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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 강 (제17장) 다윗의 등불
이드보라  2018-04-19 19:28:44, 조회 : 212, 추천 : 58

제 17 장
다윗의 등불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왕 에윌므로닥이 즉위한 원년 십이월 그 달 이십칠일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고 그가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양이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왕하 25:27-30



종교개혁의 유산을 이어받는 우리 개혁교회의 중요한 신앙 사상 가운데 하나는 ‘언약의 통일성’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언약의 내용들이 상충되지 않고 서로 조화롭게 통일성을 갖는다. 구약과 신약이 통일을 이루고 구약의 여러 언약들이 일관성을 잃지 않는다.


- 사무엘서와 다른 열왕기


그런데 열왕기를 읽으면 사무엘하 7장의 내용과 조화되지 않는 듯한 내용이 나타난다. 열왕기상 2:4에서 다윗이 솔로몬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고 전했다. 다윗의 왕위가 지속되느냐 아니냐의 여부가 다윗의 자손에게 달려있는 것처럼 보이는 말씀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열왕기상 6:11-13에서도 나타난다.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이르되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저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또한 열왕기상 9:4-7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

이 말씀들은 사무엘하 7장의 다윗언약과 사뭇 달라보인다. 사무엘하 7장에서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일방적으로 약속을 선사하셨다. 이렇게 열왕기와의 차이를 보이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떤 사람들은 시대에 따른 다윗 언약의 변화를 주장한다. 열왕기의 내용이 기록될 당시에는 이미 다윗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한 상태이므로 다윗 왕국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사무엘서의 내용에 수정이 불가피졌다고 주장한다. 왕들의 행동에 따라서 왕국이 멸망할 수 있다는 설명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마다 다른 옷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진리의 내용은 달라지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은 시대마다 상황마다 자신의 말씀과 약속을 바꾸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열왕기가 아무리 왕국의 멸망을 왕들의 책임에 돌린다고 해도, 결국 이러한 사상은 하나님을 신실하지 못한분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 강조점의 차이


우선 사무엘하 7장에서도 율법 준수의 필요성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다. 왕이 범죄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징계의 경고를 말씀하신다.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 하나님은 징계하신다.

다윗의 역사에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사건은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을 어기는 범죄였다. 또한 우리아를 잔인하게 죽인 일은 ‘살인하지 말라’는 제6계명을 어기는 범죄였다. 지난 시간에도 살핀 바와 같이 다윗은 이 죄로 인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무서운 징계를 받았다. 아이가 죽고, 자녀들 가운데 성폭행과 살인이 일어나고,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했다.

다윗의 범죄사건은 율법 준수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충분하게 강조하고 있다. 열왕기와 사무엘하 7장의 차이는 내용상의 차이라기보다는 수사법 상의 차이로 보는 것이 옳다. 열왕기 기자는 자신의 특별한 기록 목적 때문에 사무엘하 7장에서 간단하게 언급된 율법 순종의 문제를 보다 중요한 이슈로 부각시킨다.

사실 언약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베푸시는 은혜의 측면과 인간이 하나님께 바쳐야 할 순종의 측면을 모두 포함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것이 언약이라는 말이다. 때로는 설명할 때,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를 강조한다고 해서 다른 하나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윗 언약도 마찬가지이다. 사무엘서에서는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주권적인 은총을 강조했다. 이 때, 다윗이 어떤 죄를 저질러도 무방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열왕기의 경우에는 다윗 이후의 왕들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지 그 충성과 인간의 책임에 대해서 집중조명한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의 측면이 거부되서는 안된다.

사무엘하 7장과 열왕기의 관계는 로마서와 야고보서의 관계와 비교할 수 있다. 로마서는 구원을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설명하고, 야고보서는 구원받은 은혜의 장중에 있는 사람들이 믿음의 행위를 나타내야 하는 것을 설명한다. 로마서와 야고보서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다만 한 쪽에서는 믿음을 강조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믿음에 입각한 행함을 강조할 뿐이다.

열왕기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호의와 주권적인 언약 앞에서 충성으로 헌신해야 하는 인간의 책임에 대해서 강하게 말씀하고 있다. 언약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우상을 타파하며 죄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이렇지 않을 경우에 하나님의 징계의 매를 맞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수사적 의도


열왕기의 본문들은 왕들을 순종의 삶으로 이끌기 위한 수사적 도구, 즉 훈계의 말씀이다. 그것을 하나님의 언약이 파기될 수 있다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왕들이 계속해서 불순종의 길을 걸으면 실제로 나라가 망하고 왕과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갈 수도 있다. 심지어 성전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언약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징계의 시간이 끝나고 나면 나라와 성전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다.

다윗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회복을 찾아볼 수 있다. 다윗의 범죄로 그는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결국 다윗은 다시 예루살렘 왕궁으로 귀환하였다. 솔로몬 이후의 많은 왕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불의한 일을 행함으로 바벨론 땅으로 유배를 당했다. 포로로 잡혀가는 징계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기적처럼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것을 보라. 다윗 왕가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불변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징계하시는 것은 그들을 흠없고 완전하게 세우시고자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우리가 하늘 아버지를 만족시킬 만큼 완전할 수 없다는 의문과 고민에 빠질 수는 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53장에서 자기 백성을 대신해서 징계의 매를 담당하시는 하나님의 종에 대해서 예언한다. 이 종은 다윗 왕가에서 등장하는 메시야 왕을 의미한다. 이 왕은 자기 백성이 맞아야 할 징계의 혹독한 매를 대신 맞음으로써 그들이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를 누릴 수 있게 한다. 이 왕이 받는 징계는 다윗 왕가의 왕과 백성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이고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해준다. 그리고 영원히 그 언약을 성취한다.


- 다윗의 등불


열왕기상 11:36절의 말씀에 ‘그(솔로몬)의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거기에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읍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이 항상 내 앞에 등불을 가지고 있게 하라’고 한다. 여기서 ‘등불’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점화된 빛’으로써 ‘다윗의 합법적인 통치’를 가리키는 은유이다. 다윗 왕국이 비록 축소된 형태이긴 하지만 ‘항상’ 존재할 것을 보장한다. 왕국 분열 이후에 유다의 두 번째 왕이었던 아비얌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했지만 그의 왕위가 흔들림이 없었다는 사실은, 다윗에게 항상 ‘등불’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신실하게 성취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호람은 바알 숭배로 유명한 왕이었다. 아합과 이세벨을 본 받아 온갖 악을 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의 왕위를 빼앗지 않으시고 왕위를 지켜주셨다. 이에 대해서 열왕기 기자는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더라(왕하 8:19)’고 말씀한다.


-여호야긴의 석방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던 유다의 왕 여호야긴은 기적과도 같이 다시 지위가 높아졌다. 열왕기의 마지막은 다시 회복된 여호야긴의 기사로 끝을 맺고 있다. 열왕기 기자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윗 왕국에 대한 소망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것을 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독일의 구약학자인 마틴 노트는 그저 실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기록일 뿐이지 새로운 미래의 여명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버드 대학의 프랭크 크로스는 여호야긴의 사건이 가느다란 한 가닥의 실과 같아서 약속의 성취에 대한 기대를 걸 수 없다고 말한다.

과연 그들의 설명들이 옳을까? 본문 27절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이라는 연대기적 정보가 나온다. 이것은 역사적 정보이자 동시에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열왕기에서 사용된 연대기 기술방식 중 하나가 동시연대기인데, 이는 한 왕이 등극한 연도를 상대국 왕의 통치 연도에 맞추어 기술하는 방식을 말한다. 열왕기 기자는 왜 이런 기법을 사용했을까? 비록 왕국이 분열되었지만 두 왕국의 역사는 한 하나님께 속한 한 백성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연대기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이다.

열왕기의 후반부(왕하 24:12, 25:8)에 바벨론 왕의 연대기가 등장한다. 이전까지는 동시연대기나 유다 왕의 연대기가 사용되었는데 갑작스러운 변화의 기록이다. 그것은 유다 왕국이 바벨론의 속국이 되었음을 알리는 표시 기능이다. 이렇게 보면, 열왕기 마지막에 유다 왕인 여호야긴의 연대기를 풀어 볼 수 있다. 이미 유다가 멸망한지 수십 년이 지난 후인데도 멸망한 나라의 연대기가 다시 언급되는 것은 다윗 왕국에 희망의 불씨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셔였다.

열왕기서 기자는 여호야긴이 삼십 칠년간의 감옥생활에서 풀려나 다시 지위가 높아졌다는 사실을 기술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자면 바벨론 왕 에일므로닥이 자신의 통치 원년에 (1) 여호야긴을 감옥에서 석방하여 그의 머리를 들게 하고 (2) 그와 더불어 좋은 일을 말하고 (3) 그의 왕위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왕위보다 높이며 (4)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며 (5) 항상 바벨론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며 (6) 죽기까지 날마다 쓸 것을 공급받을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한 열왕기 기자의 노력이 엿보인다.

본문에서 여호야긴은 두 차례에 걸쳐서 ‘유다의 왕’으로 언급된다. 유배의 상황이긴 하지만 유다에게 여전히 소망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시이다. 그의 왕위가 높아졌다는 진술은 다윗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열왕기에는 다윗의 ‘등불’에 대한 말씀이 여러 차례 나타난다. 열왕기를 지배하는 신학적 관점이 다윗에게 항상 ‘등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과 그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 후에 봉헌식을 드리는 자리에서 백성들이 범죄하고 적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포로로 잡혀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사로잡아 간 자 앞에서 그들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왕상 8:50). 여호야긴 왕의 석방은 이 기도의 응답이며 역사의 시작과 끝에는 기도와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위가 영원할 것이라는 약속을 하셨고 그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 하나님은 그 언약의 대상자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지켜 행하신다.

특히나 왕국분열 직전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서 말씀하기를 다윗 왕국의 존속이 분열과 몰락이라는 역사적 장애물에 막히지 않을 것을 선포하셨다. 그 말씀은 ‘내가 이로 말미암아 다윗의 자손을 괴롭게 할 것이나 영원히 하지는 아니하리라’(왕상 11:39)의 말씀과 연결된다. 그의 약속은 공허한 말이 아니라 역사속에서 반드시 성취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다.


- 세상의 빛이신 예수


열왕기 저자는 책 마지막에 이러한 소망의 말씀을 기록하며 마치고 있다. 다윗에게 주셨던 언약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소망의 메시지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다윗 언약이 파기될 수 없으며 영원히 성취될 것을 예언하였다(렘 33:20-22).

다윗 왕가에서 세상의 빛이신 메시야가 탄생하셨다. 다윗에게 항상 ‘등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마침내 ‘참 빛’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심으로 완전한 성취를 이루셨다.

우리는 이 ‘등불’의 인도함을 받으며 ‘빛’ 가운데 거하는 삶을 살아간다. 완전한 그의 나라가 이루어지기까지 우리는 언약의 책무로써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간다.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서 때로 징계를 받겠지만 우리를 대신하여 징계 받으신 분이 우리를 비추는 ‘빛’이시기에 우리는 낙담할 필요가 없다. 언젠가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가득한 그 나라 안에 있는 우리 자신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의 역사적 성취를 통해서 동일한 역사적 성취가 우리에게 있을 것을 소망하고, 이 확고한 소망 가운데에서 언약의 책무를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할 것이다.





(연구 문제)

1.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되는가? 그렇다면 우리들의 행동과 책임에는 어느 정도의 무게를 두어야 하는가?


2.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우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 소망이 있는가? 왜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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