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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강 (제2장) 다윗의 안식
이드보라  2018-01-04 11:34:43, 조회 : 188, 추천 : 36

2장

다윗의 안식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삼하 7:1)

다윗 언약을 소개하는 삼하 7장은 다윗 시대에 이루어진 안식에 대한 말씀과 함께 시작한다. 1절에 ‘평안히 살게 하다’라는 말은 ‘안식을 주다’는 ‘헤니아흐’를 번역한 말이다. 신약 성경에서도 ‘안식’은 예수님의 주된 관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또한 히브리서의 기자도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관심이라고 말씀한다.(히 4장 참조)


- 안식을 향한 역사


‘안식’에 대한 신약의 말씀들은 구약에 뿌리를 두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도 구약-여호수아의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안식’의 문제가 처음 다뤄지고 있는 것은 창세기 2장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에덴 동산에 ‘두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헤니아흐’이다. 다시 한번 번역해 보자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서 안식을 얻게 하시고” 이다.

창세기 5장에서 나오는 ‘노아’의 이름도 어원적으로 ‘쉬다’, ‘안식하다’라는 의미의 ‘누흐’라는 동사에서 왔다.

아담 타락 이후에 땅이 저주를 받고 안식이 사라진 가운데 노아의 등장은, 안식의 향유를 위해 의도된 복이 수고롭게 하고 고생스럽게 하는 저주로 변해 버린 일과 노동의 참된 가치가 회복되는 과정의 하나로써 의미를 갖는 구속사적인 사건에 해당한다.

창 19:16절에서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때 천사가 롯과 그 가족을 심판에서 건져 안전한 곳에 둔 것을 묘사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고, 수 1:13과 수 21:44에서도 하나님께서 안식을 주셨다고 말씀한다. 여호수아서에서 ‘헤니아흐-안식’는 책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있다. 여호수아의 저자는 가나안 정착을 안식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했다는 의미이다.

다시 다윗 언약으로 돌아가보자. 삼하 7장의 다윗 언약에도 구속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헤니아흐’ 곧 ‘안식’이 등장한다. 가나안 정착만큼이나 구원역사에서 중요한 단계인 다윗 언약의 체결을 다루는 까닭이다.

에덴동산의 아담, 노아의 탄생,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서 롯의 가족, 정복전쟁 당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 왕국과 관련하여 ‘헤니아흐’ 즉 ‘안식을 주다’는 말이 사용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선지자들의 글에서도 미래에 도래할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면서 같은 단어를 사용하였다. 구약성경은 이와 같이 창조로부터 시작된 세상 역사가 안식의 실현을 향해 진행한다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역사의 출발점인 창조 때에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여섯 날 동안의 창조가 일곱째 날의 안식으로 완성되는 것은 창조 자체가 안식을 목표 삼는다는 것이다. 창 2:1-3에서는 ‘헤니아흐’ 대신 ‘샤바트’라는 단어로 쓰였다. 그러나 이 창조기사를 근거해서 안식일을 설명하는 출애굽기 본문에는 ‘헤니아흐’와 같은 어근의 ‘야나흐’가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안식의 개념과 연결된 하나님의 성품은 매우 선하시다. 하나님은 세상이 고통과 신음속에 있기를 원치 않으시고 모든 만물이 평화롭고 안식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쉼을 주시는 분이요, 안식을 주시는 선한 분이시다.

하나님이 원하는 안식은 아무일도 하지 않는 그런 개념의 안식이 아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그런 안식을 얻도록 지음 받지 않았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에덴 동산에서 안식을 얻게 하시고)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아담은 에덴에서 동산을 지키고 땅을 경작하는 일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즉 안식과 일은 같이 간다. 일 없는 안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의 종말에 나타나게 될 안식도 마찬가지이다. 그 때에도 구원받은 성도들은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하게 될 것이다. 태초에 아담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을 한 것과 같이 말이다. 그 일이 어떤 것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계 22:5에서도 성도들이 종말의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라고 말씀한다. 이는 종말의 날에 구원받은 성도들이 세상의 처음에 아담이 수행했던 일과 같은 성격의 일을 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 다윗 시대의 안식


다윗에게 안식이 주어졌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종말에 완성된 모습으로 나타날 안식과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 정치적 틀 안에서 경험되었다는 점에서 독특성을 가진다. 다윗이 경험한 안식은 ‘적들로부터의 안식’이다. 블레셋과 아말렉, 에돔과 모압, 암몬, 그리고 시돈과 아람에게 둘러 싸였던 상태였다. 특히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법궤를 빼앗아 가고(삼상 4장) 성소를 파괴하였고(시 78편, 렘 7:14-15) 이스라엘 지역안에 군대를 주둔하기까지 했다(삼상 10:5). 사울 시대에는 연합군을 결성해서 이스라엘을 침략하였고 요나단과 사울의 아들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전쟁의 패배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노예로 잡혔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대에 다윗이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로 등장하였다.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고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었다. 다윗은 여부스 사람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블레셋과 이방민족을 정복했다.(삼하 5:17-25)

다윗의 정복활동을 더욱 큰 그림으로 이해해 보면, 하나님께서 약속에 따라 주신 가나안 땅을 위해 정복전쟁을 펼쳤던 여호수아의 시대에도 모두 몰아내지 못하고 남겨두었던 일곱 족속들을 마침내 다윗이 정복하고 그 땅에서 안식이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다윗은 여호수아가 시작한 정복전쟁을 종결지은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하나님이 이루신 일


다윗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삼하 7:1)

원문의 뜻을 살려 번역해 보면

“다윗이 자기집에 거하고 여호와께서 주변에 있는 그의 모든 적들로부터 안식을 주셨을 때에”

이다.
적들을 물리치고 그들로부터 안식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다윗이 군사들과 함께 직접 전장에 나가서 싸웠지만 모든 싸움의 현장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실질적으로 승리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삼하 5:17-25에서 다윗은 전쟁에 임하기 전에 하나님께 묻는다. 하나님께서는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고 대답하셨다. 전쟁의 시작과 끝은, 승리의 일은 하나님이셨다. 다윗은 전쟁에 승리하고서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고 고백했다. 그 후에 블레셋이 다시 쳐들어왔을 때에도 하나님이 개입하셨다. 이 때에 알 수 있는 새로운 사실은 하나님이 전쟁 지휘관과 같이 직접 전략(뽕나무 수품 맞은편에서 기습)을 기획하시고 공격 신호(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를 보내시며 앞장서 나아가 적을 무찌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지휘와 행하심으로 다윗은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땅에 안식이 이루어진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

이 사실이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성도들에게도 에워싸고 달려드는 온갖 적들이 있다. 성도들의 힘으로 적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다윗에게 승리와 안식을 주신 분이 다름 아닌 하나님인 것과 같이 성도들에게도 승리와 안식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 안식과 여호와의 전쟁


다윗은 왜 이방민족과 싸워야만 했을까? 그들과 공존하고 평화를 누리며 안식을 찾을 방도는 없었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창조의 일곱째 날에 대한 기사를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발견된다. 창조의 6일은 모두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몇째 날이라’는 진술로써 시간적 경계가 뚜렷이 구분된다. 그러나 창조의 일곱째 날은 그런 경계가 없다. 6일동안 창조를 완성하고 안식하는 날인 일곱째 날은 시간적으로 무한하다는 뜻이다. 안식의 날이 끝없이 지속되도록 의도되었다는 말이다. 창 2:15도 이를 입증한다. 에덴동산에서의 안식은 창조의 제 7일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창 3장에 가면서 변수가 나타났다. 하나님께 적대적인 세력(그 기원에 대해서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베드로후서와 유다서를 통해서 타락한 천사와 관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 인간에게 접근했고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게 되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신 안식의 삶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안식이 사라지고, 노동과 수고와 고통이 생겨나고 질병과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리고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갈등과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갈등과 싸움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과 가나안 일곱 족속들과의 싸움이다. 창세기 3장 이후에 계속되고 있는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백성과 하나님의 대적 세력들간의 싸움이다. 시편 83:1-8을 보아도 이스라엘을 향한 이방민족의 적대감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그들이 가진 깊은 적대감의 배후에는 하나님께 적대적인 세력이 역사하고 있다. 시편 기자는 그들을 ‘주의 원수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삼하 7:1에서 다윗의 원수라고 언급되는 이방민족들은 사실상 여호와의 원수들이다. 가나안의 모든 민족들은 하나님 대신 우상을 숭배하고 가증한 종교행위를 하는 자들이었다.

다윗이 이방민족과 싸워야 했던 이유는 정치, 경제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의도하신 안식을 방해하는 대적의 세력들과 싸우는 선한 동기였다.


- 남아 있는 전쟁


오늘날의 현실은 어떠한가? 이 세상은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세력들로 가득차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교회와 성도가 그 세력들에 지배를 받고 편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말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와 안식은 두 가지 국면으로 보아야 한다. 그 중 한 면으로 볼 때 사실상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신자들은 하나님께 적대적인 모든 세력들에 대해 이미 승리한 자들이다.(Already)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을 위협하는 모든 적들, 안식을 빼앗아간 사단의 머리를 단번에 부숴뜨리셨다(창 3:15).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제 십자가의 승리 안에서 안식을 누린다. 하지만 모든 적들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Not yet)은 엄연한 현실이다. 마지막 심판 날이 이르기까지 적들은 치명적인 파괴력을 잃기는 했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래서 신자들이라도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하고 싸움이 요구된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아직 남아있는 이 싸움에서도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승리를 안겨 주실 것이다. 다윗 시대에 사방의 적들로부터 승리하시고 안식을 주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친히 전쟁의 지휘관이 되시고 교회와 함께 하신다.

우리는 교회와 성도들을 둘러싸고 있는 적들, 하나님께 적대적인 세력들과 더불어 담대하게 싸워야 한다. 혈과 육이 아니라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싸워야 한다.(엡 6장) 이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할 때 비로소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안식에 들어가는 복을 얻게 될 것이다.(히 4:11)

이번 장에서는 안식과 언약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다윗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이 안식 안에서 구체화되고 현실화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다윗 사이에서 안식이 전제되지 않은 언약 관게란 생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다윗 언약은 안식의 토대위에 세워지며, 안식을 지향하는 언약이다.  




(연구 문제)


1. 다윗 시대의 전쟁과 안식은 무엇을 말하는가?

2. 현 시대의 전쟁과 안식은 무엇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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