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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강 베드로
임 바울  2013-12-02 17:57:36, 조회 : 2,311, 추천 : 336

제 5 장
베드로(Peter)

  
1. 로마 카톨릭의 입장
2. 반석
3. 열쇠
4. 베드로는 교황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았다.
5. 베드로에 대한 바울의 태도
6. 베드로를 향한 다른 사도들의 태도
7. 베드로는 로마에 간 적이 있는가?
8. 바울의 로마 서신
9. 결론


1. 로마 카톨릭 입장

교회에서 베드로의 위치에 대한 논란 구절은 마 16:13-19절이다.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마 16:13- 19]   (13)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 구절을 카톨릭이 공식 성경인 Confraternity Version은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한다:
“ 반석은 베드로이다…… 음부의 권세는: 적의를 가진, 악한 권세. 그들의 공격적인 힘은 교회에 대항해서 헛되게 될 것이다. 교회는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 그는 완벽하다. 그리고 그녀는 가르치는 직분을 갖고 있으며, 오류가 범람한다고 할지라도 교회는 이겨나갈 것이다. 교회는 오류가 없다.  열쇠: 권위의 상징. 베드로는 교회에 들어올 사람과 축출할 권리를 가진다. ‘ 매고 푼다는 것은 금지하고 허락한다는 점에서 유대인들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문맥은 더 보편적인 의미를 요구한다. 천국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땅에서 베드로가 한 결정을 승인한다” (pp.36-37).

        그리고 대감독이자 미국 로마 카톨릭의 대표자중에 한 사람이며 고인이 된  추기경 Gibbons은, 넓게 인기를 끌은 ‘Faith of our Fathers“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 베드로에게 첫째가는 명예와 전 교회를 다스리는 권세를 주님은 부여하였으며, 똑같은 영적 수장권이 항상 교황, 또는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추종자인 모든 성도들, 즉 사제와 평신도 중에서 사도 베드로를 계승자로서 로마의 감독에 있다고 카톨릭 교회는 가르친다. 베드로가 주님의 계승자로서 다스리는 로마 교회와 일체가 되어야 한다. “(p.95)


          로마 교회의 전체 구조는 마 16:13-19절에서 그리스도가 베드로를 첫번째 교황으로 인정하였으며 그래서 교황제도가 확립된 것이라는 추측속에 세워졌다. 베드로의 우월성을 부인하게 되면, 교황제도의 기초는 무너진다. 교황제도가 무너지면, 전체 로마 사제 계급제도는 쓰러지게 된다. 사제의 체계는 절대적으로 베드로가 로마에 첫번째 교황이라는 주장에 절대적으로 달려있다. 그들은 그의 계승자라고 한다. 우리는 다음의 세가지를 제안한다: (1) 마 16:13-19절은 그리스도가 베드로는 교황으로 임명했음을 가르치지 않는다; (2) 베드로가 로마에 있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3) 신약은, 특별히 베드로 자신의 서신에서도  자신이 사도들 위에 또는 교회위에 권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 그 권위가 베드로에게서 온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2  반석(The “Rock” )  
“[마 16:18]   (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로마 주의자들은 즐겁게 이 구절을 인용하며, 교황의 권위를 주장하기 위해서 그들 마음대로 해석을 한다. 그러나 헬라어에서 베드로라는 단어는 <Petros>이며, 인칭대명사이고, 남성형이다. 반면에 반석이라는 단어는 Petra이며, 여성형이며, 인칭대명사가 아니기에 베드로가 방금 말했던 그리스도의 신앙고백인 “ 당신은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이다”를 지칭하는 것이다.  베드로의 이름을 사용하고, 언어유희를 하시면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을 한 것이다, “ 너는 Petros이다 내가 이 petra 위에(너가 방금 한 신앙고백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다.” 베드로의 고백위에 교회가 세워져야 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이 진리를 이길 수 없으며, 심지어 음부의 권세도 그것을 넘어트릴 수 없는 그의 인격에 대한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진리를 보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베드로는 제자 중에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보았던 첫번째 사람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영적 통찰력을 칭찬하였고(사실은 그가 스스로 깨달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깨닫게 해주신 것이다), 그의 교회는 이런 사실 속에 세워져야 함을 말했다. 그러나 교회가 베드로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임을 인지해야 한다.      

        교회가 베드로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이 말하려고 했다면, 그가 한 말중에서 단어를 여성형으로 바꾸었다는 것은 우스운 것이 된다. 우리가 문자적으로 다소 별나게 번역을 한다면 다음과 같게 된다. “  나는 너에게 말한다, 너는  Mr. Rock이다 이 Miss Rock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이런 문장을 조사해보면 카톨릭이 주장하는 해석은 가능하지가 않다. 베드로가 고백한 진리, 즉 그리스도의 신성위에 세워지는 것이지, 약하고, 변덕이 심한 베드로위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헬라어 “Petros”는 아주 조그맣고, 움직이며, 단순한 조약돌을 언급할 때 사용된다. “Petra”는 움직이지 않는 기초, 반석, 암층 즉 방금 베드로가 신앙고백한 기본적인 진리, 그리스도의 신성을 의미한다. 사실 이것은 오늘날 복음주의 안에서 그리고 자유주의자들 사이에서도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교회는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성경에서 계시된 참된 하나님 그리스도위에 세워져야 하는가 또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를 모범으로서 하는 위대하고 좋은 사람으로 그러나 그의 신성을 부인하거나 무시하는 사회봉사와 복지 단체인가.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들에게 말하기를, 교회는 베드로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터로 삼고, 그리스도 자신을 모퉁이 돌로 해서 세워진다고 말한다(엡 2:20). 또 이미 놓여진 예수 그리스도이외의 다른 사람를 기초로 해서 교회는 세워질 수 없다고 하였다(고전 3:11). 이런 기초가 없다면 참된 기독교인은 존재할 수 없다.


        마 16:18절이 교회가 베드로위에 세워질 것을 의도했다면, 이와 같이 기록되어야 했을 것이다. “ 너는 베드로라, 너 위에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울 것이다’ 또는 “ 너는 베드로라 너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식으로 말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는 두개의 완전하고 다른 진술을 하였다. 너는 베드로다. 그리고 이 반석위에( 성이 바뀐 것은, 주어가 바뀌었음을 암시한다) 내가 교회를 세울 것이다.”


        만약에 베드로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하였다면 그 다음에 이어서 나오는 구절과는 상당한 마찰을 겪게 된다.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똑같은 문맥속에서 음부의 권세는,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를 즉각 넘어트렸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것을 부인하였다. 이것은 즉시 일어난 사건이었으며, 다른 제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아주 혹독한 책망을 받았다, “[마 16:23]   (23)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방금 교황으로 임명되었던,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좀 심한 말일 수 있다.


        후에 예수님이 고민 중에 있을 때에 베드로가 겟세마네에서 잠을 잤다고 기록되어 있다. 종의 귀를 자르는 그의 성급한 행동은 예수님의 책망을 일으켰다. 자신은 주인을 위해서 죽을 것이라고 자랑했지만, 곧 창피하게도 맹세를 하면서 부인을 하였고 그가 예수님을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저주를 퍼부었다(마 26장, 막 14장, 눅 22장, 요 8장: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 사복음서가 전부 기록을 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심지어 오순 절 후에도 베드로는 이런 심각한 오류를 하였다. 그의 위선은 바울에 의해서 책망을 받았다, “[갈 2:11]  (11)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로마교의 교리에 의하면 이때에 이미 베드로는 전권을 다 인수 받았다고 한다)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그리고 로마주의자들은 베드로의 계승자로서 그들의 교황이 신앙과 윤리적인 문제에서 오류가 없다고 단언한다.


        베드로의 가까운 동반자요 견습생으로서 기독교 최초에 쓰여진 마가 복음은 가이사라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고백을 기록한 “반석”에 대한 어떤 기록도 남겨놓고 있지를 않다(막 8:27-30). 그리스도는 자신의 교회를 약하고, 죄있는 사람위에 세우지 않는다. 베드로의 고백속에서 강하게 표현된 본질적인 그리스도의 신성이 기초석이고, 출발점이고 교회가 세워지는 기원이 된다.


        어떤 우월적인 지위도 베드로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 중에서 가장 높은 자가 누구이냐는 제자들의 논쟁에서 분명해진다. 이런 지위가 주어졌다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주어진 권세를 말했을 것이다. 대신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막 9:33-35]   (33)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35)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 [막 10:35-44]   (35)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39)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42)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어거스틴과 제롬과 같은 교부들은 이 구절에 대한 개신교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으며, 반석은 베드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로마교의 해석을 따른다. 그러나 이것은 로마 교회가 이 주제에 대해서 말하는 것처럼 모든 교부들이 일치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Dr. Harris “반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가복음은 초기 기독교 전통에 의하면 베드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한 말을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베드로 서신에서도 이런 주장을 볼 수 없다. 심지어 벧전 2:6-8절에서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부르고 있으며 기초석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에게 이런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분명하게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머릿돌로 한 영적인 집들로 세워진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반복해서 반석이라고 불리운다. 이것의 배경은 하나님이 반석 또는 이스라엘의 반석이라고 약 40번이나 불리웠던 구약에 기초를 두고 있다(시 28:1. 반석 = 하나님). 이것은 하나님의 명칭이다. 메시아 구절인 사 8:14, 28:16, 그리고 시 118:22절에서 , 그리스도는 반석 또는 우리가 믿어야 하는 기초석으로 불리운다.  이런 구절들이 신약에서 인용이 되었고, 이런 이유때문에 그리스도를 여러번 반석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그를 하나님으로 지명한 것이다. 이런 이유때문에, 구약을 알고 있는 모든 유대인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자녀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베드로나 어떤 사람들에게도 이 명칭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는 반석이다. 우리는 그 위에 세워진 살아있는 돌이다. 엡 2:20절은 명확하게 설명한다, 우리는그리스도 자신을 기초석으로 해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위에 세워졌다고 하였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물을 마신 것은 반석을 통해서라고 하였으며, 이 반석은 그리스도라고 하였다(고전 10:4). 신약에는 12개의 기초석이 있으며 이것 위에는 12사도의 이름이 있다. 그들중에 어떤 사람도 탁월하지 않다” (TheBiblePresbyterianReporter,January,1959.)


          그리고 Dr. Henry M. Woods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그리스도가 베드로가 반석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도했다면, 진술은 다음처럼 이루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 너는 베드로라, 너 위에 나는 내 교회를 세우겠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베드로가 교회를 세우는 반석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 반석위에”라는 표현에서 , 우리 주님은  베드로를 위해서 사용했던 Petros와는 다른 헬라어 Petra를 사용하였음을 주목해야 한다. 주님은 베드로가 아니라 그가 방금 그에 대해서 발표한 위대한 진리 즉 우리 주님이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이 교회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영원하신 구원자인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야만,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길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악의는 없지만 죄있는 베드로위에 세워진다면, 음부의 권세는 확실하게 승리를 하게 될 것이다. 조금 뒤에 우리 주님이 심하게 베드로를 “사단’이라고 부르면서 책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OurPricelessHeritage,p.40).
  

3 열쇠( The “Keys”)    
          [마 16:19]   (19)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틀림없이 이것은 해석하기가 어려운 구절이며, 여러개의 설명들이 주어졌다. 그러나 매고 푸는 권위는 오직 베드로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마 18장에서 똑같은 권세가 모든 제자들에게 주어진다.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마 18:1,18]
  (1)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결과적으로 마 16:19절은 베드로의 우월성을 증명하지 않는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똑같은 권세를 갖고 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 23:13]  (13)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다른 경우에 그는 말하기를, “[마 23:2-4]   (2)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4)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손에 있다는 점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함으로서 그들에게 천국문을 열고 말씀을 보류함으로서 그들이 천국을 닫을 수 있는 권세를 갖고 있다. 율법을 준 것은 모세의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구원을 허락한 조건들을 선포할 권위를 말하는 것이지 천국에 들어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절대적인 권세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것을 할 수 있으며, 그는 이 권세를 사람들에게 부여하지 않았다.

        눅 11:52절은 말하기를, “  [눅 11:52]   (52)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여기서 말하는 지식의 열쇠는 구원의 열쇠이며, 이것을 통해서 우리느 천국을 얻는다. 지금 바리새인의 손에는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있음으로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관리인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왕국의 열쇠를 갖고 있다. 그들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실패하였기에 이 열쇠를 빼앗겼다. 그들은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도 막고 있다.


        게다가, 베드로에게 말한 것에, 묶고 매는 것은 “어떤 것”이지 “어떤 사람”이 아니다. 이것은 구약 세대의 관습이나 의식법들은 없어져야 하고 복음 세대의 새로운 의식과 관습이 세워져야 하는 것과 같다.
        
        이런 점에서 열쇠는 복음의 선포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는 권세를 상징한다. 제자들이 하라고 위임된 것은, 할 혜택이 주어진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것과는 반대되는 일들을 하였다. 즉 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도록 장려를 했어야 했다.

        물론 모세가 사용하였던 자리는 어떤 물질적인 것에 있지 않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지금 이 자리를 사용하고 있다. 모세의 법을 갖고 있는 그들은 본래가 권위가 있고 선하며 순종해야 하는 교훈들을 베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교훈에 따라서 그들은 살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도 그들의 예를 따라서는 안된다.

        열쇠는 묶고 매는 능력을 가진 권위의 상징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점에서 제자들이 했던 일에 대한 결과는 그들의 위치를 천국에서 영원히 갖게 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들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영생을 세워나갔다. 왕국의 열쇠에 대해서 자신이 세우려는 집을 천국과 비교하는 비유를 하였다. 마치 반석위에 지슨 것과 같다( 마 7:24). 이 집에 들어가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이다. 이 문은, 첫번째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나서 이방인들에게 공개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을 인식하고 다른 어떤 제자들 보다 먼저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먼저 이 문을 열 첫번째 사람이 되도록 위임되었다. 이런 점에서 열쇠가 그에게 먼저 주어진 것이다. 자신의 설교를 통해서 3천명이 회심을 한 오순절 때에 유대인들에게 신앙의 문을 열 첫번째 사람이 되는 명예를 그가 가졌다(행 2:14-42), 조금 뒤에 이방 세계에 믿음의 문을 여는 영광을 고넬료의 집에서 얻게 되었다(행 10:1-48). 이런 점에서 베드로에게 이 열쇠가 주어졌지만,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다른 사도들에게도 열쇠가 주어졌다. 베드로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왕국의 문을 여는 첫번째 영예를 받았지만, 그는 다른 어떤 권위도 주장하지 않았다. 따라서 모든 다른 면에서 그는 다른 사도들과 똑같은 기반을 가진다.

        열쇠를 가졌다는 것은 , 지금 로마 카톨릭이 이 권위를 교황과 사제들에게 수여하는 것과 같이 베드로가 누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하고 누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하지 못하게하는 권세를 다른 사람들중에서 주권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의미하지 않는다. 궁극적인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다. 열으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권세를 그만 갖고 있다(계 3:7). 복음의 메세지를 갖고 있는 베드로와 다른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선포한 말씀을 통해서 천국의 문을 열고 들어갈 기회를 제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에게 구원의 문을 열고 닫는 똑같은 혜택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다. 예수님은 그의 교회에게 가서 모든 나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열쇠의 권세는 단지 선포하는 권세만을 의미한다.

        로마 카톨릭은 “반석과 열쇠”라는 이 두 구절에 기초해서 그들의 교회를 세웠다고 말할 수 있다. 베드로에게 주어진 권세는 절대적이며 그들의 계승자에게 전달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전환을 가르치는 성경구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그들은 인정한다. 이런 열쇠의 권세하에, 로마 교회는 “하늘에게 하나님은 땅에서 베드로가 한 결정을 승인한다”라고 주장한다(footnote, Confraternity Version, p. 37).

        베드로 그 자신이 이런 권세의 허락을 인식했는가를 아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행 2:21]   (2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로마 고넬료의 집에서 그는 보편적인 복음의 초청을 하였다. “[행 10:43]   (43)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의 설교에 의해서 , 신약에 다른 곳에서처럼, 구원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설명되었다. 어떤 곳에서도 베드로에게의 순종과 교황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순종이 구원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암시하지 않는다.

        로마교는 교회 회원들에게 명령에 대한 순종을 확보하고 두려움을 주고 구원을 위해서 교회의 끊임없는 순종을 요구할 정도로 열쇠의 권세를 남용한다. “어머니 교회”라는 끊임없는 언급을 하면서 두려움과 의존감을 조장하는 것은 로마교회가 회원들에게 가지는 권세를 설명해준다. 심지어 그들은 그들 교회가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것들을 읽거나 듣는 것초자 두려워 할 정도까지 갔다. 이런 가르침이 어렸을 때부터 그들에게 임했기 때문에, 로마 교회가 지금 평신도들에게 행사하는 막강한 권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4.  교황의 권세를 베드로는 주장하지 않았다( Papal Authority Not Claimed by Peter )  
        베드로는 로마에 첫번째 감독이며 또는 교황이라고 주장했으며, 후에 교황들은 그의 승계자라고 로마교는 주장한다. 사람의 입장과 권위의 최선의 증명은 그 자신의 증거이다.  베드로가 교황이라거나, 또는 다른 사도들보다 수장이라고 주장하는가? 다행히도, 그는 두가지 서신을 썼고 신약에서 이것들이 발견된다. 거기에서 똑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의무를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입장 또는 확실한 지시를 하고 있다.
        “[벧전 1:1,5:1-3 ]
  (1)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  (1)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2)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3)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여기에서 베드로는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희생 제사장과는 어떤 관계도 없는 장로( 헬라어로서는presbuteros이다). 그는 교회적인 우월성을 전혀 갖고 있지 않으며, 자신이 권면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준에까지 내려가는 깊은 겸손함을 보여주고 있다. 교회는 민주적이어야 하며, 권위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지도자들이 사람을 지배하고, 돈을 위해서 일하거나 또는 부당하게 돈을 취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자신해서, 심지어 열심히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들의 온유한 삶을 통해서 사람들의 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로마 교회가 직접적으로 이런 교훈에 반대된다는 사실이다. 교만한 교황이 이런 겸손한 자세를 취할 것이라고 어떤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가?  교회가 본래의 단순성과 영적 능력을 상실하였을 때에, 그리고 세상의 흐름에 잠겨졌을 때에, 교황의 독재적인 권우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을 몇 세기 후이다. 4세기 후에, 로마 황제가 무너지고, 로마 감독이 씨이저의 자리에 올랐을 때에,  이방 로마 종교의 수장을 뜻하는 Pontifex Maximus라는, 이방인의 직분을 취하여 씨이저의 권좌에 앉았으며, 자신을 씨이저의 화려한 옷으로 장식하였다. 그들은 이후로 이런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Pontifex라는 직분에 대해서, StandardInternationalEncyclopedia는 말하기를, “ 두 명의 유명한 종교단체의 회원들에게 고대 로마에 의해서 주어진 직책이다. 최고의 직분을 Pontifex Maximus라고 부른다. Pontiffs는 공식 종교를 지배한다. 그들의 머리는 국가에서 가장 높은 종교 권위를 가진다.,,,,, 황제Julius Caesar의 다음이 Pontifex Maximus이다. Theodosius 시대에( A.D. 395년에 죽은 황제), 이 직분은, 지금 로마 카톨릭 교회의 수장이 갖고 있는 교황과 똑같은 직분이다. “

        베드로는 사람들로 부터 경배를 받는 것을 거절했다. 이달리야 백부장인 고넬료가 그의 발에 엎드려서 그를 경배하려고 하였을 때에, 베드로는 신속하게 저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행 10:25-26]   (25)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그러나 교황은 “거룩한 아버지”라는 신성모독적인 직책을  사실적으로 자신들이 그런 것처럼 받아들인다. 추기경, 감독, 그리고 사제들은 회중들과 그들 자신을 구별하고 있으며, 사람들 위에 군림을 하고 있다!


       확실히 베드로가 “ 교회의 수장”, 즉 교황이라면, 그는 일반서신에서 이 사실을 선포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권위를 주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교황들은 이런 요구를 하는 일에 전혀 주저하지 않았으며, 가능하면 멀리까지 그들의 권위를 확장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사도로서만 자신을 언급하고 있다( 다른 11사도와 마찬가지로). 장로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역자로서만 자신을 언급하고 있다.  

5  베드로에 대한 바울의 태도(Paul’s Attitude toward Peter)    
        베드로에 대한 바울의 태도를 주목하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교회가 세워진 뒤에,  바울은 사도가 되었다. 그러나 베드로가 교황이었다고 한다면 반드시 이런 선택에 관여를 해야 했지만, 사실 베드로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선택이 이루어졌다.  대신에 하나님이 부르고 베드로와 상의없이 바울을 임명했다. 그 이후로 로마 교황의 재가없이 수없이 많은 사역자와 전도자들이 부름을 받고 임명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은 바울을 부르고 임명했다. 바울은 구원의 방법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으며, 생명과 죽음에 대한 신비에 대한 계시된 진리를 많이 갖고 있는 사도중에 가장 위대한 사도이다. 그는 베드로보다 더 많은 서신서를 썼다. 그의 13권의 책은 2,023의 구절이 있지만, 베드로의 두개의 서신에는 단지 166구절만이 있다. 우리가 히브리서를 바울의 저작으로 돌린다면 (로마 카톨릭은 그들의 성경에서 히브리서를 바울의 저작으로 인정한다), 그는 훨씬 더 많은 분량을 썼다. 베드로의 서신은 서신서중에서 첫번째가 아니라 바울 다음이다; 그리고 사실 그의 두번째 서신서는 교회에서 가장 늦게 정경으로 받아들였다. 바울은 베드로보다 훨씬 더 많은 기적을 행하였다. 베드로보다 더 많은 교회를 세웠다. 우리가 믿기로는 평신도들이 세운 로마 교회를 제외하고는, 베드로보다 현저하게 그리고 영구적인 교회들을 세웠다. 그리고 신약의 기록에 의하면, 로마에 있는 교회에서 바울의 영향력은 베드로의 영향력보다 더 크다. 바울은 한번 이상 베드로를 언급한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베드로의 권위에 어떤 것도 맡기지 않았고, 또 그를 교황으로 인식하지도 않았다.  
들이 세웠다.

        이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세웠지만, 어떤 사람이 자신이 권위를, 베드로를 우선할 정도까지 도전을 하였을 때에, 그는 자신의 권위를 한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정열적으로 자신의 권위를 변호했고,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  [고전 9:1]   (1)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그리고 또 “[고후 12:11]   (11)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 또 카톨릭 성경 버전에서 말하는 것처럼, “ 나는 조금도 가장 뛰어난 사도들보다 뒤지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확실히 자기는 “ 베드로가 할례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이 가진 것처럼 자기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가졌다고 선포하였다(갈 2:7). 따라서 그는 자신을 다른 사도들과 동등한 위치에 두었다. 이런 생각은 바울의 시대에는 지금 교황들의 생각과는 전혀 일치할 수가 없다.  


            이것들뿐만 아니라,  한번은 바울이 공개적으로 베드로는 책망하였다. 안디옥에 있는 베드로가 유대인 율법주의을 가지고 있던 “거짓된 형제”과 함께 있을 때에 이방인들에게서 스스로 멀리하였을 때에, 바나바도 유혹을 받았다. 그때에 바울은 아주 심한 책망을 그들에게 던졌다.

             “[갈 2:11-14]   (11)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


        그리고 나서 바울은 베드로에게 선한, 건전한 복음적인 신학을 가르치고 나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해서이다….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자도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갈 2:16).
        
        다른 말로 하면,  바울은 지금 “거룩한 아버지”를 많은 사람이 보는데서 질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따르지 않았다고 그를 비난하였다. 확실히 교황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한번 상상해보라. 어떤 사람이 추기경에게 이런 질책을 가했으며, 이런 언어를 가지고 교황에게 책망을 하였다고 생각해보라. 비기독교적인 행위때문에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책망한 것은 바울이었다. 베드로가 수장이라면, 그런 사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사도들의 의무요 , 바울의 책임이다. 그리고 그가 인정한 것만을 나머지 사도들은 가르쳐야 한다. 확실히 바울은 베드로를 믿음과 도덕에 있어서 무오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음에 틀림이 없다. 또는 그의 입장에서 어떤 우월성도 받아들이지 않았음에 틀림이 없다.
  
6  베드로를 향한 다른 사도들의 태도(Attitude of the Other Apostles toward Peter  )  

        바울뿐만 아니라, 다른 사도들은 베드로가 교회의 수장(首長)으로 임명된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어느곳에서도 그들은 베드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베드로 자신도 다른 사도들에게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사도를 계승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선출하는 과정이 행 1:15,26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선택이 베드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때에 거기에 있었던 120명으로 기록된 형제들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주사위가 던져졌다.

          또 다른 경우에, 요한과 함께 베드로는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사도들에 의해서 보내졌다(행 8;14). 오늘날 이런 목적을 위해서 추기경 또는 감독에 의해서 교황에 파송되는 것을 상상해보라! 오늘날 교황은 거의 설교를 하지 않는 것이 너무 잘 알려져있다. 그들은 성명을 발표하고, 그들에게 오는 사람들에게 연설을 하지만,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이 하는 것처럼 복음을 전파하러 나가지는 않는다.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중요한 교회 공의회는( 행 15장) 사도시대에 있었던 교회의 연합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다에 있는 어떤 사람이 바울과 바나바가 일하고 있었던 시리아에 있는 안디옥에 와서 가르쳤을 때에 이견이 일어났다. 유대인의 예식중에 어떤 것들은 지켜져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로마교의 교황제도가 문제가 되었다면, 공의회는 전혀 필요하지 않는다. 안디옥에 있는 교회가 로마의 감독인 베드로에게 편지를 쓰게 되는 것이고, 그는 회칙이나 교서를 보내어 이 문제를 해결하면 되기 때문이다. 로마 카톨릭의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가 로마 감독이 되기 전에 7년 동안 안디옥에서 감독으로 있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호소를 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공의회에 항소를 하였다. 그 공의회는 베드로가 아니라 야고보가 진행하고 결정을 공포하였다. “[행 15:19]   (19)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 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그의 판결은 받아들여졌다. 베드로가 그 자리에 있었지만 많은 논쟁이 일어나고 난 다음에, 자신의 의견을 제출하였다(7절). 논의 되는 문제가 신앙에서 중요한 사항이었지만, 베드로는 어떤 무오한 성명을 발표함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연합이 아름답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베드로의 목소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에 의해서 진행된 교회의 결정이었다. 게다가 공의회가 끝난 다음에 베드로는 더 이상 사도 행전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사람들이 그들의 동료위에 권위를 행사하려는 것은 옛사람의 약점이다. 제자들이 누가 큰가 논쟁을 하였을 때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꾸짖었다. “[막 9:35]   (35)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또 다른 경우에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소원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왔다. 그녀의 두아들을 천국에서 중요한 자리에 앉혀달라고 부탁하였다. 거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마 20:25-28]   (25)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죽음에 넘기우는 밤에도 그들은 “누가 큰가”를 가지고 싸움을 하였다(눅 22:24). 각 경우에 그들은 남들 위에 있기를 원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에 뛰어난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어떤 경우에도 베드로가 다른 사도들의 수장(首長)이라는 말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 사실, 로마 카톨릭이 주장하는 것처럼, 베드로가 우월한 입장에 있었다면 그들은 이런 질문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 혼자만이 교회의 머리이다. “[고전 3:11]   (11)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교회는 “[엡 2:20]   (20)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라고 하였다. 바울은 하나님이 “[엡 1:22-23]   (22)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23)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라고 주장한다. 이 이외의 교회의 머리나 기초는 없다. 오직 괴물만이 한 몸에 두개의 머리를 갖고 있다.


7  베드로는 로마에 간 적이 있는가?(Was Peter Ever in Rome?)    
로마 카톨릭 전통에 의하면 베드론느 로마의 첫 감독이었다. 그의 지위는 A.D 42- A.D 67년까지 25년간 지속되었다. 그리고 A.D 67년에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카톨릭 성경은(Douay and Confraternity versions) 사도 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가 있기 전에 로마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의회를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으며, 그 후에 안디옥으로 갔고, 그리고 나서 로마로 돌아왔다. 카톨릭 성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부활후에 수장의 직분이 그에게 부여되었고, 승천 즉시 베드로는 이 권위를 사용하였다.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에서 설교한 후에, 그는 로마로 갔다. 몇년 뒤에 첫번째 공의회를 위해서 그는 예루살렘에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감옥에서 풀려난 다음 안디옥에 있다가 67년에 로마에서 순교했다”(베드로 전서 서론)

        그러나 로마에서 베드로가 감독이 되었다는 거짓된 주장에 대해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신약이 그것에 대해서 한마디 언급도 않는다는 점이다. “Rome”이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9번 나타난다. 그러나 베드로와 연관해서 그 단어가 언급된 적이 없다. 또한 베드로 서신서에서도 어떤 암시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 도시에 대한 바울의 여행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행 27-28장). 베드로가 로마에 있었다는 신약이나 어떤 역사적인 증거가 전무하다. 모든 것이 전설에 근거한다. 사도 행전의 첫 12장은 베드로의 사역과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의 여행을 말하고 있다. 그가 로마 제국의 수도에 갔다면, 언급이 되었을 것이다. 베드로가 바울보다 우위에 있다면 왜 바울이 무대에 등장한 다음에 어떤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인가?  그가 많은 여행을 하였음을 제외하고, 그의 후기의 삶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그의 선교여행에 대해서 적어도 “부인을 동반하였다는 것”에 대해서 언급이 되어 있다. 바울은 고전 9:5절에서 언급을 하고 있다.  (카톨릭 성경과 한글 성경은 부인대신에 자매라고 번역을 하였다. 그러나 부인이라는 헬라어 gune가 사용되었지, 자매라는 헬라어 adelphe가 사용되지 않았다.)

        우리는 로마의 기독교 기원에 대해서 어떤 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카톨릭 역사가들도 인정하는 바이다. A.D 58년에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썼을 때에, 이미 로마 교회는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마도 오순절때에 예루살렘에 있었떤 , 약 3000명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개종하였을 때에, 그 중에 한 사람에 의해서 설립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청중에는 로마에서 부터 온 나그네들이 있었기 때문이다(행 2:10). 어떤 경우이든지, 베드로가 로마에 있는 교회를 세웠으며 25년 동안 감독이었다는 주장을 증거할 증거는 전혀 없다. 훨씬 후에 처럼, 주교관구가 했던 것처럼 사도들은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따라서 로마를 “베드로의 정착지”로 보는 것은 부정확하다. 또는 교황이 베드로의 의자를 승계했다고 하는 것도 이런 면에서 맞지 않다.

        전설은 베드로의 생애에 매우 많은 것을 말한다. 25년 로마에서 감독생활을 하였다는 것은 이단 집단인 에비온파에 의해서 유래된 외경에 그 뿌리를 둔다. 그들은 신약의 초자연적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이 두가지는 기원과 내적인 모순에 의해서 신임을 얻지 못하였다. 신용할 수 있는 첫번째 참고서적은 유세비우스의 글에서 발견된다. 이 참고서적은 로마 카톨릭 저자에 의해서도 의심을 받고 있다. 유세비우는 약 310년에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그의 작품을 제롬이 번역을 하였다. 17세기 역사학자이자, 영국 찰스 2세의 목사인  William Cane( 1613-1713)는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인 “사도들의 생애”에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제롬의 번역판에서 베드로가 로마에서 25년간 감독으로 있었다는 것을 확실히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제롬 그 자신이 추가한 내용이다. 유세비우스 헬라어 원본에는 이런 말이 전혀 없다.

        지질학자들의 철저한 연구가 카타콤에 글과 적어도 베드로가 로마를 방문하였음을 알려주는 어떤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서 수세기 동안 애를 썼다. “믿음의 전파”위한 대학교에서 사제 교육을 받았던 L. H. Lehman은 , 저명한 로마의 지질학자이자 교수인 Murucchia가 말한 강의에 대해서 인용을 하였다. 베드로가  “ eternal City”에 있었다는 어떤 희미한 증거도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말을 전달하였다.  다른 지질학자인 Di Ross는 40년 동안 정열적으로 베드로가 실제로 로마에 있었다는 교황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서 절망적으로 로마에 개져진 글들을 찾아나섰다. 그가 성공한다면 많은 보상을 하겠다는 교회의 약속도 있었다. 로마에 있는 교회의 설립자에 대하여, 신약이 말한 것들을 증거하기 위해서 전 생애를 발굴에 힘을 썼지만,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였다” (The Soul of a Priest, p.10).

        만약에 베드로의 뼈가 발견되고 확실한 것으로 증명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것으로 부터 증거되는 것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은 로마 교회가 베드로가 가르쳤던 것을 가르치고 있는가? 베드로의 승계자는 자신들이 베드로의 뼈를 발견하였다고 말하는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가 가르쳤던 믿음을 통한 은혜에 의한 복음적인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게다가 단순한 거주(居住)가 우월성을 수여한다면, 그때에 안디옥은 로마보다 지위가 높아야 한다. 베드로가 로마에 거주했다고 주장하는 똑같은 전통이 그가 첫번째로 시리아의 작은 도시인 안디옥에 거했다고 증거한다. 사도시대 동안에 그리고 여러 세대 후에 동방 도시들과 동방 교회는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로마 교회는 상대적으로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첫번째 공의회가 동방도시에서 개최되었고, 거의 모든 동방의 감독들로 구성되었다. 총 주교의 4명이 동방에서 나왔다- 예루살렘, 안디옥,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알렉산드리-. 로마는 몇세기 지나서야 서서히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로마 제국이 분열된 뒤에, 어떤 교회가 모든 교회의 주인이라고 불리워져야 한다면, 당연히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이다. 그 곳은 우리 주님이 살고 가르친 곳이며, 십자가에 못박힌 곳이며, 처음으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 의해서 설교를 한 장소이다. 베드로의 위대한 오순절 설교가 전달된 곳이며, 그곳에서 안디옥으로 그리고 로마로 그리고 전세계로 구원의 복음이 전달되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유일한 참된 교회라는 카톨릭의 주장은 동방교회에 의해서 거절되었다. 동방교회는 가장 오래되고, 최기에  세상에 있는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결정적인 단서는 아니지만, 흥미롭고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주로 유대인의 사도였다면,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였다는 점이다. 신적인 작정에 의해서  사역이 분리되었따. 갈 2:7-8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갈 2:7-8]   (7)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8)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그러므로 바울의 사역은 이방인 중에서 뛰어났으며, 베드로는 유대인 중에서도 돋보였다. 베드로는 소아시아로 망명을 간 유대인들에게 사역으 하였다. “[벧전 1:1]   (1)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그의 전도는 멀리는 동쪽으로 바벨론까지 이르렀다. 이 도시에서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와 후서를 기록하였다. 소아시아에 있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쓴 것이다. “[벧전 5:13]   (13)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거의 대부분의 바울 서신은 그가 복음화시킨 교회 즉 이런 지역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베드로가 로마에 갔다는 증거는 없지만, 바벨론으로 갔다는 확실한 성경의 진술이 있다. 왜 로마 교회는 베드로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가?

            물론, 그의 증거는 베드로를 로마에 두고자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고안되어야 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이상한 방법을 채택하였다. 카톨릭 성경은 베드로 전서에서 이런 주석을 달았다. “ 저작 장소가 바벨론으로서, 이것은 로마시의 또 영적인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바벨론이 로마를 의미한다는 확실한 근거가 없다. 바벨론이 로마를 의미한다고 이해하려는 로마 교회에 의해서 제출된 이유는 계시록에 로마가 이런 이름으로 불리우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계 17:5, 18;2). 그러나 계시록과 같이 거의 모든 부분이 비유와 상징으로 이루어진 묵시록과 직접적인 사실을 묘사한 서시서와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유대인중에서 일을 하도록 베드로가 임명되었다는 점에서, 신약시대에 바벨론에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추방뒤에 팔레스타인으로 많은 사람이 돌아오지 않고 거기에 머물렀다. 소아시아와 이집트에서 처럼,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팔레스타인에서 쫒겨났거나 떠났다. 요세푸스는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대제사장 Hyrcanus에게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바벨론에 거주지를 주었다”고 하였다( antiquites, Book XV, Ch, 2, 2). 유대인에게 임명된 베드로의 사역은 유대인이 상당히 많이 있는 곳, 바벨론까지 그를 인도하였다.




8  바울의 로마서(Paul’s Epistle to the Romans)    
        베드로가 로마에 있지 않았다고 믿는 강한 이유는 바울의 로마서에서 발견된다. 로마 교회 전통에 의하면, 베드로는 AD 42년에서 AD 67년까지 25년동안 로마교회를 치리하였다.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는 AD 58년에 쓰여진 것으로 일반도 받아들인다. 그때가 베드로의 가정된 감독 자리에서 가장 전성기때이다. 베드로가 로마 교회에 있었다면 긜고 모든 교회의 머리라고 한다면 바울은 베드로에게 편지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베드로에게 편지를 쓰지않고, 로마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썼다. 선교사가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그 교회의 목사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이것은 용서할 수 없는 모욕이다. 멀리떨어져 있는 회중들에게 감히 편지를 쓰면서 그들의 목사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 선교사가 그곳에 가기를 열망하며 자신의 회중에서 처럼 그들 중에도 어떤 열매를 맺게 하기를 원한다고 말을 한다면 우리는 그 선교사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롬 1:13)?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강하게 하기를 원한다고 바울은 말한다. 전에 복음이 전달되지 않는 곳에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다고 바울은 말한다.  서신 마지막에 이름이 언급된 가장 중심적인 회원 27명에게 이런 식의 인사를 하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로마에 있던 목사는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이런 모욕은 절대로 용서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가지고도 로마 교회 전통에 의해서 눈이 먼 가자 완고한 사람들의 눈을 열어주어야 한다.

        베드로가 16년 동안 로마 교회에서 일했다면, 왜 바울은 이런 말로서 교회 회원들에게 편지를 썼을까? “[롬 1:11]   (11)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이것은 베드로를 이유없이 모욕한 것은 아닌가? 바울이 교황의 머리까지 올라갔다는 것은 너무 추상적인 일은 아닌가? 베드로가 거기에 있었고 16년동안 있었다면, 그의 편지에 다음과 같은 원칙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그곳에 갈 필요가 있었을까? “  [롬 15:20]
  (20)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것은 로마에 베드로가 있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실 로마에는 어떤 사도도 있지 않았으며 복음을 그들에게 분명하게 하고 믿음 가운데 세울 사도가 없었기 때문에 편지를 쓰게 되었던 것이다. 이 편지의 결론에서 바울은 위에 언급한 27명에게 인사를 한다. 그 중에는 여자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전혀 베드로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바울이 AD 61년에 죄수로서 거기에 도착하기 전에 베드로가 로마에 있었다고 한다면, 바울은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일을 빼먹지 않았을 것이다. 감옥에 있는 동안에 거기에서 썼던 편지들인,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보면 로마에서 일을 하고 있던 동료들의 온전한 이름을 언급하고 있지만, 베드로의 이름은 그들 중에 없다.  바울은 거기에서 2년동안 죄수로서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을 영접하였다( 행 28:30). AD 67년에 그의 두번째 감금때에 썼던  디모데 후서에서도 베드로의 이름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때는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를 당했던 해이다. 베드로의 죽음이 있은 다음에 곧바로 디모데 후서가 작성되었다(딤후 4:6-8). 베드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바울이 죄수로서 로마에 있었을 때에 베드로가 거기에 있었고, 도움을 전혀 주지 않은 베드로는 기독교인의 관용이 부족하였음에 틀림이 없다. 확실히 그는 첫번째로 예의없는 감독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보면 베드로는 로마에 있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5세기의 제롬때까지 어떤 초대 교부들은 베드로가 로마의 감독이었다는 것을 믿음만한 어떤 근거도 제공하지 않았다. 로마 카톨릭 역사학자인 Du Pin은 베드로의 수장(首長)은 초기 기독교 저자들인 순교자 마터( 139년), 이레니우스( 178년), 알렉산드리아 클레멘트( 190년), 또는 다른 가장 유명한 고대 저자들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 없음을 인정했다.” 그럼으로, 로마교회는 신약의 가르침이 아니라, 근거없는 전통에 의지해서 교황제도를 세운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 베드로 사역의 연대적인 도표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다:
        거의 모든 성경학자들은 바울의 회심이 AD 37년에 일어났음에 동의한다. 그 후에 그는 아라비아로 갔다( 갈 1:17).  3년 뒤에 예루살렘에 가서 15일간 베드로와 함께 있었다( 갈 1;18). 이때가 AD 40년이다. 14년 후에 그는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갈 2:1). 거기에서 행 15장에 기록된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하였다. 거기에 베드로도 참석했다( 행 15:6). 공의회는 주로 유대인들과 이방인 공동체에서 일어났던 복음의 제시와 함께 일어났던 문제들을 다루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의 사역의 설명을 하였고, 이방인들에 대한 그들의 사역을 계속하도록 공의회로 부터 권위를 받았다( 행 15:22-29). 베드로가 주로 유대인들을 위하여 사역한 반면에 바울이 주로 이방인들을 위하여 일을 하도록 지정되었음을 이것은 분명히 하고 있다.( 갈 2:7-8). 동일한 예루살렘 공의회는  이런 문맥속에서 주어졌다. 따라서 이때가  AD 54년이다. 베드로는 여전히 시리아에 있었다. 그가 로마에서 감독이 되었다고 로마 전통이 말한 12년 후의 일이다.


        예루살렘 공의회 뒤에 베드로는 또한 안디옥으로 갔으며, 그때에 유대인들의 예식에 따른 것 때문에 바울은 그를 책망할 필요가 있었던 사건이 일어났다(갈 2:11-21). 베드로가 로마에서 치리를 하였다고 말한 똑같은 로마 전통은 베드로가 로마로 가기 전에 7년 동안 안디옥에서 교회를 다스렸다고 말한다. 그때가 AD 61년이다. 그때에 여전히 베드로는 시리아에 있었다. 어떻게 베드로가 이방인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에 갈 수 있었을까? 예루살렘의 첫번째 기독교 공의회에 참석한 여러교회에서 온 형제들과 모든 사도들이 동의한 결정을 그가 무시한 것일까?  베드로는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그의 사역은 주로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다. 첫번째는 소아시아, 그리고 적어도 바벨론 멀리까지이다. 사실 그의 사역은 로마 전통이 그에게 부과한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베드로가 로마의 첫번째 감독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를 따랐던 감독들이 그가 가졌던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전혀 의미하지 않는다. 사도들은 기적과 영감된 성경을 기록하도록 능력을 받았다. 베드로가 다른 사도들보다 높은 능력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이런 능력들이 그의 승계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성경 어느 곳에서도 암시하지 않는다. 베드로 후서에서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언급한다( 벧후 1:14). 확실히 누가 그의 승계자가 될 것인가를 말할  가장 좋은 곳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미래의 감독을 어떤 방식으로 선출했는가를 말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것들을 생각했다는 어떤 암시도 주지 않고 있다. 사도로서 베드로는 교황이 감히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는 자질과 은사를 갖고 있다. 교회의 지도자로서 사도들의 지위를 주는 것은 무오한 교황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당시에 발전된 영감되고 무오한 성경에 의한 것이다. 그 세대 말기까지 하나님께서 교회에 말씀하셨던 신약성경을 통해서이다.  

        겸손하고, 영적인 베드로가 지구에 다시 돌아온다면 그의 승계자로서 정교하고, 세겹으로 되어 있고, 금으로 장식한 왕관을 쓰고, 매우 비싼 옷을 입고, 제단까지 사람들의 어깨위로 태워가지고 가고, 스위스 군사들에 의해서 호위되고, 사람들로 부터 노예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교만한 교황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백성들을 충성되게, 그리고 겸손하게 섬기는 헌신하는 기독교 목사들이 베드로의 승계자이지, 교황이 아니다.


9  결론(Conclusion)    
        로마 교회가  교황과 사제계급을 위해서 만들은 불합리한 주장들을 들어내려는 것이지 경시하거나 격하하려는 것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왕자였지만, 사도들의 왕자는 아니다. 다른 사도들, 마리아, 초기 기독교인들과 함께, 유대교로 태어났던 종교에서 부터 예수님을 따르는 기독교인으로 종교를 바꾼 사람들이다.  그들중에 어떤 사람도 로마 카톨릭이 아니다. 로마 카톨릭은 여러세기 후에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수장 교리는 로마 교회가 기독교 종교에 가미했던 많은 오류중에 하나이다. 이런 오류를 드러남으로서 로마 교회의 기초가 무너졌다.  전 교황 제도는 베드로가 로마에 감독이었는가에 따라서 넘어지거나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이나 어떤 믿을만한 역사적인 기록들은 그가 로마에서 이런 지위를 가졌다는 것을 믿을 만한 어떤 이유도 제공하지 않는다.

p.s 이 장은 "Roman Catholicism" by Lorrain Boettner의 책 p.104-131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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