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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연습, 이렇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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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계시는 주님”(눅 22:60-62)
김 에스더  (Homepage) 2017-04-01 08:52:07, 조회 : 1,072, 추천 : 210

기도 연습, 이렇게 하라


“나를 보고 계시는 주님”


묵상구절 : “눅 22:60-62”

60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방금 말할 때에 닭이 곧 울더라
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이번 주에 우리가 묵상할 말씀의 인물은 베드로이다. 베드로가 등장한 사건이나 베드로가 말한 말씀(베드로 전, 후서), 혹은 베드로와 관련된 성경구절 가운데서 일부를 선택하여서 그 구절을 묵상한다. 묵상한 말씀으로 찬양, 감사, 고백 그리고 간구와 중보기도의 기도문을 작성한다.


첫째. 말씀 묵상하기 (눅 22:60-62)


        오늘의 사건은 베드로의 일생에서,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특히 사복음서에서 모두 기록하고 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이 사건은 이미 예수님에 의해서 예언된 것이었다. 그 때, 베드로는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눅 22:33)”라고 말하였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런 마음도 미리 아시기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브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1-32)”

        우리들의 마음은 베드로와 같다. 믿음과 은혜를 깨달은 우리의 마음은 베드로의 마음처럼, “주님을 결코 부인하지 않으리라. 주님의 이름을 결코 더럽히지 않고 살아가리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되리라. 주님을 부인할 때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리라”고 결심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나의 삶을 돌아보면,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예수님을 부인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고 나서 통곡하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 나를 위해 주님은 오늘도 기도하고 계신다. 사단에 넘어지지 않도록, 나의 죄된 삶에서 돌이키도록 나의 이름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부르고 계신다. 그리고 주님은 통곡하는 나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하라”

        그렇다. 회개한 삶은 결코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부터 회개하지 않으면, 나는 주님이 명하신 일을 감당할 수 없다.

        나는 오늘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사건의 구절 가운데 61절에 초점을 두고 묵상을 하였다. 고문을 받으시기 위해 대제사장과 유대인들 가운데 서신 주님은 자신을 부인하는 베드로를 보았다. 베드로도 주님이 보고 계심을 알았다.

        그때 주님은 베드로를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셨을까? 3년간 제자의 맏형으로서, 믿음의 본으로서 예수님과 함께 생활했던 그 제자가 자신을 부인하는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무엇을 생각하셨을까? 아마도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셨을 것이다.

        그때 베드로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본문은 그제서야 베드로가 주님이 이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고, 그래서 밖에 나아가 심히 통곡을 하였다고 말씀한다.

        죄를 짓는 동안에도 주님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계신다. 그때 주님은 나를 보며 무엇을 생각하실까? 왜 죄를 짓느냐고 질책하고 계실까? 아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신다. 성령하나님을 통해 주님이 생각나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날 수 있도록 기도하고 계신다.

        그러면 죄를 짓는 가운데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주님을 바라보는 일이다. 늘 함께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일이다. 그때 나의 어두운 마음에 빛이 되어 떠오르는 말씀이 있을 것이다. 비록 주님의 말씀 때문에 나의 죄가 드러나고 부끄럽다 할지라도, 나는 통곡을 하며 돌아서야 한다. 돌아선 후에는 나에게 허락하신 형제자매들을 굳게 해야 한다.

        지금도 나를 돌아보시며 나를 위해 기도하여 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본다. 나를 향해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듣는다. 그리고 그 크신 은혜에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둘째. 묵상한 말씀으로 기도하기

1. 찬양

        오늘도 나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의 마음에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도록 늘 역사하여 주시는 성령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의 말씀을 보면서, 제가 베드로가 되어보았습니다. 주님을 모른다고 저주까지 하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보다 더 악한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아마 제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저는 예수님께 돌을 던지는 무리가운데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 저를 오늘 이 자리까지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을 부인하던 자리가 어디 한 두번이었습니까? 교회에 오기 싫어서 여러 가지 핑계를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예배와 찬양도 마음과 성실함 없이 드리던 적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요? 그때마다 저를 보시는 주님은 무엇을 생각하셨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보면서 분노와 저주 대신에, 돌이킬 수 있도록, 사단의 손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 주신 주님을 보게 됩니다. 그런 주님의 기도 때문에 오늘 제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음을 믿습니다. 주님은 정말 사랑이십니다. 주님은 정말 나의 삶의 주인이십니다. 주님을 미워하던 때부터 이미 주님은 저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셨고 제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주셨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찬양이 되심을 고백합니다. 주님만이 나의 구원자 되심을 고백합니다.

2. 감사

        지난 삶을 돌아보면서, 나를 자랑할 것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수도 없이 넘어지고 일어나는 삶 가운데서, 주님의 기도와 인도하심이 나를 이끌었음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어리석고 악한 인생을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겨주셔서, 주님의 얼굴을 돌려주시고 볼 수 있게 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3. 고백

        나의 삶을 돌아보면, 죄를 짓고 난 후에,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후회하고 애통하던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 왜 그랬을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조금만 더 참지 못했을까? 왜 그리도 악했을까? 나를 보시는 주님을 보지 못했고, 보고 계시는 주님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보지 않으려고 애를 쓰던 지난 삶들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나를 위한 십자가의 그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나를 돌아보시는 주님을 부인하고 죄 가운데로, 내가 좋아하는대로, 내가 스스로 살아가려고 애를 쓰던 때를 회개합니다. 오, 주님. 그런 저를 싫다 하지 않으시고, 불쌍히 보아주셔서, 사랑으로 보듬어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4. 간구

        이제는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서는 제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 때문에 주님을 부인하는 자리에 가지 않게 하시고, 주님이 돌아보실 때마다 기뻐하실 선택만을 하는 저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하시는 주님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죄로 인해 저의 마음이 애통할 때마다 진정한 회개의 발걸음과 열매가 맺어지게 하시고,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게 하여 주셔서, 죄와 멀어지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나의 부족함을 너무도 잘 아시는 주님. 간절히 바라건대, 저의 심장을 주님의 것으로 바꾸어주셔서 입술이 바뀌게 하시고, 저의 지혜를 주님의 것으로 채워주셔서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되어서 거룩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회개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루가 지나면, 회개의 거리를 더 쌓아두는 제가 아닌지요. 진정으로 회개하는 삶으로 인도하여 주셔서, 회개의 제목들이 줄어가게 하시고 감사의 찬양으로 채울 수 있게 하여주셔서, 주님이 돌아보실 때, 주님의 얼굴에도 나의 얼굴에도 웃음과 기쁨이 피어나게 하옵소서.

        주님 앞에 서 있는 우리 청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이 돌아보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 청년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이 그들의 마음에 깨달아지고 주님의 얼굴을 돌아보는 우리의 청년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청년의 즐거움의 때를 기뻐하고 즐겨하면 무엇을 합니까? 모두 헛된 것이 아닙니까?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고 주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임하는 은혜를 입기를 소원합니다. 세상만물이 창조주이신 주님께 모두 돌아가기 전에 주님의 낯을 보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서는 우리의 청년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함으로 말미암아 그들로 인하여 함께 신앙생활하는 형제자매들이 더욱 굳건한 믿음으로 서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임 바울
눅 5:1-11
갚아주시는 하나님

예수님이 게네사렛에서 많은 무리에게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 옆에는 밤새고 낚시를 하였지만 아무것도 잡지를 못해서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허탈함에 빠진 그들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오셔서 배를 육지에서 조금 띄우게 하시고, 잠시동안 많은 무리들에게 못마친 설교를 하셨습니다. 설교를 마치시고 나서 예수님은 아무것도 못잡은 어부들을 깊은 데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게 하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옆에 있었던 이웃도 많은 고기를 잡는 혜택을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일을 하신 이유는?
베드로로 하여금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 베드로는 자신이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도저히 그 분앞에 서있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자기를 도망가서 또 허무한 삶, 노력을 하지만 얻을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가장 귀하고 값진 예수님이 이 땅에서 오셔서 하신 일을 베드로에게, 야고보고에게 그리고 요한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찬양:

우리의 고통을 아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고 우리들은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눈앞에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는, 값어치 없는 존재는 있지를 않습니다. 밤새고 일을 하였지만 아무 것도 얻지를 못해서, 걱정하고, 허탈하고, 화가나는 우리들을 찾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일을 명령하셨습니다. 늘상하는 일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이기에 주님의 말씀을 따라 배를 띄웠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니고, 너무 쉬운 일이고, 주님이 아니라고 하여도 요구하는 사람에게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지요? 주님께서는 우리가 한 아주 조그마한 일에 백배나 넘는 것으로 갚아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들의 배까지도 가득채우는 풍성함을 주셨습니다. 무에서 유가 생겼습니다. 허탈감에서 벗어나 기쁨을 주셨습니다. 없는 것에서 있도록 하시되, 넘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주여, 찬양합니다. 죄인이고, 갖고 있지 않은 자에게도 찾아오셔서 넘치게 주셨습니다.


고백 :
찾아오셔서 일을 주시고 넘치게 하여주시는 주님! 주님께서 시킨 일중에 어려운일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어려운 일을 시키시는 분이십니까? 에덴동산에 아담의 회상해봅니다. 모든 것을 다 주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되심을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피조물을 구별하기 위해서, 단 한가지 금하였습니다. 동산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부탁을 하셨습니다. 먹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미리 가르쳐주기까지 하였습니다. 얼마나 대담한 우리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지 않겠다는 고집된 마음을 갖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렇게 쉬운 일까지도 듣지 않으려는 악한 죄인입니다. 어려운 것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쉬운일까지도 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은 악하고 악한 우리들입니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자기 먹을 것에 열중해서 거들떠 보지 않는 베드로가 바로 우리가 아닙니까? 하나님이 찾아오지 않아서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들을 방문하지 않아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까지도 무시하고, 이겨먹으려는, 아니 하나님이 되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절대로 듣지 않으려고 하는 귀먹어리입니다. 주님 용서하옵소서. 가까이 계시는 , 종일토록 손을 벌려 우리를 기다리는 주님을 무시하며 살았던 저희들을 용서하옵소서.


감사:
이런 제가 바뀌었습니다. 이런 제가 주님 찬양하는 것을 사랑합니다. 주님 찬양하고, 사무엘처럼 주님의 집에서 머물며 살기를 원합니다. 이런 마음을 갖는 것을 보면 저의 마음은 아니고, 저에게서 나온 마음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이런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요? 이런 설레는 마음, 주님의 이름을 눈물없이는 부를 수 없는 마음이 되게 하신 것은 오직 주님이 아닙니까? 오주여, 없는 저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주셨는지요? 허탈감에 빠져 불안했던 저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주었는지요? 매일 매일 짓는 죄를 참으시면서, 항상 거주하시는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아내와 자녀를 주었습니다.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교회를 주셨습니다. 더욱 기쁘고, 신이 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같이 살 형제들을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우리들입니다. 이제 감사의 옷을 입고, 주님 찬양을 연습하고, 주님의 집에서 온갖 몸짓과 표정을 지으면서 형제들과 함께 노래하게 하여주었습니다.


간구:
주님, 채워주시는 주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았던 베드로를 통해서 형제들이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옵소서. 저의 근본을 알게 하여주옵소서.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내가 어떤 조상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를 알게 하옵소서. 빈손을 왔기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얻지 못한 나이지만, 지금 갖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주님을 위해서 쓴다고 하여도 손해가 없는 인생이오니, 주님의 것으 주님에게 바칠 수 있는 저가 되게 하시고, 그래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고, 함께 주님의 일을 하는 동역자들을 갖게 하셔서, 지안 교회가 말씀따라 그물을 던져 많은 사람을 낚는 2017년도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2017-04-04
10:33:19

 


이드보라
막 14:66-72

66.베드로는 아래 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비자 하나가 와서 67.베드로의 불 쬠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쌔 69.비자가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당이라 하되 70.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 71.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72.닭이 곧 두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베드로보다도 못한 나를 참아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주님 앞에서 또 한번 기도의 시간을 가져봅니다.
앞서간 믿음의 선진이며 또 나의 믿음의 형제된 베드로를 보면서 오늘 나의 모습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그 사랑이 한량없이 넓으신 아버지 하나님, 그의 무자비한 거절과 부인에도 참으시고 기다려 주시는 은혜를 보면서 부끄러운 내 모습이 떠오릅니다.

내 안에 있는 주를 향한 사랑과 충성심, 그러면서도 내 유익과 불신앙의 모습들이 남아있어 날마다 내 안에서 싸우고 부딪히며 죄로 쌓여가는 것을 봅니다.
그는 주님의 뒤를 따라 대제사장의 뜰 안에까지 갈만큼 용기를 가졌습니다. 주님 앞에서 나는 절대로 주를 떠나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쳤던 사람입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생명을 빼앗길까봐 두려워서, 자기에게 손해가 있을까봐 두려워서 주를 모른다고 맹세까지 하면서 손사레를 칩니다.
주여 나의 모습이 아닌지요? 주를 찬양한다고 하면서, 주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내가 예수님을 믿는 제자인 것을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하지는 않았는지요?
굳이 말할 필요 뭐있나 하면서 내 안의 예수를 감춘 적은 없는지요.
베드로보다 더 나쁘고 더 악한 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마음을 두드리시어 기억나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부인할 거라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기억나니 어찌 베드로가 회개하고 울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베드로의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이 갑니다. 나도 주를 대적하고 거절했던 시간들이 떠오르면 베드로의 마음과 같이 회개의 눈물이 납니다. 그러지 않고 싶어서 결심하고 결심하지만 나의 삶 속에는 불신과 배신의 모습들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주님, 그럴 때마다 나로 하여금 기억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나의 마음까지 살피시고 나를 아시며 나의 모든 죄를 다 아신다는 것을 기억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였던 나의 모습들이 이제는 좀 줄어들고 예수님 때문에 힘을 얻어 주를 자랑하고 다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장사를 하려면 밑천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주의 말씀을 때마다 시마다 기억하려면 주의 말씀을 사모하고 공부해야 하는 줄을 믿습니다. 이 정도면 되었지, 이만하면 되었어 라는 교만한 생각을 버리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공부하고 듣고 배우면서 주께서 기억나게 하심으로 나의 모습이 변화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평생 주의 말씀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돋보기를 쓰고 주의 말씀을 배우며, 배우는 자리에 앉아있기를 원합니다.
병을 핑계로, 나이를 핑계로, 바쁜 삶을 핑계로 멀어지지 않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세상풍조에 따라 요동치며 밀려다녔을 것입니다.
그 가치관을 자랑삼아 교만하게 뻐기고 다녔을 것입니다.
말씀은 얼마나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말씀은 얼마나 나의 죄가 기억나게 하고 주의 은혜가 생각나게 하는지 모릅니다.
주여! 배우는 자리, 기억날 말씀의 밑천을 얻을 수 있는 자리에 나를 불러 주시옵소서.

주님, 나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공부하는 것이 때로 우리에게 짐으로,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공부하는 발걸음을 늦추고 다음으로 미루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주님, 배우지 않았을 때 우리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너무 많은 세상적인 시간과 정보에 노출되어 있는 것을 깨닫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주일날 듣는 설교에만 의존하면 우리가 시험들고 죄지을 때 기억할 주의 은혜와 말씀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붙잡을 수 있는 결단력도 주시옵소서. 함께 공부하기를 원하는 성도들이 발걸음하였을 때 나의 기쁨은 참으로 큽니다.
다른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 공부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과 신앙을 붙잡아 주기 때문입니다. 주의 은혜를 자꾸 떠오르게 해주고, 나의 죄를 회개하게 만들고 경건한 삶으로 자꾸만 자꾸만 인도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것 같습니다. 1년이 금방 가고 10년의 세월이 쏜살같이 흐릅니다. 주의 말씀 배울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않음을 깨닫습니다. 주여, 결단하게 하시고 말씀을 배우는 것을 내 시간에 충분히 할당하게 하시어서 세상의 불신풍조에서 멀어지게 하시고 나를 성장시켜 줌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다 보면, 그렇게 가랑비에 옷젖듯이 배우다 보면, 평생을 배우다 보면 어느날 누군가에게서 ‘너는 참으로 예수당이다’라는 말을 들을 것으로 믿습니다.
나도, 내 사랑하는 성도들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당냄새를 풍기는 제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말과 행동을 보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도록 우리를 가르쳐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평생, 주의 말씀을 배우고 익히는 삶으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며 나의 기억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2017-04-13
21: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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