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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고에 열매를 맺어주시는 주님”(고전 15:3-11)
김 에스더  (Homepage) 2017-04-08 07:08:16, 조회 : 871, 추천 : 165



기도 연습, 이렇게 하라


“나의 수고에 열매를 맺어주시는 주님”


묵상구절 : “고전 15:3-11(개역개정)”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이번 주에 묵상할 말씀의 인물은 사도바울이다. 사도바울이 등장한 사건이나 그가 쓴 서신들 가운데서 성경의 일부 구절을 선택하여 묵상한다. 그리고 묵상한 말씀으로 찬양, 감사, 고백 그리고 간구와 중보기도의 기도문을 작성한다.


첫째, 말씀 묵상하기 (고전 15:3-11)


        고린도 전서 15장은 소위 부활의 장이라고 부른다. 사도바울은 이 장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반드시 일어난 사건이며, 우리도 영뿐만 아니라 육도 부활할 것에 대한 확실한 답을 주고 있다.

        그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달라진 사도바울의 고백을 선택하여 보았다. 예수님의 부활은 본 것은 사도바울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부활을 본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변한 것을 보게 된다. 특히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박해하고 잡아 죽이려 했던 사람이었다. 스스로 말하기를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라고 고백한다. 그런 그가 오늘날 누구보다도 수고하는 사도가 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 10절의 말씀을 가지고 제목을 정해보았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내가 수고한 것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그 열매를 맺어주심’을 돌아보게 되었다.


둘째. 묵상한 말씀으로 기도하기


1. 감사

        오늘도 나를 기도하는 자리로 옮겨주시고 기도하는 입술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을 보면서 주님 앞에 이렇게 서는 것조차 부끄러운 저의 삶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그 고백을 보면서, 나도 그와 같은 수고와 은혜를 고백하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주님 앞에 이렇게 섭니다. 은혜의 주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고 우리를 향한 구원의 약속이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마음으로, 입술로 믿어진다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2. 찬양

        오늘도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는 주님. 주님만이 참 하나님이시오 진정한 나의 구세주이심을 고백합니다. 우리를 진정 사랑하시는 주님의 말씀과 그것을 이루어주시는 주님의 역사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주님. 그것을 이루시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우리들입니까? 하나님이 아니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이 구원을, 이 귀한 것을 내가 이루어보겠다고 나아갔던 발걸음들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이루어주시는 것임을 보지 못하고 내가 한 것처럼, 나의 공로로 내세웠던 삶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함께하여 주시는 주님의 그 크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3. 고백

        은혜를 부어주시는 주님. 오늘의 말씀을 보면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봅니다. 그들의 삶을 보니, 주님을 만나고 난후, 너무도 달라진 삶으로 살았음을 깨닫습니다. 특히 사도바울이 놀라운 믿음과 사역으로 주님 앞으로 달려갔던 삶을 보면서, 주님 앞에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오, 주님. 사도라 칭함 받기도 감당치 못하겠다는 사도바울은 모든 사고보다 더 수고하며 주님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아니라 주님이 이루셨다고 오늘 고백합니다. 자신의 수고를 주님께서 열매로 맺어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이 말씀 앞에서 나의 모습을 봅니다. 주님의 자녀라고 부름받기에 결코 합당하지 못했던 저를 주님은 오늘 이 자리에까지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리석고 게으른 종입니다. 수고라는 단어가 나의 삶에 어색할 정도입니다. 이 얼마나 악한 종입니까. 주님이 하신 공로를 나의 것으로 드러내기를 좋아했던 저입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4. 간구

        간절히 바라건대, 저의 삶에도 이제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만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로 저의 삶에도 선한 열매들이 맺어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섰을 때, 이 무익한 종을 불러주시니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 저를 바꾸어주시옵소서. 저의 삶에 주님이 주신 믿음의 열매들을 맺어주시옵소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처럼, 사도바울처럼, 이제는 더 많은 수고와 열심을 가지고 주님과 주님의 백성들을 섬길 수 있게 하옵소서. 나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나를 살리시기 위해 다시 부활하여 주신 주님의 은혜에 나의 생각과 고집과 삶을 내려놓고 사도바울처럼, 달음박질하는 선수처럼, 최선을 다하며 승리를 위해 달리는 제가 되게 하옵소서. 나와 같은 죄인에게 성도라고, 자녀라고 불러주신 주님 앞에서, 저도 이제는 주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깨닫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 귀하신 은혜를 헛되이 만들거나 값싸게 만들거나 나의 공로로 돌리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바라옵건대,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만나는 우리 지안 교회의 청년들과 자녀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부활이 없는 신앙은 우리의 모든 수고를 헛되게 하지 않는지요. 부활이 없는 신앙은 우리의 열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합니다. 부활이 없는 신앙은 진정한 주님의 은혜를 보지 못합니다. 주님.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셔서, 늘 붙잡아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보게 하시고 그에 합당한 믿음의 열매를 맺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부활하신 주님. 이 땅에서의 삶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그들을 만나주셔서, 더 크고 좋은 세상을 보게 하시고,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기뻐하게 하여 주심으로 말미암아, 기쁨의 찬양과 감사의 기도가 넘치는 삶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부활의 소망이 우리들의 마음에 기쁨과 찬양이 되게 하여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임 바울
성경구절 : 행 9:20-22
제 목 : 우리에게 믿음을 직접 주시는 하나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아서 감옥에 집어넣기 위해서 사울은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 집행 위임서를 받았다. 다멕섹으로 가는 중에 예수님이 직접 사울을 만났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과 메시야가 됨을 증거하였다. 이 일로 인해서 사울은 사흘동안 눈이 멀어서 보지 못하였다( 행 9:9). 이 일이 얼마나 사울에게 충격적이었는지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동안에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고 한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전 생애가 헛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울의 삶까지도 버리지 않으시고, 아나니야에게 나타나셨다. 이 때에 사울을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위해서 사용할 것인가를 알려준다. 아나니아는 기도를 하고 있던 사울에게 나타나서, 안수를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울에 대한 임무를 알려준다. 그때에 사울은 비늘같은 것이 눈에서 벗겨졌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보게 되었고, 즉시로 세례를 받았고, 주님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음식을 먹고 강건하여 졌다.


지체지 않고 각 회당에 다니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고, 증언하고, 그들을 전도하는 직분을 감당하였다. 이런 모든 일들이 가능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사울에게 직접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믿음은 내가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것임을 본문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찬양 :
마음이 넓으신 주님, 용서를 해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주님. 우리들의 눈과 판단으로는 당장 죽여야 할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눈에는 한없이 귀한 영혼임을 알았습니다. 죽어 마땅한 우리들의 삶을 연장시켜 주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믿음도 주셨습니다. 이런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죽이러 가고 있던 사람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부르고 증거하는 사람을 바뀐 것이 어찌 우리들의 힘이겠습니까? 오직 먼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까? 믿음을 주셨사오니, 강건하게 살게 하옵시고, 살아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믿음이기에, 주님의 이름에 승리를 드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고백:
주님 한번도 주님을 좋아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렸을 때에 교회를 다녔지만, 예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함께 친구들과 돌아다니고 시간을 보내는 것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함께 즐겁게 지냈던 것만 생각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 아닌지요? 왜 예수님은 나를 위해서 죽었는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이런 일을 한 것이 이상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죽음으로 몰려가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이상한 사람으로 까지 보였습니다. 또 예수님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하였다는 사람들을 보면 바보처럼 보였습니다. 예수님을 변호하는 일로 인해서 곤란함을 당하는 친구를 보면, 도와주기 보다는 숨었고, 또는 나도 합세해서, “ 나도 교회를 다니지만 저것은 정말 아니다”라고 하면서 진짜 그리스도인이 된 것처럼 행세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주여, 정말 예수님이 없는 교회를 다녔던 사람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해만 끼쳤던 사람이었습니다. 오, 주님,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늘 방해만 했던 저의 삶을 부끄러워 합니다.


감사 :

오늘의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노력을 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주께서 이 죄인에게 다메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 살아나신 예수님의 모습을 성경을 통해서 생생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주여, 저의 눈에 있던 비늘을 벗겨주셔서, 바른 분을 볼 수 있게 하여주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떤 것도 나를 위해서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나를 지옥으로 보내고 싶어서 , 벗어난 삶만 계획했던 저입니다. 그런데 저로 하여금 보게 하여주시고, 믿음을 주셔서 바뀌게 하여 주셨습니다. 저로 하여금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여 주신 주님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볼 것을 바르게 볼수 있게 하여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남은 생애를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살아가게 하여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간구 :
주님을 바라보는 거듭난 자가 되었습니다. 하늘의 성령 세례를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비늘을 땅에 묻어버리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이제부터 더욱 힘을 내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세상을 흔드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비늘이 벗겨진 눈으로 주위를 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수님을 죽이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죽이는 일들이 지금도 주위에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서 나의 삶의 지경을 넓히는 우리들입니다. 교회에서, 책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울의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주님, 아무리 예수님을 위해서 변증을 해도 한 마리의 고기도 잡을 수 없는 빈 그물만을 씻는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실망과 절망과 패배의 쓰라린 마음을 가진 슬픈 사람들입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사울의 회심을 보고 알았습니다.

오 주님! 사울이 핍박을 하였을 때에도 주위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바뀐 것은 우리들이 아닙니다. 그로 하여금 방향을 정반대로 바꾼 삶을 살도록 하신 것은 예수님 바로 당신이십니다. 한 영혼도 우리들의 손에서는 변화가 없는 것을 잘 압니다. 이런 귀한 일은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 우리가 전도를 위해서 기도를 해야만 하는 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주여, 다메섹의 공간을 우리들에게 주신 것처럼, 많은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허락하옵소서. 특히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눈에서 비늘이 벗어지게 하시고, “내가 그리스도이다”라는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하여주시옵섯. 주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친구들이 주위에 넘쳐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교회에 모이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는 우리가 되게 하옶소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작곡하여 주께 바치려는 귀한 마음을 갖게 하옵소서. 가슴이 터질 듯이 찬송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너무 좋아 온 몸을 흔드는 다윗과 같이 되게 하소서. 우리들에게 믿음을 직접 주셔서, 예수님를 그리스도라고 시인하게 하여주신 주님께서 감사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2017-04-11
14:50:35

 


이드보라
딤후 4:6-8

6.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7.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생사의 주관자이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어느 때인가 살고 죽는 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내 생명은 온전히 나의 것인 줄 알았는데 이 생명을 주신 분이 아버지 하나님이시오, 어느 때이던지 가져가시겠다 하시면 아무도 막을 자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선진들이 죽은 것처럼 나도 언젠가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주님 앞에 갈 줄로 믿습니다.

마치 영원히 죽음 앞에 서지 않을 것처럼 미래의 시간을 계획하고 달려가기를 얼마나 오래하였는지 모릅니다. 마치 내가 죽으면 자동으로 천국으로 갈 것인양 내 모습을 못본 체 살아가던 날이 얼마였는지 모릅니다.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신앙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지도 않았던 날들이 기억납니다. 그 때, 지금보다 훨씬 더 이전에 깨달았더라면 나의 젊은 날들에 대한 후회가 조금은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지금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의 고백을 들어봅니다. 가만히 그의 옆으로 가서 들어봅니다. 죽을 날이 정말 가까워 보입니다. 아니 꼭 죽음 이후의 삶을 본 것처럼, 가본 것처럼 담담하게 또 담대하게 고백하는 그의 말을 들어봅니다. 지난 날들을 돌아보는 그의 얼굴에 후회보다는 기쁨이 넘치는 것을 봅니다. 그도 나처럼 후회할 일 가득하고 그도 나처럼 부끄러운 날들이 가득할 터인데 그는 그런 후회의 고백보다는 확신에 찬 말을 합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봅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사도바울은 주를 만나고 나서 철저하게 주님 앞에 엎드리어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그 아픔과 고통의 시간들을 겪었는가 봅니다. 그리고 주님의 그 은혜로운 죄사함의 은총에 대해 뼈저리게 깨달았는가 봅니다. 그리고 그의 삶은 죄악된 과거에 붙들린 삶이 아니라 주를 위해서 앞을 보고 달려갔던 삶이었나 봅니다. 주를 만나기 전에 주를 미워했고 주의 자녀들을 핍박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쏘다니던 그 부끄러운 시절에 매여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를 만난 이후의 삶 속에서 받았던 그 기쁨의 시간들이 그의 기억안에 가득 차 있나 봅니다.

주여, 나도 사도바울과 같은 마지막을 가지고 싶습니다. 주여, 나도 그처럼 주를 만난 이후의 삶이 후회없는 삶이었노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말합니다. 달려 갈 길을 마쳤다고 말합니다. 믿음을 지켰다고 말합니다. 예배된 의의 면류관을 확실히 믿는다고 말합니다. 주여, 나도 사도바울의 말과 같이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내가 과연, 그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성경을 읽어보고 또 읽어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대단한 사람이고, 나는 그의 발톱의 때만도 못한 사람일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 한없이 수그러지고 작아지는 나입니다.

그러나 주님, 나도 고백할 수 있음을 드디어 깨닫습니다. 사도바울이 그가 받는 그 면류관이, 의로우신 재판장이 주실 그 면류관이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신다고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나에게도 주신다는 말이지요! 나도 사도바울과 같이 주신다는 말이지요! 주여, 나는 만세를 불러봅니다. 죄악에 찌들어 후회밖에는 남는 것이 없는 나의 삶을 뒤로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만 달려갈 소망을 가질 용기가 납니다. 나도 사도바울처럼 용서함을 받고 나도 사도바울처럼 주님에게 받은 은혜가 많기에 나도 소망을 가집니다. 나도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가 되었으니 나도 소망을 가집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나의 죄 때문에 두려웠습니다. 죽음 후의 삶을 미리 그려보면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말처럼 이제 나를 그만 보고 주를 보려고 합니다. 죄인 중에 죄인이요 괴수중에 괴수인 사도바울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에 삶이 바뀌었듯이, 나에게도 은혜를 주셨고 죄의 용서를 베풀어 주신 주님이십니다. 그의 죄를 말끔히 씻어주시는 주가 나에게도 계십니다. 이 얼마나 위로가 되고 소망이 넘치는 말씀인지요. 이 구절을 읽으며 또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주여,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죄인들이 아닙니까? 우리들은 구원의 확신이라는 말만 들으면 벌벌 떱니다. 고개가 숙여지고 가슴이 벌렁거립니다. 확신을 가졌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럽기가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 오늘 깨닫습니다. 그 떨리는 마음이 나만 보았기 때문에 그렇구나, 내 죄만 보아서 그렇구나. 이제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품으시고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엄청난 은혜의 주인이신 주님을 봅니다. 내 죄가 아무리 새빨갛다 하여도 주의 능력이 더 크신 것을 봅니다. 그래서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도, 내 가정도, 내 자녀도, 나와 교제하는 교회의 식구들의 눈을 돌려주시옵소서. 자기의 죄를 보고 회개하되 거기에서 멈추어 절망의 수렁에서 헤매이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생과 사의 주요, 누구보다 크신 주의 능력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럼으로 말미암아 사도바울과 같이 주님 앞에 갈 때에 담대하게 신앙의 고백을 하며 주를 맞이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지난 날이 후회뿐이고 죽기 싫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모습보다, 달려갈 길을 다 마쳤고 나를 위해 예비하신 면류관에 대한 소망의 고백들을 하니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우리들의 마지막이 이러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는 동안, 그 마지막 날을 위해서 그 날 이후의 영원한 삶을 위해서 매일 회개하고 주의 공로를 의지하는 나와 내 친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도바울에게뿐만 아니라 나와 주의 형제자매들에게까지, 주의 나타나심을 소망하는 모든 자들에게까지 은혜 베풀어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2017-04-13
21: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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