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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예수는 선생이요 주시다
이드보라  2016-08-22 13:05:13, 조회 : 868, 추천 : 157

(후기)
예수는 선생이요 주시다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 충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아닌 어떤 파벌에 충성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며 하나님께 용납받지 못할 것이다. 복음주의자가 진정으로 고수하는 신념은 곧, 복음주의적 견해를 견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주요 변론을 통해서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과는 전혀 다른 그리스도의 신학을 공부하였다.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무지하였고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의 전통에 권위를 두었다. 그들은 또한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공로를 첨가, 치하하였다. 도덕과 예배에 있어서는 외형적인 모습에 치우쳤고 세상에 있어서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예수님의 변론은 어떠하였는가? 하나님의 능력과 오직 말씀에만 권위를 두었으며, 인간의 공로가 전혀 배제된 하나님의 은혜와 주의 공로만 말씀하였다. 도덕과 예배에 있어서는 내적인 것, 마음을 가르치셨고 세상에서 물러남이 아니라 세상에 관여하고 책임을 가져야 하며, 자신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해야 하는 포부를 가질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쟁론하셨던 내용은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온다. 그 어느것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하다. 우리들이 가져야 할 신념과 내용은 무엇이겠는가? 그리스도와 같은 대열에 서서 그가 비판하신 내용들을 숙지하고 실제로 기독교적인 사상과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몫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고 요 13:13-14에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선생’과 ‘주’는 랍비들과 대화할 때 사용된 존대어이며 사도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불렀다. 그러나 이 말씀을 예수님이 직접 하셨을 때, 이것은 단순한 칭호가 아니라 ‘근본적인 사실’임을 나타내시는 말씀으로서이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에 대한 아주 중요한 진리를 말해준다.
그것은 첫 번째로,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의 신적 자의식을 말해준다. 그는 자신이 사람들의 선생과 주라고 하셨을 때, 그것은 사람들이 무엇을 믿어야 하며, 무엇을 하여야 하는 것을 말해줄 권세까지 가지셨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단연코 ‘그가 하나님이심’을 주장한 것이다. 인간이 다른 사람의 마음과 의지를 주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주님은 이렇게 자신에 대해 가르쳐 주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 그들의 선생과 주라고 말씀하셨던 그가 이내 자신을 낮추고 그들의 종으로써 발을 씻기신 것은 그가 ‘주되심과 봉사’, ‘권위와 겸비’, ‘고결한 주장과 비천한 행동’의 역설적인 화합의 주이시며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갈(3절)’ 것을 확실히 보여주신 것이다.


두 번째로,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할 그리스도와의 합당한 관계를 잘 나타낸다. 죄인과 구주와의 관계만 아니라 생도와 선생, 종과 주의 관계를 말해준다. 예수님을 선생과 주로 여긴다 하는 것은 무슨 말인가?


예수님께서 위대한 선생이라는 말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니고데모도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이라고 불렀다. 주님은 가르치실 때 주저하거나 머뭇거리는 일이 없이 권위있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확신있게 가르치셨고 그의 가르침의 권세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셨다.(눅 4:32, 마 7:28-29, 13:53-54, 막1:22) 우리는 권위있게 가르치신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의 권위 앞에 무릎을 꿇고 그 교훈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의견이 그와 다르다면, 우리의 의견을 버리고 그의 의견의 틀에 우리를 맞추고, 우리의 견해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잘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말이다. 타락한 우리들이 생각이, 유한한 우리들이 생각이, 권세자이자 창조주이자 아버지이자 왕이신 하나님의 것과 같을 수 있겠는가?


앞선 장에서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신적 기원과 지고한 권위와 온전한 충족성을 배웠다. 성경의 첫째 되는 목적은 죄인을 구주에게 인도하여 생명을 얻게 하는 데 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심판이 현세에서 시작하여서 죽을 때까지 체로 거르는 과정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치신다. 모든 인간의 죽음 후에는 천국과 지옥 중에 하나의 종착역을 맞이할 것이라는 것도 확실히 말씀하셨다.


이러한 확실한 진리 앞에서도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하며 불신한다. 하나님의 독립적이고 인격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에 대해서도 부인하며 인간의 철저한 타락과 죄악성에 대해서 거절한다. 성경의 영감과 권위에 대한 도전과 천국과 지옥에 대한 실재성 또한 멀리한 지 오래이다. 이러한 명백한 복음의 진리들을 가르치시고 변론하셨던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은 우리의 ‘선생’이시기에 우리는 이 복음의 진리 앞에 고개를 숙이고 받아들여야 한다.


주님은 그 어떤 종교적인 스승들과는 다르다. 제 아무리 위대한 스승이라 하여도 제자들을 가르치고 청할 뿐, 그들에게 동의를 명령하고 복종을 명령할 수 없다. 이러한 권세는 주님만이 가지셨다. 왜냐하면 그는 선생이자 동시에 ‘주’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나..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라고 말씀하셨다.(요 14:15, 마 10:37)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 선생으로 그리고 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는 우리에게 의무와 책임을 모두 주신다. 그의 가르침에 마음을 바칠 뿐만 아니라 그에게 순종할 의지도 가져야 한다.


타락한 인간이기에 그리스도의 생각으로 훈련받는 것이 매우 어렵게 여겨진다. 자기 의견을 내세우고 옳다하기 일쑤이다. 한 마디로 우리는 스스로 주인노릇을 하고 선생이 되기를 좋아한다. 나 이외에 어떠한 권위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 풍조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교회에 있다.


이제, 그리스도의 권위와 가르침 앞에서 겸손하게 마음과 뜻을 모두 다 동의하며 승복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아직도 내 생각을 고집하고 있다면 이것은 그리스도를 실수 많은 선생으로, 그릇된 선생으로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만유의 주가 되신다는 생각은 우리들의 생각과 뜻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 확대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선생되심 아래에 복종한다면 그것은 매임이 아니라 자유임을 알아야 한다. 종잡을 수 나 자신에게서 자유함이요, 세상 풍조에서 자유함이요, 변화무쌍하고 헛된 주관에서 자유함이요, 하나님의 의도대로 마음과 뜻을 사용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자유이다.


우리는 더욱 더 열심히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바를 알지 못하면 누구도 그를 믿지도, 순종할 수도 없다. 현대 교회에서 가장 급한 일은 일반성도들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의 가르침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이를 사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면, 우리의 겸손한 복종은 나날이 늘어날 것이요, 목자를 따르는 순한 양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에게서 독립하려는 죄를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의견에 합하며 그의 가르침에 관심과 순종을 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란다.


주님께서는 오늘날의 교회에도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라고 똑같이 말씀한다고 믿는다. 단순한 칭호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전인이 겸손히 그를 신뢰하고 순종하며 마땅히 드릴 영광을 드리는 삶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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