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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강 (제4장) 성전과 법궤
이드보라  2018-01-25 21:15:48, 조회 : 58, 추천 : 3

제 4 장

성전과 법궤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 (삼하 7:2-3)



지난 3장에서 성전은 하나님의 왕궁이라 했다. 다윗이 성전을 짓고자 했던 것은 인간 왕인 다윗 자신이 신적인 왕이신 하나님의 청지기이자 대리인이며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또한 사무엘서 저자가 성전 건축과 안식을 같이 언급한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안식을 가져온다는 관점을 반영한다.


- 하나님의 왕좌, 법궤


성전이 신적인 왕궁이라면 하나님은 그 곳에 어떤 방식으로 거하셨을까? 당시 고대 근동 사람들은 나무나 돌 등으로 신상을 만들어 신성시했다.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 신전에는 사람과 동물의 혼합체 모양 등의 신상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만큼은 달랐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신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신상의 형상 속에 하나님을 제한하고 왜곡하는 결과가 필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전능자요 초월자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형상화 할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의 성전에는 하나님의 신상이 없었다. 사람들이 생각에 신상이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지성소에는 그룹들과 법궤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성전에 거하셨을까?

성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입구 앞부분에 성소(거룩한 장소)가 있고 뒷부분에 지성소(지극히 거룩한 장소)가 있다. 성전 전체가 물론 거룩한 장소이지만 그곳은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지성소에 두 그룹 천사들에 의해 호위를 받는 ‘궤’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궤’에 대한 설명은 출 25:10-22에 나타난다. 궤는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길이는 약 125센티미터, 너비와 높이가 모두 약 75센티인 작은 나무상자였다. 순금으로 도금을 한 상자 위에는 순금으로 만든 덮개가 있었는데, 이를 가리켜 ‘속죄소’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씩 그 곳에 짐승의 피를 뿌려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속죄했기 때문이다. 이 속죄소 양쪽 끝에는 금으로 된 그룹이 하나씩 만들어졌으며, 이들은 날개를 높이 펴고 서로를 마주 보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출 25:22에서 하나님은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고 말씀하였다.

궤 위의 속죄소는 하나님과 대제사장이 만나는 장소이며, 이스라엘을 위한 모든 명령의 말씀을 주시는 곳이었다. 한 마디로 궤와 궤 위의 속죄소는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계시가 특별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한 가지 더, 궤는 하나님의 왕좌로 간주되었다. 삼하 6:2에 따르면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룹들은 궤 위의 속죄소와 하나로 연접해 있는 그룹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셨다는 말은 명백히 궤 위의 속죄소가 하나님의 왕좌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속죄소 밑의 궤는 어떠한가? 대상 28:2은 궤가 하나님의 발등상, 곧 하나님의 발판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궤 위의 속죄소는 하나님이 앉으시는 왕좌요, 속죄소 밑의 궤는 왕좌에 딸린 발판이라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궤는 하나님이 왕으로 좌정하셔서 백성들을 통치하시는 왕좌의 성격을 갖는다.

성전으로서의 기능에 있어서 궤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왕궁에 왕의 옥좌가 없으면 왕궁의 의미가 없듯이 궤가 없으면 성전은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 궤가 있기에 성전이 하나님의 신적인 왕궁으로서 의미를 얻는다.

삼하 7:1-3은 다윗이 성전 건축을 계획했다고 기록한다. 그런데 바로 앞서 6장에서 다윗은 ‘바알레유다’에서 예루살렘으로 궤를 운반하는 자로 묘사한다. 궤를 먼저 운반하고 성전 건축을 계획하는 것을 볼 때, 다윗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안치하기 위해서 성전을 짓고자 했다.


- 법궤의 운반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다윗은 바알레유다(기럇여아림의 다른 이름)에서 예루살렘으로 궤를 운반해 오고자 했다. 다윗쪽의 잘못으로 운반에 실패했고 궤는 석 달동안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머물렀다. 석 달 후에 다윗은 다시 궤를 예루살렘으로 메어 올리게 된다.

삼하 6:13절에 따르면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행할 때마다 다윗이 제사를 드렸다. 궤가 하나님의 왕좌라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다윗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자신이 섬기는 왕을 경배하며 맞이하는 의미에서 이러한 행위를 했던 것이다. 또한 다윗은 희생제사를 드릴 뿐만 아니라 힘을 다해 춤을 추었다. 여호와 앞에서라고 기록했는데 그것은 ‘궤’앞에서였음을 의미한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로 임하시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럽고 기뻐서 그는 뛰놀며 춤을 추었다. 다윗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소리를 울렸다.


- 성육신의 그림자


마 21:4-5에서 기록하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보자. 나귀를 타신 예수님의 행렬은 자기 백성에게로 임하는 왕의 행렬이었다. 따르던 무리들도 나뭇가지를 길에 펴고 소리 높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였다.(마 21:8-9)

다윗과 그의 백성들이 신적인 왕이신 하나님의 임재앞에서 제사와 춤으로 환호하는 것과 아주 흡사한 모습이다. 이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취하시고 세상에 오신 분, 하나님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의 이름은 어떠한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의미의 ‘임마누엘’이 아닌가? 즉 다윗 시대에 법궤와 더불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하나님은 때가 이르자 직접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유비의 그림으로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성육신은 하나님의 궤가 의미하는 것의 성취이며, 하나님의 궤는 성육신의 그림자라는 것이다.

또한 요 1:1-3은 성육신 이전의 성자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태초에 계셨던 말씀, 하나님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다. 영원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셨고 하나님 자신이셨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사건이 성육신 사건이다. 이것을 염두해 두고 궤와 연결시켜 보자. 출 25:16, 21에 따르면 궤 안에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증거판이 들어있었다. 이것은 시내산에서 주신 돌판이다. 증거판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위에 기록된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증거와 증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신명기 9장에서 이 돌판은 언약의 두 돌판이라고 불리는데, 그 위에 기록된 내용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 관계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궤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돌판이 있던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자기 백성 가운데 임하신 성육신 사건과 연결되는 놀라운 유사성을 가진다. 이것은 성육신의 사건이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구약 성경에서 오랫동안 예시되었던 일임을 알 수 있다.

다윗이 성전을 짓고자 한 것은 하나님의 왕좌인 궤를 안치하기 위함이었고 성전 건축 후에는 궤와 더불어 성전에 임하시며 통치하실 하나님을 기대했다. 다윗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왕국은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그림자로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 말씀에 의한 통치


하나님의 통치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달되는 곳이자 하나님의 말씀이 보관되는 곳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 방식을 알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출 25:22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명령할 모든 일을 이르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기 백성과 세상을 통치하신다. 하나님이 아닌 누군가가 자신을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고 자신이 펼치는 법의 원리로 다스릴 때 수많은 실패의 결과들을 가져온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이집트의 파라오 통치는 백성들에게 압제와 착취와 굴종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안식을 목적으로 하시고 자유와 기쁨과 평강을 주시는 통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과 빛이라고 요한복음 1장에서도 가르치지 않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지배하는 곳에는 생명의 역사가 있고, 지혜와 총명이 되살아나고, 정의가 강같이 흐르는 평화와 안식의 세상이 이룩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서는 그 어디에도 참된 평화와 안식은 있을 수 없다. 다윗에게도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 가장 위대한 일이었다.


- 오늘을 위한 함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동일하게 말씀으로 자기 백성을 다스리신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은 말씀에 의한 통치의 개념을 뚜렷이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성령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주신다고 요 14:25-26은 말씀한다. 신약 성경의 기록도 성령 하나님이시오, 그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것도 성령 하나님이시다. 또한 성경을 읽고 깨닫는 것도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시다.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도 우리를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 나타난 신정국가의 이상은 신약 시대의 성육신 사건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온전히 성취되었다. 이제는 돌판에 새겨진 말씀이 아니라 말씀의 본체이신 분이 오셨고, 사람의 손으로 지어진 성전 대신에 성령이 임하시는 육체의 성전에 거하신다. 그럼으로써 신정국가의 실체가 드러나고 살아서 활동하는 생명의 힘이 나타나게 된다.

지금, 이 왕국은 자신의 지상 사역을 마치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말씀’에 의해 유지되고 확장되고 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께로부터 왔으며 구약 성경과 함께 교회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교회와 성도는 이 말씀의 통치를 받는 가운데 영원한 안식의 나라로 인도함을 받는다. 성도들은 육의 마음판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들로써 우리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의 통치를 받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연구 문제)

1. 하나님께서는 이방신들과 달리 어떠한 방식으로 성전에 임재하시는가?

2. 하나님의 궤가 예루살렘에 입성한 사건과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사건은(마태복음 21장) 어떤 유사성을 갖는가?

3.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어떤 방식으로 통치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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