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장소이다. 고로 성도들이 성전의 모습을 갖춘다는 것은 거룩해진다는 의미이다.

고전 3장 16-17절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지 말고 거룩히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사도바울의 경고를 명심해야 한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했지만 탐욕과 우상숭배를 일삼는 타락상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는 바로 성전의 파괴였다. 바울은 이 사실을 염두해 두고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 영광스러운 교회


성전은 영광스러운 곳이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성전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어 영광스럽게 되어야 한다.
출 40장 34-35절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이 세워졌을 때의 상황을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다”고 말씀한다. 또한 왕상 8장 10-11절에서 성전건축후에 법궤가 지성소에 안치되었을 때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했다”라고 말씀한다. 이 뿐만 아니라 사도요한은 요 1장 14절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하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라고 말씀한다.

성막이 건설되었을 때에도, 솔로몬 성전에 법궤가 안치되었을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할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구약의 성전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했던것과 마찬가지로 성전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또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했다는 것이다. 성전과 하나님의 영광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교회의 성도가 성전의 모습을 갖추면 영광스럽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머물 그 날까지 소망을 가지고 달려갈 수 있다. 온전히 완성되는 그 날이 오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은 완성된 성전 가운데 충만하게 될 것이다.


- 한국 교회의 현실


영광스러워야 할 교회와 성도가 오늘날 오히려 수치를 당하는 일이 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교회의 사명, 즉 하나님이 거하실 거룩한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것을 등한시한 것이 아니겠는가! 신자의 이름을 가지고 우상숭배를 하고 탐욕을 좇는 오늘날의 모습은 솔로몬 성전이 무너질 때와 같이 위험한 수준에 있다.

선지자 에스겔 시대는 세속화의 상징인 바벨론에 의해서 성전이 파괴되는 것을 목도한 시대였다. 에스겔 선지자는 부름받은지 육년 째 되던 해에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가는 것을 환상가운데 보게 된다. 에스겔서 9-11장에는 지성소에 머물던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의 문지방으로, 다시 성전의 동쪽 문으로, 예루살렘 동편 산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일은 겔 8장 6절에서 말씀하는 “그들이 여기에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 시대의 한국교회에 커다란 경고로 들려주시는 말씀이다. 교회의 신자들은 이제 본연의 사명, 하나님의 거하실 거룩한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 가운데 다시 임하실 것이다. 에스겔서가 이것을 보여준다. 에스겔서 43장-44장은 떠나갔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다시 동쪽 문을 지나 성전 안으로 이동하여 마침내 성전 안을 가득 채우는 광경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성전이 정화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의 한국 교회를 밝히 비추는 길을 말씀을 통해서 볼 수 있다. 교회가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되찾고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영광스러운 곳이 되기를 바란다.




(연구 문제)
1. 다윗의 시대에 성전을 허락하지 않은 원인은 무엇인가? 역대상 22:7-10의 말씀과 관련하여 설명해 보라.

2. 오늘날 교회와 성도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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