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Henderson Christian Seminary in New York

다 윗 언 약

Home About Us Academic Program Admissions News &
Event
Gallery Contact Us
LOGIN

 



제 15 강 (제15장) 약속의 성취(2)
이드보라  2018-04-12 19:17:21, 조회 : 281, 추천 : 72

제 15 장
약속의 성취(2)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삼하 7:8-16


이번 장에서 살펴볼 약속의 내용은 다윗의 후손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성전을 지을 것이라는 약속과 다윗의 왕위와 그의 나라가 영원히 견고하게 되도록 해주시겠다는 약속이다.


- 성전 건축의 약속


다윗은 대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안식과 평화가 이루어진 것을 보고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했다. 성전과 안식은 함께 가는 것이기에 다윗도 그렇게 판단했다. 성전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에덴동산도, 출애굽기에서 건설된 성막도 모두 안식의 장소였다. 하나님의 통치가 있을 때에 참다운 안식이 이루어지기에 성전은 하나님의 신적인 궁전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통치는 세상에 참되고 영원한 안식을 가져온다.

그러나 다윗 시대의 안식은 일시적이고 상대적인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성전을 짓는 것을 반대하시고 후손에게 그 일을 맡기셨다.


- 하나님의 이름과 성전


하나님께서는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짓게 하신다고 했다. 이름은 명성이나 명예와 관련된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름을 내자고 한 것은 그들의 명성과 명예를 높이고자 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다윗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하나님의 성전도 ‘하나님의 명예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성전이 과연 그런 곳일까? 그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전의 의미는 그런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이며 친히 거하시며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통치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성전에 거하시고 실제로 자기 백성과 세상을 다스리신다.

하나님은 인간이 손으로 지은 성전에 묶여 있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온 우주도 감당할 수 없을만큼 크신 분이며 세상을 초월하시는 분이다. 그러면서도 세상 안에 내재하신다. 그러므로 ‘내 이름을 위하여’라는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성전에 계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실질적으로 거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라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옳다.


- 이중적인 성취


열왕기에 따르면 솔로몬 왕 제 4년 이월에 성전공사가 시작되어 제 11년 팔월에 준공되었다(왕상 6:37-38). 공사 기간이 칠년 육 개월 걸린 셈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씨’가 성전을 지을 것이라고 한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그러나 성전은 바벨론 사람들에 의해서 파괴되고 만다.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지어진 성전이 이렇게 될 수 있는가?

물론 성전 파괴의 원인은 분명하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을 더럽히고 온갖 불의한 재물로 하나님께 드렸으며 손에 피가 가득한 채로 성전에 드나들었다. 심지어 우상을 세우고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게 했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은 비록 자신을 위해 지어진 성전이지만 파괴되게 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는 이렇게 일시적인 것인가? 영원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면 그의 약속도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의 시야를 넓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네 몸에서 날 자식’이 성전을 지을 것이라고 말씀한다. ‘자식’은 히브리어 ‘쩨라’인 ‘씨’를 뜻한다. 이 씨는 개별적인 한 사람을 의미할 수도 있고 집합적으로 많은 사람들인 씨들을 의미할 수도 있다. 다윗의 씨라고 하면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을 포함하여 먼 미래에 생겨날 다윗 계열의 왕까지 염두해 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먼 미래에 나타날 다윗의 후손까지 생각하시며 ‘네 몸에서 날 네 씨’가 성전을 건축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잠시 살펴보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고 하셨을 때 단지 이삭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 알것이다.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씨는 다윗의 씨로 이어졌으며 결국 예수님에게로 이어진다. 이로써 우리는 솔로몬 성전이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의 궁극적인 성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 모형과 실체


그렇다면 솔로몬 성전이 지니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이 지으실 성전의 그림자 또는 모형의 가치를 지닌다. 요한복음 2:19에서 예수님은 유대인에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때 말씀하신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가리킨다. 예수님의 몸이 곧 성전이라는 말이다.

요한복음 1:14에서는 예수님을 가리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했다. ‘거하시매’라는 단어는 성막과 성전 용어이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성육신 사건또한 성막이 세워진 것과 같은 의미를 지녔다.

전에 말한 바와 같이 성전과 성막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이다. 태초에는 에덴동산이 성전이고 우주 전체가 성전이었지만 타락으로 인해서 특별히 구별된 한 장소에 건물이 지어져 세상의 존재 의미와 목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기능을 하게 된다. 애당초 물질적인 성전은 궁극적인 것이 오기까지 그림자로 보여주는 일시적인 장치였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시며 그들을 통치하신다. 그가 계신 곳은 어디나 성전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가 있는 성전으로 회복된다는 말씀은 요한계시록 22:1-5에서도 기록한다.

예수님께서 마침내 성전으로 회복되시기에 우리는 솔로몬의 성전이 무너졌다고 해서 낙담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다윗에게 주어졌던 약속의 궁극적인 성취를 위해서 불가피한 일이었다. 오늘날의 성도들은 솔로몬 성전의 파괴를 통해서 오히려 성전의 본체 되시는 그리스도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마침내 오신 그 분이 내 모든 삶을 다스리시고 주관하도록 내 자신을 그 분께 내어 드린다. 이를 통해서 다윗에게 주신 성전의 약속은 우리에게도 역동적으로 성취되고 있다.


- 영원한 왕위의 약속


‘다윗의 나라’란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킨다. 다윗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였고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자였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해 둘 때, 다윗의 나라와 왕위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라는 약속은 처음부터 민족적인 이스라엘 국가를 뛰어넘는다. 세상의 한 국가와 민족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염두한 영적이고 우주적인 차원의 약속이었다.

다윗 언약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계승한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무엘하 7장에 언급된 많은 내용들은 아브라함 언약과 대동소이하다. 아브라함에게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창 12:2)라고 하신 것처럼 다윗에게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삼하 7:9)고 하셨고, 아브라함에게 땅을 약속하신 것과 같이(창 15:18) 다윗에게도 안전하게 거할 장소를 약속하셨다(삼하 7:10).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창 15:4)고 하신 것처럼 다윗에게도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삼하 7:12)라고 약속하셨다.

이러한 유사성을 기억할 때 아브라함의 약속이 범세계적이고 보편적인 것과 같이 다윗의 약속도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다윗 언약에 명시된 나라와 왕위의 약속은 민족적인 이스라엘에 제한될 수 없이 땅의 모든 족속에게 열려있다.


- 신령한 나라


다윗의 나라와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게 되리란 약속은 처음부터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이스라엘을 뛰어넘는 어떤 실체를 전망하는 것이 분명하다. 고로 다윗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된 것은 전혀 우리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이 약속하신 나라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 더욱 확실하게 보여준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관점을 갖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민족주의적인 이해의 관습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제자들은 어리석게도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 1:6)라는 질문을 했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세우시고자 하는 나라는 땅에 속한 어떤 나라가 아니라 인종적, 지리적 장벽을 뛰어넘는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차원의 신령한 나라이다.

이 나라는 구약에서 다양하게 예언되었다. 이사야는 이새의 뿌리에서 날 한 가지가 공의와 성실로 다스릴 평화의 나라를 예언했다(사 11:1-9). 다니엘 선지자는 세상 모든 나라들을 무너뜨리고 영원히 견고하게 세워질 한 나라를 예언했다(단 2:44). 신약으로 넘어 오면 이 나라가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님에 의해 세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에게 천사가 전해 준 말은 다윗 언약의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1-33).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외치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천국은 바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셨던 영원한 나라이다. 신약과 구약은 이렇게 하나의 역사로 연결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맞이함으로써 이 장대한 하나님 나라의 역사 안에 들어간다. 비록 하나님 나라의 복은 오늘 우리들에게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내적으로 고요히 경험되고 확장되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그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게 된다.




(연구 문제)

1. 솔로몬 시대의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되었다. 영원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의 관점에서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2. 다윗에게 주신 영원한 왕위의 약속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제한적인 약속인가? 이 약속이 오늘날의 성도들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추천하기   목록보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8  제 17 강 (제17장) 다윗의 등불    이드보라 2018/04/19 76 292
17  제 16 강 (제16장) 인류의 헌장    이드보라 2018/04/19 73 251
 제 15 강 (제15장) 약속의 성취(2)    이드보라 2018/04/12 72 281
15  제 14 강 (제14장) 약속의 성취(1)    이드보라 2018/04/12 79 276
14  제 13 강 (제13장) 다윗과 나단    이드보라 2018/03/29 83 335
13  제 12 강 (제12장) 언약의 대상    이드보라 2018/03/22 87 256
12  제 11 강 (제11장) 긍휼의 자녀    이드보라 2018/03/15 81 280
11  제 10 강 (제10장) 언약의 유지    이드보라 2018/03/08 67 273
10  제 9 강 (제9장) 언약의 체결    이드보라 2018/03/01 85 308
9  제 8 강 (제8장) 약속과 언약    이드보라 2018/02/23 81 277
8  제 7 강 (제7장) 다윗과 예수    이드보라 2018/02/15 79 277
7  제 6 강 (제6장) 다윗의 사명    이드보라 2018/02/08 78 316
6  제 5 강 (제5장) 다윗의 잘못    이드보라 2018/02/01 80 292
5  제 4 강 (제4장) 성전과 법궤    이드보라 2018/01/25 82 321
4  제 3 강 (제3장) 안식과 성전    이드보라 2018/01/11 98 385
3  제 2 강 (제2장) 다윗의 안식    이드보라 2018/01/04 84 330
2  제 1 강 (제1장) 언약의 의미    이드보라 2018/01/04 80 396
1  제 1 강 강의 소개 및 계획    이드보라 2018/01/02 70 231

    목록보기 1
       

 
www.hendersonny.org // email: info@hendersonny.org

Copyright © 2018 Henderson Christian Seminary in New York
NY : 40-36/38 78th Street, Elmhurst, NY 11373
General and Admission Office of NY & NJ 718.810.3248 or 646.338.7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