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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강 반론 8 “여전히 회의가 드는데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임 바울  2017-04-07 06:42:16, 조회 : 675, 추천 : 94

반론 8 “여전히 회의가 드는데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변호사의 제보에 의해서 기자였던 저자는 갱 단의 제 2인자로서 난폭하고 수많은 전과를 가진 론 브론크키가 진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소식을 믿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저자는 기독교가 사람의 성품과 가치관을 모두 바꿀 수 있음을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불량하고 타락한 인생에 하나님이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을 가능성보다는 회의를 제기하고 괴상한 반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 훨씬 쉬웠다. 그러나 판사는 그의 삶의 변화가 진실임을 인정하고 집행유예로 풀어주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오늘, 브론스키는 도심의 거리에서 말씀을 전하며 저자와 친구가 되어있었다.


        무신론자 시절의 저자는 기독교의 흠을 찾아내려는 동기가 많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부도덕하게 살던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그 삶을 버리기 싫었다. 그래서 진리를 찾기 보다는 진리를 밀어내기 위해 꾸며낸 회의와 인위론적 반론을 제시하곤 했다.


        이것은 무신론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신앙에 대한 회의를 가지는 그리스도인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회의를 좀 더 들여다보면, 어떤 고민은 실제로 예수님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구실을 궁리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회의조차 가지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들은 그 회의를 표현해도 되는 것인지 불안해하며 마음속에 묻어두고 감추어 둔다.


        반면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회의를 가지는 것에 대해서 믿음이 없다고 보지 않고 믿음의 본질로 여긴다.


        신앙의 길을 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의문이 일일이 해결되어야만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아직 풀리지 않는 문제와 회의가 있는 상태로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린 엔더슨 박사를 찾아가 보았다. 그는 하딩 종교대학원에서 석사, 애빌린 기독교 대학교에서 목회학 박사를 받고 그곳에서 20년 넘게 부교수로 재직했다. 그가 쓴 많은 책 중에서, “정말 믿는다면 왜 회의가 있는가?(If I really believe, why do I have these doubts?)”라는 책이 있다. 회의와 의문에 대한 앤더슨 자신의 경험을 소개한 책이다.



1. 회의의 뿌리


        앤더슨은 독실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우울하고 깊이 생각하는 성격이었으며 일찍부터 기독교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열한 살 때 믿음을 고백했지만, 확신도 없었고 하나님을 믿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모습을 친구에게도, 부모에게도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서 마음 속에 묻어두고 있었다. 대학에서 그의 회의는 감성에서 지성으로 옮겨졌다. 그 결과, 그는 성경에 대한 많은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다.


2. 회의의 유형


        회의의 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앤더슨처럼 선천적으로 의심이 많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 혹은 반항심에서 비롯된 회의도 있다. 이런 사람은 교만한 자존심의 형태로도 나타나는데, 특히 젊은이들은 부모에게 반항하고 싶을 때, 부모가 믿는 하나님께 반항할 수도 있다. 또 하나의 유형은 하나님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되는 회의가 있다. 또는 자신이나 가정에 상처가 있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인 상처를 받은 사람들도 하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에 회의를 품기도 한다. 지적인 회의도 있다.


        그렇다면 회의가 깊어지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앤더슨은 몇 가지의 요인을 제시한다. 첫째, 믿음을 위한 묵상의 시간이 없음으로 인해서 회의를 가지게 된다. 두 번째, 남들과 믿음을 비교하는 것이다. 나름대로 믿음과 열심과 지식이 있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기쁨이나 평안 혹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지 못하면 회의를 가지게 된다.


3. 건강한 믿음의 특징


        믿음에 관한 잘못된 개념은 종종 회의를 일으킨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기대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믿음에 대한 오해는 믿음과 감정을 혼동하는데서 온다. 예를 들면, 믿음을 지속적인 종교적 흥분과 동일시할 때, 그 흥분이 사라지고 나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믿음이 있었는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물론 믿음은 감정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의 감정은 그 사람의 기질과 상관이 있다. 주관과 확신이 분명해도 기질상 감정을 잘 나타내지 않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하나님이나 인생에 대해 언제나 긍정적인 감정의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믿음과 회의는 공존할 수 있다.

막 9:14-27


        믿으면서도 회의가 있을 수 있다. 오히려 회의가 전혀 없는 곳에는 건강한 믿음도 있을 수 없다. 어려움이나 까다로운 의문, 그리고 묵상을 통해 도전에 부딪힌 믿음은 결국 더 강한 믿음으로 자라난다.


4. 이면을 들추면


        이처럼 회의에는 믿음을 위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모든 회의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된다. 사람은 더 깊은 동기를 들키지 않기 위해 회의론을 교묘한 방패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예수님을 믿지 못하겠다고 고백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따를 경우, 잃게 될 것을 염두해 두고 있다. 결국 그들에게는 믿을 의지보다는 안 믿으려는 의지가 더 강하며, 그들은 스스로 안 믿기로 선택을 하는 것이다.


5. 결단으로 믿는 믿음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지속적인 믿음의 결단 능력은 성령하나님을 통해 나타난다. 히브리서는 믿음이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올바른 지식, 진리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음이란 ‘사실이라는 것을 일체의 회의도 없이 확실히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확률적 증거로 믿음을 입증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접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확실한 증거들을 주셨기 때문이다.


6. 회의를 처리하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믿지 않으려는 진짜 이유를 숨기고 시선을 따른 데로 돌리기 위해 지적인 주제들을 지적한다. 나름대로 그들은 지적인 회의를 핑계로 믿고 싶어하지 않는다.


        지적인 회의가 있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된다. 좀 더 깊이 들어가 자신이 하나님을 피하는 이유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나서 믿고 싶어하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그 다음은 믿음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믿음의 사람들이 있는 그곳에 가서 배워야 한다. 그 다음에는 믿음의 대상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믿으려는 이유를 확인해야 한다. 왜 불교가 아닌 기독교이어야 하는지, 왜 힌두교의 수도사가 아닌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7. 믿음의 실험


        그렇다면 믿음의 시작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앤더슨은 ‘자리에 앉아 믿음과 회의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다고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요 8:31-32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일을 직접 해보아야 한다. 제자는 곧 따르며 배우는 자이다. 그렇게 따르며 배울 때 우리는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한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머리 속을 지식으로 채운다는 뜻이 아니다. 히브리어로 ‘안다’의 의미는 정보수집이 아니라 체험적 지식을 의미한다. 진리를 알고 체험하려면, 먼저 예수님을 따르고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시 34:8


8. 회의 때문에 믿다


        앤더슨은 자신의 회의를 통해 얻은 것이 ‘바보같은 웃음과 흐린 눈빛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가르침에 따라 그 결과를 체험한 후에는 그 누가 거짓이라고 혹은 많은 지식의 의문을 제기하여도, 그의 믿음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믿음은 행동이다. 즉 믿음은 단지 지적인 동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까지도 나아가도록 한다. 그처럼 우리가 믿음을 실천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확증해주신다. 그리고 그 길이 계속될수록, 그 길이 진리임을 더 깊이 알게 될 것이다.


        체험은 믿음의 증거 중 하나일 뿐이다. 믿음은 그 대상을 확인해야 하고 진리로 믿어야 할 확실한 이유도 따져보아야 한다. 물론 불교나 무신론의 체험이 통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길은 한결같지 않다. 예수님과 동행하다 보면,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이 언제 어디서나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회의 때문에 괴로워하던 캐나다의 한 시골 청년이었던 앤더슨은 이제 그 회의 때문에 참 진리를 찾게 된 것이다.


9. 회의의 선물


        회의는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적절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된다. 그러나 분명 유익함도 있다. 게리 파커는 “믿음이 한 번도 회의를 만나지 않고 진리가 한 번도 오류와 부딪히지 않고 선이 한 번도 악과 싸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믿음의 힘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말한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회의라는 용광로를 통해 깨끗이 정련될 때 더 강하고 확실하고 견고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의문과 도전이나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은 단순히 살아남는 정도가 아니라 무성하게 자라날 것이다.


        앤더슨의 말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만약 회의와 믿음이 공존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장애물을 완전히 해결하지 않고도 진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반론들을, 무게중심을 하나님께 유리한 쪽으로 두고 그것이 해결될 때까지는 얼마든지 긴장 속에 그냥 둘 수 있다. 그것이 마음  속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믿음의 선택을 내릴 수 있고 우리의 믿음이 없음을 도와달라고 기도할 수 있다.


< 연 구 문 제 >


1. 당신이 씨름하고 있는 회의는 어떤 것들인가? 당신의 회의가 더 깊어지지 않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2. 믿기로 결단하는 것, 믿음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 믿음을 세워주는 재료를 섭취하는 것, 믿음의 대상을 확인하는 것, 실험을 통해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 등은 앤더슨이 제기한 회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이 중 당신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무엇인가?

3. 믿음과 회의가 공존할 수 있다는 앤더슨 말에 공감하는가? 그렇다면 회의가 믿음에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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