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Henderson Christian Seminary in New York

Your Confirmation

Home About Us Academic Program Admissions News &
Event
Gallery Contact Us
LOGIN

 



5.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임 바울  2015-05-01 18:43:08, 조회 : 1,594, 추천 : 237

                                 5.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사도신경의 두 번째 항은 성자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무엇을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는가를 알려준다. 그것은 그분의 신성과 인성 그리고 그분의 구원 사역을 설명한다.


        1) 그리스도의 위격 - 그분은 누구신가?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1) 예수님의 인성

        복음서는 예수님이 인간의 육체와 감정을 가지신 완전한 인간이었음을 분명하게 가르쳐준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청년기, 그리고 성인으로 성장하심을 서술하였고 그분이 가지셨던 연민과 기쁨, 고통과 분노 등 인간의 감정을 설명하고 있다.

딤전 2:5

        (2)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인성의 기원을 설명하고 있다.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나타난 동정녀 탄생에 대한 논쟁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문제들을 제기하였다.

        첫째,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의 탄생은 전적으로 정상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반면, 비정상적이고 초자연적이었던 점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동정녀인 채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사실이었다.

        둘째,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는가? 마태와 누가의 기록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자. ① 그들은 이 사건을 신화가 아닌 역사로 기록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누가는 이 점을 누가복음 서두에서 특별히 주장한다). ② 그들의 설명은 독자적으로 쓰여졌지만 상호보완적이다. 즉 마태는 요셉의 이야기를 하고 누가는 마리아의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③ 마가와 요한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모르고 있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그들은 세례요한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이나 유년시절을 언급하지 않았을 뿐 그들은 동정녀 탄생의 사건이 일어났음을 믿고 있었다.

        셋째, 그것이 중요한 문제인가? 사도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증명하기 위해 동정녀 탄생을 증거로 삼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면, 그분이 세상을 떠나실 때 승천하신 것처럼 세상으로 오실 때도 동정녀 탄생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눅 1:35

        누가에 의한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에 대한 기록을 보면, 예수님의 인성은 그분을 낳은 인간 어머니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분의 죄없으심과 신성은 그녀를 찾아오신 성령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3) 예수님의 신성

        사도신경은 예수님을 마리아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외아들 우리 주’로 고백한다.

        니케아신경은 ‘성부로부터 영원히 나오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 빛으로부터 나오신 빛, 참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참 하나님’이심을 고백한다.

        아타나시우스 신경에서는 예수님은 ‘만들어지거나 창조되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나오셨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꾸며낸 종교적 신화가 아니다. 복음서를 일반적인 역사적 문서로 바라본다면, 예수님에 대한 신성의 증거들을 더욱 뚜렷이 볼 수 있을 것이다.

        ① 보잘것없는 작은 마을의 보잘것없는 가정에서 태어난 한 목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가르침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자기중심적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으며 자신을 그의 ‘아들’이라고 표현하면서 그분과 자신의 특별한 관계를 설명하였다.

        ② 그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고대했던 하나님의 나라의 막을 열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 나라는 자신을 믿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전했다.

        ③ 그는 자신을 선지자나 혹은 선지자 중에 가장 위대한 선지자도 아니라고 말했다. 자신은 모든 예언의 성취이며 모든 성경의 말씀이 자신을 증거한다고 주장했다.

        ④ 그는 자신이 세상의 빛이며 아버지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소개했다.

        ⑤ 그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고 주장했다.

        ⑥ 그리고 그는 역사의 마지막 때에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올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겨우 서른에 불과한 청년이 이러한 내용을 아주 담담하게 겸손함과 확신에 차서 전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는 수백명의 사람들을 설득시켰다. 그의 주장과 그의 인격 그리고 그가 이룬 사역 사이에는 아무 모순이 없었다. 그분의 행동은 오히려 역설적이었다. 즉 그분은 자신을 대단한 인물로 소개함과 동시에 중요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고 당시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불의한 체포와 심문 그리고 정죄를 당하면서도 그분은 자신을 죽이는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분은 자기중심적이었지만 절대적으로 타인 중심적이었다. 그분의 어조는 교만하게 들렸지만 사실 겸손하였다.

        이러한 역설의 최고점은 바로 부활이었다. 예수님의 시신이 완전하게 사라진 것은 주님이 다시 나타나신 것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사도들은 여러 차례, 여러 장소에서 그분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소심하고 두려워했던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 후에 확실히 변화되었다. 더 이상 두려움이 없었고 죽음을 무릎 쓰고 예수님과 그의 부활을 담대하게 전했다. 이러한 그들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예수님이 실제로 죽음에서 살아나셨다는 사실이다.

        주님은 마리아의 아들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분은 완전한 인성과 신성을 가지신 분이며 이것을 뒷받침하는 역사적인 증거들은 충분하게 제시되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며 인간이시다. 즉 성부와 동일한 본질로 세계가 창조되기 전에 나셨다는 점에서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또한 그의 모친과 동일한 본질로 세상에 나셨다는 점에서 그분은 인간이시다. 따라서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이시다.” - 아타나시우스 신경

        “온전하고 완벽한 두 가지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이 한 분(인격) 안에서 한데 결합되었으며, 결코 둘로 나누어질 수 없다. 따라서 그분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한분 그리스도이시다.” - 성공회 39개 신조 제 2항


        2) 그리스도의 사역 - 그분은 무엇을 하셨는가?

        (1) 예수님의 죽으심

        “동정녀 마리아에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신조들은 예수님의 탄생에서 죽으심으로, 그분을 낳은 어머니에서 그분을 정죄한 재판장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빌라도라는 한 관리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십자가 사건의 역사적인 사실을 증명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서 오셨으며 체포되기 전의 마지막 만찬은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죽으셨는가? 신조는 이것에 대해서 아무 언급이 없지만, 신약성경은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① 예수님은 자신의 위대함 때문에 죽으셨다. 어리석고 악한 자들의 죄를 대신받으시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분의 위대함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행 2:23, 3:13-15, 4:27

        ② 예수님은 불의의 고난에 대해서 아무런 보복 없이 모든 것을 참으심을 보여주셨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려고 죽으셨다.

벧전 2:21-23
롬 5:8
요일 4:10

        ③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고 다시 부활하심으로서 우리 또한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다시 살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벧전 2:24


        결국 그분이 죽으신 것은 우리의 구원자로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사’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니케아 신경). 사도들은 그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으며 우리가 받아야 할 죄값을 대신 받으셨음을 가르친다.

        이에 대한 베드로의 증언을 살펴보면, 첫째,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위 죄를 담당하셨다’는 증언이고 둘째는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는 증언이다.

벧전 2:24, 3:18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갈라놓은 죄를 없애고 이 관계를 화해시키기 위해서는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가 죽으셔야만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견디셔야 했던 그 고통과 암흑은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지옥의 형벌이었다.

        바울의 증언을 살펴보자. 바울은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과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신 것 때문에 죄인들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증거한다.

고후 5:21
갈 3:13


        여기서 사도신경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끝내지 않는다. 신경은 그분의 구원 사역 이후 연속적으로 일어난 다섯 가지의 사건을 더 언급하고 있다.


        (2) 예수님의 강하, 부활 그리고 승천

        첫째, 예수님이 음부에 내려가셨다.

(사도신경 원문에는 ‘그가 음부에 내려가셨다’는 구절이 있지만 우리말 번역본에는 이 구절이 빠져있다. - 역주)

        이 구절에서의 ‘음부(hell)’는 ‘게헨나(gehenna)’로서 처벌의 장소이다. 즉 죽은 사람이 가게 되어있는 하나의 장소를 의미한다. 이 구절이 사도신경에 포함된 이유는 예수님이 육신의 몸으로 죽으시고 장사된 후에 그분의 영(부활하시기 전까지)이 그 다음 세계에 가 계심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거기에 가신 이유는 십자가에서 거두신 위대한 승리를 선포하시기 위함이었고 또 하나의 이유는 사망과 음부를 포함하여 우리 인간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모든 체험을 그분도 경험하심으로서 우리가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확증하시기 위함이었다.

        둘째, 예수님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본디오라는 이름을 언급함으로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역사성을 증거한 반면, ‘사흘 만에’라는 구절은 그분의 부활의 역사성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명확한 사건이었으며 날짜까지도 정확한 사실이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가 ‘부활’은 ‘육체의 부활’을 의미함을 주장할 수 있는 몇 가지 근거를 살펴보자.

        ①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복음서 기자들의 증거 때문이다.
        ② 사도시대의 전승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보이셨느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으며 다시 살아나신 것은 장사지낸 그분의 몸을 의미하고 있다.

고전 15:3-8

        ③ 영광스럽고 새롭게 변화되어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우리의 부활의 첫 열매로서 육의 부활의 보증이 되어주시기 때문이다.


        셋째, 예수님은 ‘하늘에 오르셨다.’ 누가는 이것을 수많은 목격자들 앞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강조함으로서 역사적인 사건이었음을 확실하게 증거한다.

행 1:9-11

        예수님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승천하신 이유는 자신이 영원히 가신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확신시켜 줌과 동시에 그들이 기다려야 할 대상이 예수님 자신이 아니라 성령하나님이심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


        (3) 예수님의 안식과 재림

        넷째, 예수님은 현재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이것은 은유적 표현이지만 다른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분명하고 확실한 사건이다. 모든 문화에서 ‘우편’은 존경의 자리를 의미한다. 또한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안식을 취하시며 앉아계신다. 실제로 이 땅에서의 제사장들은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매일, 매달, 매년마다 제사 드리는 일이 절대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히 10:11-12
시 110:1

        다섯째, 예수님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는 근거는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막 14:62

        그러나 ‘그 날’이 언제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 때문에 그분을 따르는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막 13:32, 33-37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구체적으로 교리화하기 보다는 그 사건이 인격적(행 1:11, 살전 4:16)이고 가시적(계 1:7)이며 범우주적이고 논란의 여지없이 명백(눅 17:24)하며 영광스러울(살후 1:9)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재림의 목적은 그분이 자기 백성을 위해 이루신 구원의 남아있는 복을 베풀어주시기 위함일 것이다.

빌 3:21
벧후 3:13

        그러나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재림의 목적을 심판에 맞추고 있다.

행 10:42, 17:31
살후 1:9

        심판의 때에는 자기의 죄와 하나님의 진로를 피해 예수님께로 숨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그분의 나라’를 상속하게 될 것이다(니케아 신경).        



<시험문제>

1. ‘예수님은 진짜 훌륭한 종교 지도자였지만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믿을 수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무엇이라 답해 주겠는가?

2. 오늘 날 일부 교회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육신의 부활이나 승천 등을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굳이 믿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당신은 이 주장에 동의하는가, 아니면 반대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3. 예수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는가?

4. 당신은 마음과 삶속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경배하고 있는가?

<<마 24장 연습하기 : 눅 13-18장의 관점을 가지고>> 범위 : 마 24:37-39


a. 여기서 말하는 인자의 임함은 언제를 말하고 있는 것인가?


b. 노아의 때와 같다는 것은 시간적인 것을 말하는가, 아니면 사건적인 것인가?


c. 방주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홍수 전에 무엇을 하였는가?


d. 방주에 들어간 사람들은 홍수 전에 무엇을 하였는가?


e.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사람”은 방주에 들어가지 못하는가?


f. 방주에 들어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지를 않았는가?


g. 그렇다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사람은 다 멸망한다”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h. 그렇다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사람”은 무엇을 비유한 것인가? 그리고 누구를 비유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I. 노아가 방주를 언제 완성하였는가?(창 7:1-5절을 참조해서 설명하기 바랍니다)


j. 방주를 완성하고 나서 노아와 그의 식구들이 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k.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홍수가 나서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게 하였다고 생각하는가?


l. 누가 방주를 탔는가? 창 7:1-5절을 참조해서 자세히 설명해주기 바랍니다.


m. 어떻게 그들이 방주를 탔는가를 창 7:2-3절과 창 7:7-9절을 자세히 읽고 설명하라.


n. 오늘날의 우리가 물에 빠져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창 24:37절 참조)


o. 우리가 방주를 만들어야 하는가 아니면 방주를 타야 구원을 받는가?


  추천하기   목록보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6  6. 성령에 대한 신앙    임 바울 2015/05/08 273 1616
 5.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임 바울 2015/05/01 237 1594
4  4. 성부 하나님에 대한 신앙    임 바울 2015/04/25 273 1819
3  3. 신앙 성숙에 이르는 길    임 바울 2015/04/16 247 1568
2  2. 구원의 확신에 이르는 길    임 바울 2015/04/09 270 1779
1  1.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    임 바울 2015/04/04 255 1451

    목록보기 1
       

 
www.hendersonny.org // email: info@hendersonny.org

Copyright © 2018 Henderson Christian Seminary in New York
NY : 40-36/38 78th Street, Elmhurst, NY 11373
General and Admission Office of NY & NJ 718.810.3248 or 646.338.7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