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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부 하나님에 대한 신앙
임 바울  2015-04-25 19:16:32, 조회 : 1,819, 추천 : 273

                                    4. 성부 하나님에 대한 신앙


        ‘신조(creed)’란 말은 ‘내가 믿는다’는 뜻의 라틴동사 ‘크레도(credo)'에서 파생되었다. 일반적으로 인정받은 역사적인 기독교의 신조 두 가지를 알아보자.

        1) 사도신경 (the Apostles' Creed)

        사도신경은 ‘신조(혹은 신앙고백)’라고도 말한다. 이름은 사도신경이지만 열두 사도가 작성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신경의 이름은 사도들이 신양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들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었다. 그 기원은 2세기에서 시작되었고 8세기 중반에서야 최종적 형태가 완성되었다.

        2) 니케아 신경 (the Nicene Creed)

        주후 325년 니케아 공회에서 합의하여 사도신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몇몇 구절을 더 포함하여 작성된 신조이다.



        1. 하나님의 존재

        신조는 성경에서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하기 때문에 이 주제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증명을 통해서 보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믿음이 비이성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 합당한 세 가지의 견해를 살펴보려고 한다.


        1) 우주의 실체

        우리 주변을 둘러싼 전 우주는 하나님의 존재 없이는 절대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모든 건축물에 건축자가 있고 모든 그림에는 화가가 있으며 모든 기계에는 설계자가 있듯이, 신비하고 아름답고 복잡한 우주 역시 반드시 창조주가 존재한다고 추정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모든 결과를 일으키시는 동인(the Cause)이시고 모든 생명체가 존재하도록 역사하시는 생명(the Life)이시며 모든 동작을 가능케 하시는 에너지(the Energy)이시다.

시 19:1
롬 1:20
행 14:15-17


        2) 인류의 본성

        우주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고귀한 이상과 숭고한 열망, 그리고 우리의 오감을 기쁘게 하는 아름다운 것들 때문에 감동하는 우리의 마음을 보라. 우리의 지성과 선, 그리고 사랑을 보라. 우리의 천성은 고귀하고 거룩한 것들에 대해 경외심과 두려움, 경이감과 예배를 드리고 싶은 열정을 보라. 이와 같은 우리들의 보편적인 감정들과 종교적 본성들은 하나님을 믿는 일에 합리적인 이유를 제공한다.


        3) 예수님의 인성

        무한하시고 초월하신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그분 자신이 계시하시는 것뿐이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이 택하신 방법에는 창조하신 우주와 우리에게 주신 본성 그리고 이 땅에 직접 오신 예수 그리스도였다. 예수님은 신인(God-man)이셨으며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그분을 보고 듣고 만질 수 있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최고의 증거이자 가장 확실한 증거는 바로 역사 속에서 존재하셨던 예수님이시다.



        2. 삼위 하나님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이 모두는 삼위의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다. 삼위일체(Trinity)는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큰 신비이다. 이것은 ‘삼(tri)’이라는 단어와 ‘일체(unity)’라는 모순되는 두 단어의 합성어이다. 즉 하나님은 삼위이시며 동시에 한 분이심을 의미한다.


[성공회 39개 신조의 제 1항]

“이 신성의 통일 속에서 하나의 본지로가 능력, 영원성을 나누는 세 위격으로 존재하니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다”


        1) 우리의 삼위일체 신앙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경에 나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에는 삼위일체 사상이 나타난다.

마 3:16-17, 28:19
벧전 1:2
고후 13:13


        삼위일체의 교리는 역사, 신학, 체험 -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접근법을 통해 견고한 신앙의 기초를 형성할 수 있다.


        (1) 역사

        첫째, 역사를 통한 접근법이 있다. 삼위일체의 교리는 비현실적인 신학자들이 고안한 이론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밝혀진 역사적인 계시이다.

        ① 사도들은 모두 유대인들 이었다. 그들은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이스라엘의 언약의 하나님이신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② 그들은 예수님을 만났다. 그분은 메시아이며 그 이상의 존재이셨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셨고 자신 스스로를 세상의 심판주로 소개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예배를 받으실 만한 하나님이셨다. 그러나 성부하나님과는 다른 분이셨다. 그분은 성부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그분께 기도하셨다.

        ③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보혜사 혹은 진리의 영’에 대해서 배웠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신 후, 다른 보혜사가 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은 오순절에 신령한 은혜와 권능이 충만함을 체험함으로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분을 알 수 있었다.


        (2) 신학

        둘째, 신학을 통한 접근법이 있다. 삼위일체의 어려움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일체성을 예수님의 신성과 독특성에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해 본 결과,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모두 하나님의 일체성으로부터 시작했다.

신 6:4

        그러나 그 다음 단계인 성자 예수님의 신성을 하나님의 일체성에 조화시키는 일에서 문제가 생겼다. 일부 교부들은 예수님의 신성만을 주장함으로서 예수님과 성령을 성부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하는 일을 부인하였다(사벨리우스파 - 3세기경 로마의 장로인 사벨리우스를 따르는 사람들).

        또 어떤 교부들은 예수님을 성부로부터 영원히 분리할 때, 하나님은 한분이 아니라 두 분이 되시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기도 했다. 그들은 예수님은 탁월한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이다(아리우스파 - 4세기 초,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였던 아리우스를 따랐던 사람들).  

        이처럼 초대교부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일체성과 모순되지 않도록 독립된 분임을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대해서 래너드 호지슨(Leonard Hodgson) 교수의 “삼위일체론(The Doctrine of the Trinity)”에서 제의하는 ‘일체성’을 살펴보자.

        호지슨 교수에 따르면, 일체성에는 두 가지의 유형이 있다. 하나는 아주 간단하고 구별하기 쉬운 ‘수리적 일체성’이고 또 하나는 아주 복잡하고 많은 구성요소를 포함한 ‘유기적 일체성’이 있다.

        하나님의 일체성은 유기적 일체성으로서 영원히 구별되는 성부, 성자, 성령 - 삼위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이다.


        (3) 체험

        셋째, 체험의 접근법이 있다. 우리는 비록 설명할 수 없는 체험들을 통해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자 하나님을 통해 성부하나님께 나아감을 체험한다.

엡 2:18

        우리는 주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그 안에 담긴 간구들을 통해 한 하나님이 세 위격으로 존재하심을 확인하게 된다.



        3. 창조주, 통치자, 아버지

        사도신경에서 말하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아버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진술을 살펴보자.


        1) 창조주

        니케아신경에서는 하나님을 ‘존재하는 모든 것, 즉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창조자’라는 구절이 첨가되어 있다.

창 1:1
출 20:11
고전 8:6

        위의 구절들은 하나님의 창조 양식(mode)이 아니라 창조 사실(fact)를 알려주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계 4:11
창 1:3
시 33:6,9
히 11:3

        결국 성경은 하나님이 만물을 어떻게 만드셨는가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분의 뜻과 말씀대로 존재하게 되었음을 알려준다.

        하나님의 창조기사와 관련하여 일어나는 과학과 종교의 논쟁은 불필요한 일들이다. 결코 성경과 과학은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보완적이며 구별된 분야에서 하나님을 증거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목적은 우리를 과학자가 아닌 참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데 목적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창세기 처음의 세 장은 과학의 방법으로는 절대 발견할 수 없는 다음과 같은 영적 진리를 보여준다.

        ①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
        ② 그분은 만물을 무에서 창조하셨다.
        ③ 그분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④ 그분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심히 좋았다’.


        2) 보존자

        사도신경에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 라는 구절은 그분의 전지전능하심뿐만 아니라 창조하신 만물을 다스리시는 통치력과 보존하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우주 속에 존재하시고 활동하시며 생명을 불어넣으시고 질서를 유지하신다. 이러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은 성경 곳곳에서 나타난다: 모든 피조물의 호흡과 생명은 모두 그분의 손에 달려있다. 또한 인간사와 나라의 국사를 인도하신다. 그분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빼내어 사막 건너 약속의 땅에 거하도록 하셨다. 또한 그들에게 사사를 보내시고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를 세워주셨다. 그분은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위해 죽고 부활하도록 하셨다. 그분은 그 아들을 통해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고 자신의 백성들을 다스리고 계신다.


        3) 아버지

        사도신경은 하나님의 위엄과 자비하심을 함께 유지하고 있는 성경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아버지 되심을 확증하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셨고 우리들에게도 그렇게 부르도록 가르치셨다.

눅 2:49, 23:43
마 6:9
눅 11:2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종교는 오직 기독교뿐이다. 그러나 이 호칭은 아무에게나 허락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만 ‘아버지’라는 호칭을 가르쳐 주셨다. 사도 요한과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만 우리가 그분의 가족이 될 수 있으며 그 아들 안에서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있음을 분명히 말한다.

요 1:12
갈 3:26


        우리는 하나님 가족의 일원으로서 엄청난 특권들을 가지고 있다.

요일 3:1


        그 중의 하나가 기도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기도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분을 신뢰하고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평화를 주시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두려워 할 일’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오늘의 배움을 통해, ‘의지’라는 단어를 기억하라. 피조물인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한다. 그분의 자녀이기에 우리는 하늘의 아버지를 의지한다. 이 두 가지 사실을 통해 우리는 겸허함과 자신감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시험문제>>
1. 누군가가 당신에게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에게 어떻게 답해주겠는가?

2. 삼위일체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답을 주겠는가?

3. 하루 일과를 자세히 살펴보라. 당신은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가?  또 다른 것들은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가?  이 양자의 균형에 대해 만족하는가?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바꾸어보고 싶은가?

4. 시편 103편을 읽고 이 장에서 보여지는 아버지 상이 무엇인지를 하나만 설명해보라.



<<마 24장 연습하기 : 눅 13-18장의 관점을 가지고>> 범위 : 마 24:32-36

a.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은 이유가 무엇인가?

b. 무화과 나무에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가?

c. "이와 같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지 설명하라.

d. "이 모든 일“은 어떤 일을 말하는 것인가? 마 24: 1- 31절의 말씀인가 아니면 마 24:32절인가?

e. 언제 인자가 문 앞에 온다고 이른다고 하였는가? 마 24:1-31절의 말씀인가 아니면 마 24:32절의 말씀인가?

f. "이 세대“를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g. 없다고 한다면 이 세대는 어떤 세대를 말하고 있는 것인가?

h. "마 24: 35절“의 말씀은 어떤 뜻인지 간단하게 말하라

I. "하나님 아버지만 안다“는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것인가?

j. 마 24:36절은 어디에 포함시키는 것이 자연스러운가? 마 24:32-36절인가 아니면 마 24:37절 이하에 포함시켜야 하는가?



p.s. 본 수업내용은 "그리스도인의 확신 (존 스토트 저)" 제 4장을 수업내용에 맞게 요약 및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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