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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강 : 제 5 장 아직 좋은 것이 남아있다
임 바울  2015-01-14 13:00:16, 조회 : 1,711, 추천 : 235

                                                  제 5 장
                                     아직 좋은 것이 남아있다.



        내 친구 중에 하나가 돈이 많은 상류층의 여자와 저소득층의 공영주택단지에 살고 있는 청년과의 대화를 들었다. 그는 고급주택단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이 여자의 소유였다. 그 주택 중에 하나를 가리키면서, “당신도 이 공영주택단지에 살고 있습니까?”라고 청년이 물었다. 이 여자는 질겁하였다. 엄청나게 많은 돈을 주고 정성을 쏟은 아름다운 주택을 어떻게 공영주택단지로 말할 수가 있을까?


        서구에 맞춰진 사회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이 미래에 하실 것과 비교해보면, 이세상은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공영주택단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집들이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장엄하고, 멋이 있고, 영속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아직 오지 않은 실체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이런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우리는 사물을 잘못된 망원경을 가지고 보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지금 보고 느끼는 것은 사실이고, 진짜이고, 영원한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오는 세상은 사실이 아니고, 비본질적이고, 비교해보면 일장춘몽으로 본다. 그러나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 우리가 얼마나 근시안적인가를 발견한다. 우리의 현재 경험이 “[롬 8:18]  (18)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와 같다는 것을 거기에 가면 알게 될 것이다. 그 영광의 무게와 비교해보면, 우리 현재의 고통은 가볍고 순간적이다. 영원한 것이 “이미 보여진 것”은 아니지만, 오고 있음을 인식해야만 한다(고후 4:17-18).


고후 4:17-18


        우리의 가치 감각이 왜곡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문제이다. 보이는 것과 덧없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보이지 않는 것과 영원한 것을 도외시한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명령을 다시 들을 필요가 있다.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서 변화를 받아야 한다(롬 12;1-2). 마지막 상태에 대한 성경적인 교리를 통해서 이 세대에 뿌리내린 우리의 정신구조를 뒤집어야 한다.


        신약에서, 하나님이 미래에 하실 일을 이해하는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다가올 추수의 첫 열매로서 기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광대한 영역에서 일어날 하나의 원형이다.


        달에 첫발을 디딘 암스트롱의 유명한 말을 생각해보자. 그는 개척자였다. 자신의 업적을 “사람을 위한 아주 작은 발걸음이고, 인류를 위한 위대한 전진”이라고 하였다. 달에 발을 딛는 인간의 중요성은 무덤에서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걸음에 비교할 때에 소리 없이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다. 부활절에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영적 부활의 원인이고(벧전 1:3), 마지막 날에 부활의 첫 열매이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서, 어두움의 세력이 극적으로, 갑자기 역전되었다. 하나님의 미래가 현재로 잠입했다. 세대의 끝에 속해 있던 사건이 그리스도를 시작으로 이 시대에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1. 그리스도, 첫 열매


        그리스도 부활의 중요한 핵심은 전 우주의  회복으로 절정을 이룰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새롭게 하시고, 부활시키시는 사역의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바울은 이것을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표현하였다.


고전 15:20-28


        미래에 일어날 것은 과거에 잃어버렸던 것의 구속과 회복을 포함할 것임을 여기에서 바울은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질서가 재정립되고 절정을 이루게 된다. 이 사건은 5단계로 일어날 것이다.


        첫째로, 아담에 의해서 들어온 죽음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역전될 것이다(22-23).

        둘째로, 죽음을 포함해서 그리스도의 모든 적들인 “모든 정사, 권세와 능력”이 파멸될 것이다(24-36)

        세 번째로, 하나님을 대항해서 일어난 모든 것을 압도한 그리스도는 아버지에게 세상을 바칠 것이다(24).

        네 번째로 그리스도 그 자신도 하나님에게 복종할 것이다. 이것은 전 신약성경에서 가장 놀랄만한 진술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복종한다! 신적본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에 비해서 낮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그림은 아름답고 섬세하다.


        창세전에, 삼위 하나님은 완전한 교제와, 만족감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나 창조 후에, 아버지는 사랑의 선물을 그의 아들과 함께 사람에게 주었다(골 1:16, 히 1:2-3). 보답으로, 아들은 세상의 청지기가 되는 중요한 역할을 받았다; 그는 그것의 권위를 갖게 되었다(창 1:28). 그러나 인간의 불순종 때문에, 우주는 나쁜 세상이 되었다. 아버지의 뜻에서 벗어났으며 동시에 아들의 주권을 범하였다.


        성령의 교제 속에서, 함께 살고 사랑했던 아버지와 아들은 회복 사역을 계획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대속물로서 봉사하기 위해서 아들은 인간의 본성을 취하였다. 그는 우리를 대신해서 순종했다. 그리고 우리 불순종의 형벌을 받았다. 그것은 죽음의 형벌이었으며, 십자가에서 부끄러운 죽음이었다. 그는 아담이 실패했던 것을 했다. 아담이 했던 일에 대한 결과를 되돌려놓았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을 두 번째 아담 그리고 마지막 아담이라고 불렀다.


고전 15:45,47


        그는 우리의 죄에 대한 값을 죽음으로 온전하게 치뤘다. 아버지는 그를 다시 부활시켰으며 그의 사랑에 넘치는 순종 때문에 그를 영화롭게 하였다. 부활하고 높이 오르신 성육신의 아들은 다시한번 모든 것을 그 자신에게 복종시켰다. 그의 영의 능력에 의해서 지구는 그의 유산이 되었다(시 2;8, 마 28:18-20). 이 사역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최고의 절정에 이를 때에, 이 세상을 승리하신 아버지께 봉헌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까지 사랑으로 아버지에게 복종한다.


        다섯 번째로, 하나님은 모든 것의 모든 것으로서 우주에 나타날 것이다(고전 15:28). 회복에서, 창조 전에 살았던 삼위 하나님은 이제 새롭게 된 창조에서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계시록의 마지막 2 장에서 보여지는 이상의 요점이다. 옛 질서는 사라지고 하나님이 알파와 오메가로, 시작과 끝으로, 모든 것의 모든 것으로 보여지게 될 것이다.


        이 최종적인 우주질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해서 도래 될 것이다. 그는 인격적으로, 보이게, 들리게 그리고 영광스럽게 올 것이다. 죽은 자들이 일어날 것이다(단 12:2, 요 5:25-29, 행 24:15, 계 20:11-15). 그리고 살아있는 성도들은 변화될 것이다(고전 15:51). 모든 사람들은 백보좌 심판 앞에 모이게 될 것이다(계 20:11).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대라고 불리기도 한다(롬 14:10). 그리고 요 5:22절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와 같다( 고후 5:10). 그때에 결정이 선포될 것이고 살아있는 동안에 그가 행했던 행위에 따라서 어느 곳에 갈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다. 이것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또는 불못과 바깥 어두운 곳에서 이런 일들에 대한 실제적인 행사의 서곡이다(계 21-22장).


        성경에 나타나는 생명과 죽음의 두 가지 길은 영원토록 갈라지게 될 것이다. 의인과 악인, 양과 염소, 알곡과 가라지는 불가피하게 분류될 것이다. 복 받은 자들은 긍휼의 자리인 오른쪽에 서게 될 것이다. 그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슬픔과 고통의 왼쪽에 서게 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오른 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어날 일과 관련해서 왼쪽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분명하고,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2. 신자의 부활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에, 죽었던 모든 사람의 부활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던 사람이 부활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살아있는 사람들은 변화될 것이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순식간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고전 15:52). 모든 믿는 자들은 그들이 살아있던지, 죽었던지 간에 변화될 것이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부활을 하고 어떤 몸을 가지게 되는가?”라는 질문에 답으로서 사도 바울은 고전 15:35-49절에서 부활의 변화를 논의하였다. 이 변화 속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가?


        하나님이 자연에 적용한 방법에 사도 바울은 근거를 두었다; 씨가 죽는다. 꽃이 그들의 부활의 생명이다. 추가적으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똑같은 종류의 육체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자연은 우리들에게 가르쳐준다. 땅에 속한 모든 것들은 똑같은 속(genus)이지만, 다른 종류이다. 하늘에 있는 모든 것들이(태양, 달, 별들) 같은 속이지만(genus), 다른 종류이다(40-41절). 그러나 땅에 속한 것과 하늘에 속한 것은 다른 속 (genus)이다(40절).


        바울의 요점은 현재의 몸과 미래의 몸은 연속성을 갖고 있지만, 부활의 몸은 땅에 있는 몸과는 다른 질서에 속한다는 것이 진술의 요지이다.  


        영어로서 번역하기가 아주 어려운 두 가지 용어로서 이 차이점을 요약하였다: 현재의 몸은 자연적이다. 미래의 몸은 영적이다. 이 비교는 세 가지 방식으로 자세히 진술된다.


① 현재의 몸 : 썩을 것, 욕된 것, 약한 것
② 미래의 몸 : 썩지 않을 것, 영광스러운 것, 강한 것


        우리 현재 몸의 존재는 영구성, 명예, 강도 등에서 일시적이다. 현재 죄가 있음으로 약한 요소들이 스며들었다. 서툴고, 거칠은 씨이다. 이것은 부활한 사람의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한 꽃을 맺어야 한다.


        이것은 단지 이론적인 진술이 아니다. 바울이 지적한 것처럼, 원형에서 발생한 것으로부터 얻은 결론이다(고전 15:49). 말하자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이미 실제적으로 효력적인 모델을 우리들에게 주었다. 바울이 부활의 변화에 대해서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의한 변화로부터 배웠던 것에 의존한다. 우리가 흙과 같은 아담과 유사성을 닮은 것처럼,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분과 유사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첫 번째 부활일뿐만 아니라, 우리 부활이 불가피하고 일어나는 결과의 원인이 된다. 성령의 사역에 능력에 의해서, 부활한 그리스도는 우리의 몸을 그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되도록 변화시킬 것이다( 빌 3:21).


고전 15:49
빌 3:21



3. 부활체


        이 몸은 어떻게 생겼을까?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한  최초의 사람은 아니다. 그 몸은 신령하고, 영광스럽고, 인식이 가능한 것으로 바울은 말한다.


        ⓐ 신령한 몸 : 바울은 부활체(復活體)를 신령한 몸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또는 생화학적으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눅 24:36-43절과 요 20:27절을 통해서 안전하게 함축적인 의미들을 끌어내야 한다.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상처를 담고 있으며, 만질 수 있으며, 음식을 소화할 수도 있다. 부활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 등을 강조했다기보다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육적이라는 주장을 강조하려고 이 구절들이 사용되었다. “신령한 것”으로 바울이 부른 것은 가볍고, 유령 같고 또는 약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단어는 아마도 대문자를 사용하는 "Spiritual"일 것이다. 성령의 세계에 합당한 것을 의미한다. 신령한 몸은 육신의 약함에서 벗어난 몸이다. 신령한 몸의 행위는 성령의 주권을 나타낸다. 영적 본질을 갖게 되는 것은 능력으로 성령에 의해서 부활된 것이기 때문이다(롬 8:11, 빌 3:21).


        그리스도가 부활하시고 거룩한 성령에 의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되었던 것처럼(롬 8:1), 구속과 우리 몸의 부활은 하나님의 선포이다. 하나님이 능력으로 양자 삼은 아들이라는 최종적인 증거이다(롬 8:23). 예수님이 약함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신 것처럼, 그의 약함을 갖고 있는 우리들도 또한 부활의 능력을 가지고 파괴할 수 없는 생명의 능력을 나누게 될 것이다(빌 3:10-11, 고후 13:4)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도구는 없다. 예수 그 자신에 의해서 다시 살아난 사람들도 오직 약한 인간성만 회복되었다. 나사로는 연약함을 가졌고, 질병에 걸릴 가능성을 갖고 있었으며, 결국 나중에는 죽게 되었다. 그러나 최종적인 부활은 단순한 소생이 아니다. 이것은 변화이다. 죽음의 몸에서 벗어나 생명의 옷을 덧입는 것이다.


        계속해서 육체적 무기력감을 갖고 있기에 의사에게 간 친구가 있다. 검사를 한 결과,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몸에 필요한 충분한 산소를 공급하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알맞은 양의 산소를 흡입할 수 있도록 장치를 설치하고 잠을 잤다. 처음에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몸에서 일어난 변화는 엄청난 것이었다. 무기력감이 사라졌다. 그는 정상적인 몸으로 회복되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상적인 몸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부활체는 이런 변화가 같을 것이다. 부활체는 능력과 힘으로 충만할 것이다. 여전히 죄를 지으며 약한 몸이 성령의 전으로서 봉사하는 성령 안에서 산다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는 힘들다. 우리는 죄와 사탄과 싸워야 한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들은 오랜 병과 육적인 장애 속에서 투쟁을 한다. 우리는 해방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와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변화된 몸을 가지고, 순종은 자연적이며, 어찌보면 매우 쉬울 것이다.


        ⓑ 영광스러운 몸 : 부활에 의한 몸의 구속은 하나님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자유라고 바울이 불렀다(롬 8:18). 우리가 지금 그리스도의 고통을 물려받은 것처럼, 또한 우리는 그의 영광스러움도 함께 물려받을 것이다(롬 8:23).


        로마서 8장까지 바울은 영광이라는 이 주제를 매우 신중하게 추적하였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것을 우상으로 바꾸었다(롬 1:21-23). 그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롬 3:23).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을 얻는 소망이 회복되었다(롬 5:2). 이제 영광은 확실하게 되었다(롬 8:30). 바울은 또한 이 영광이 하나님의 자녀안에서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를 말한다(롬 8:18,21). 결국 그들은 그리스도를 닮게 될 것이다(롬 8:29). 이것은 성령에 의해서 우리 안에서 성취될 부활의 영광이다. 그가 이미 시작한 변화가 완성이 될 것이다(고후 3:18, 롬 8:11).


        영광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첫 번째는 외관상의 변화이다. 변화산상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을 받은 모습을 보았다(벧후 1:17). 마찬가지로 요한도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았다(요 1;14). 죽었던 그리스도가 살아난 것을 보았을 때에, 그는 놀랄만한 광경으로 압도당했다. 부활체는 사람들의 눈을 휘둥거리게 할 만큼 경외감을 일으키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몸으로 나타날 것이다.


        두 번째로 영광이라는 단어가 구약에서 사용된 용례를 보면, 가치와 무게의 면을 보여준다. 부활체는 멸망될 수 없고, 파괴될 수 없고, 썩을 수 없고, 시들지 않는 요소를 갖고 있다(벧전 1:4). 이것은 질적인 면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우리의 현재의 몸이 이 땅에서 살도록 만들어진 것처럼 영원한 영역에 맞는 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이 새로운 생명의 속성은 우리가 천국에서 장가도 가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는다는 불가사의한 진술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다. 즉 우리는 천사와 같은 속성을 갖게 될 것이다(마 22:30). 이런 단어들은 어떤 기독교인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중요한 창조의 선물이었던 것이 왜 미래에는 사라지게 되는 것일까?


        결혼은 사람이 외로움을 없애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었던 선물임을 성경에서 볼 수가 있다(창 2:18). 이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봉사를 도와주기 위해서 제정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는 새로운 거처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결혼의 기능은 필요하지 않다. 어떤 성전도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 그 자신이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계 21:3, 22). 어떤 태양도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영광과 어린양의 임재가 빛을 주기 때문이다. 첫 창조에서 주어졌던 많은 선물들이 두 번째 창조에서는 필요하지 않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과 직접적인 교제를 보여주는 잣대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밀한 관계를 가지게 될 것이기에 이런 것들이 폐기될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교제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영광스럽고 만족스러울 것이다!


         ⓒ 인식할 수 있는 몸 : “미래에 우리가 서로 알아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종종 제기되었다. 그리스도가 우리들의 원형이라고 한다면, 대답은 분명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이 따랐고 알고 있었던 똑같은 분으로서 인식되었다. 천사가 마지막 날에 재림에 대한 말을 할 때에 그를 “똑같은 예수”로서 설명하고 있다(행 1;11). 바울이 고전 15:42-43절에서 부활체에 대해서 말한 것을 근거로 생각해보면 인식은 가능한 것으로 보여진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죽은 자는 똑같은 몸을 가지고 부활할 것이고 그러나 다른 속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고 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2장 2항).


        우리가 똑같은 속성을 갖고 있지 않다 할지라도, 지금 여기에 있는 것과 똑같은 사람으로서 부활체는 인식될 것임을 시사한다. 물론, 우리가 아는 것처럼, 현재 우리가 사는 것처럼 똑같은 육신적인 모습을 갖고 있지는 않는다. 우리가 손톱을 자르고 머리를 정리한다는 사실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연속성이 있음을 말하려고 한다. 우리는 똑같이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이것이 신약이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러나 신령한 몸은 육체적인 몸과 다르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고전 15:39-44절에서 말하고 있다. 다른 속성을 가진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 땅에서 살았던 똑같은 사람으로 인식될 것이다.


        때때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도 한다. 이 질문은 성경이 영혼의 불멸성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나온 개념이다. 어떻게 우리가 몸이 없는 영혼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인가? 물론 중요한 면에서, 성경은 영혼의 불멸성을 가르친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은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의 몸을 인식하는 것 이상의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성경의 초점은 육체 부활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인식할 수 있는 개인적인 특징들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부활 후에 인식할 수가 있었다. 엠마오로 가고 있던 두 사도와 마리아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런 실패는 일상적인 것이 아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예수님의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들었을 때에, 마리아는 그를 알아보았다. 빵을 땔 때에 사도들은 예수님의 손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았다(요 20:10-18, 눅 24:19-35). 그리스도와 같이, 우리도 또한 부활 후에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어떤 장소보다 더 분명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현재 경험은 우리를 위하여 얼마나 큰 영광이 창조되고 있는가를 알려주고 있다고 바울은 말한다(고후 4:17). 이 땅에서의 어려움은 미래에 좀 더 큰 영광을 위해서 토기쟁이가 우리들을 만들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볼 수 있는 위대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때때로 일을 하다가, 완전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공항에서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나온다. 그들은 사진을 통해서만 우리들을 보고 알았을 것이다. 종종 “기대했던 것보다 더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듣는다. 최종 상태에서 우리가 서로 만났을 때에, 아마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내가 기억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건강해보이고 생동감이 넘쳐 보인다”라고 말하지 않을까!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의 삶속에 안주하면서 우리 모두를 활기차게 하였기 때문이다.



4. 새 하늘과 새 땅


        사람은 먼지로부터 만들어졌다; 동물창조처럼, 우리는 생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있다. 창조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보면, 우리는 그것을 초월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과 연결되도록 만들어졌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피조물을 통치하도록, 그리고 지적으로 찬양과 순종을 하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와 맺은 좋은 언약을 어겼을 때에, 전피조물이 우리와 함께 타락을 하였다.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근원인 먼지위에도 저주가 임하였다. 종속, 속박, 부식을 아담이 경험하게 되었으면 죄의 열매였다.


        이 타락을 그리스도가 역전시켰다. 첫 아담의 실패를 마지막 아담의 순종에 의해서 되돌려졌다(롬 5:12-21). 타락을 역전시킨 그리스도의 효력은 부활 속에서 나타났다. 전 우주가 부활의 변화를 공유하게 될 것이고 새롭게 될 것이다. 바울은 일어날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롬 8:18-23


        여기에서 바울은 피조물들을 발끝으로 서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좀 더 좋은 것을 보기 위해서 목을 길게 내미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영광의 최종적인 자유 속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들어가기를 열망하고 있다(롬 8:23). 이런 입성은 부패하는 피조물 자신의 종속의 끝을 의미한다.


        죽음에서 첫 열매이며, 피조물의 머리인 그리스도의 부활은 새로운 피조물의 회원들의 부활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 전 우주에 있는 피조물이 부활을 하도록 인도한다. 그리스도는 이것을 의미심장하게 “세상이 새롭게 된다”고 표현하였다(마 19:28).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올 오래전에 약속했던 회복이다(행 3:21).


        베드로 후서 3:10-13절은 이 대변동의 사건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준다.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불에 의해서 체질이 녹아버리고,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드러난다고 생생하게 설명해준다. 영광스런 불꽃의 아름다움이 어두운 하늘에 전개될 것이다. 거룩한 세상이 큰 영광중에 나타날 것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의가 전시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된다.


        이사야 선지자의 이상이 이 진술의 배경이다:


사 65:17-25


        교회 안에서 이것이 얼마큼 성취되었던지 간에, 베드로는 이런 절정이 미래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았다.


        하나님의 미래 사역은 지구를 위한 그의 목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성취시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파괴될 것이고, 새로운 세상이 나타날 것이다(벧후 3:6-7). 이런 파괴는 전체적인 또는 최종적인 멸절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시작과 함께 동반된 심판으로서 세상을 정결케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현재의 몸과 미래의 몸 사이에 존재하는 것처럼 옛날 세상과 새로운 세상은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불은 정제를 목적으로 파괴할 것이다. 새로운 세상은 영광중에서 깨끗하게, 바뀌어서 장엄하게 나타날 것이다.


        결과적으로 계시록은 옛 세상에서 파괴되었던 모든 것이 수리되고 아름답게 된 장엄한 우주로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여준다. 옛 질서는 지나갈 것이다; 낙원은 회복될 것이다(계 21:4-5). 생명나무에 대한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22:2). 저주와 죽음이 더 이상 있지 않을 것이다(21:4, 22:3). 하나님과 활발한 교제가 있을 것이다(21;3). 생명수 강의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22:1). 어린양의 그 가운데 있게 될 것이다(22:3). 하나님 그 자신이 우리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줄 것이다(계 7:17).



5. 우리는 어디에서 영원한 시간을 보낼 것인가?


        구속받은 자의 마지막 상태는 무엇인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이 질문에 근시안적인 답을 하도록 인도하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성경의 중심적인 강조가 육체의 부활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영혼의 불멸성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고 어떤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것은 그들의 마지막 상태가 육체가 없고, 존재의 어떤 형태가 없는 것으로서 상상하도록 이끈다.


        두 번째로, 계시록의 몇 구절들에 대한 잘못된 독해(讀解)는 죽음과 마지막 상태 사이에 있는 중간상태에 대한 설명을 최종적인 상태로서 잘못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그럼으로서, 자주 기독교인들은 미래의 삶은 마치 육체가 없는 상태로서 존재하는 것으로 말하여 왔다.


        이런 사고는 부활과 우리의 새로운 육체 그리고 새로운 땅과 그들의 존재에 대한 성경적 강조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였다. 우리 미래의 삶은 현재의 삶보다 더 실질적이 될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천국에 있을 것이고, 하나님과 직접적인 임재 속에 있을 것이고,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지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찰 것이다(사 11:9). 천국과 지구는 하나가 될 것이다; 천국과 지구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들의 거주지가 될 것이다. 하나님 은혜의 신비 속에서, 지구는 사람들이 갈망했던 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 지구 위에 있는 천국. 하나님의 거주지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것이고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살 것이다(계 21:3). 천국과 같은 지구, 지구와 같은 천국.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았던 사람들, 예수님을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싶어하지 않는 질문이다.



6. 구원받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한 친지가 자기 가족 중에서 사별한 한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족들은 전혀 기독교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다. 친척 중에 한 사람은 심각한 건강의 문제가 있었지만, 죽음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친구가 질병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그는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친지들은 지금은 적당한 시간이 아니라고 대답을 하였다고 한다. 과연 적당한 시간이 아닐까?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과 그의 은혜로부터 영원한 분리, 또는 심각한 질병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구원자인 그리스도에게 돌아설 기회. 어느 한 날에 그리스도의 왼편에 설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신약은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운명은 생생하고 무서운 그림으로 그리스도 그 자신에 의해서 서술되었다. 마귀와 그의 추종자들을 위해서 준비된 영원한 불못이 있다(마 25:41). 이곳이 영원한 형벌의 장소이다(마 8:12). 천국의 빛 밖에는 어두움이 있다(마 22:13, 25:30). 이것은 베드로와 유다가 말하는 가장 어두운 장소이다(벧후 2;17, 유 13). 새 예루살렘 성 밖에 놓인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계 22:15). 받는 형벌 때문에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표현들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일지 또는 은유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였다. 예를 들면, John Calvin은 이런 설명들은 회화적인 언어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표현하고 있다고 믿었다. 결국 불과 어두움은 서로 병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구절의 언어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본질적으로 성경에 사용된 용어의 해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성경의 언어는 성경에서 가르침과 모순될 정도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성경 해석의 원칙이다. 성경이 은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의 실체로 생각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된다. 지옥도 은유적인 용어로 설명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무서운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The Great Divorce”라는 책을 쓴 C. S. Lewis는 지옥에서 나와서 천국을 방문하는 일단의 방문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천국의 삶에 맞지 않는 그들은, 그곳에 있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Lewis는 구원얻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마치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자녀들은 그들을 위해서 만든 완전한 모습이 천국에서 보여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도 지옥에서 그들의 완전한 모습들이 나타날 것이다. 결국 지옥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장소이다. 하나님이 죄의 결과를 막아주지 않는 곳이기에, 가장 악한 모습들과 상황들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거기다가 예수님은 지옥은 더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음을 시사하였다. 하나님은 지옥에서 그들이 자기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런 방식은 이미 이 땅에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롬 1:24, 26, 28). 지옥은 “영원한 불”(마 8:8, 25:41)이라고 예수님은 말한다. 어두움이 있고 슬피울며 이를 갊이 있다고 하였다(마 8:12).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어서 살기 보다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았다고 말을 한다(마 26:24).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형벌의 단계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의로운 심판을 하시기 때문이다. 심판 때에, 가버나움과 같은 도시들은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심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마 10;15, 11:20-24).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게 될 것이다(눅  12:47-48). 그러나 우리가 본 것처럼, 모든 사람은 형벌을 받고 있다. 의가 온전하게 실행될 것이다.


        지옥에 대한 신약의 설명은 자세하지 않다. 우리의 연약한 영혼이 천국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옥에 대한 충만한 설명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옥의 실체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은 풍부하다. 주님이 천국에 대한 말씀을 주셨던 것처럼 지옥에 대한 말씀도 분명하고, 교리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즐거운 마음으로 지옥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 독일에서 이민온 신학자 게르할더스 보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지옥이라는 주제는 두려운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가운데서 이것에 대해서 말하기를 주저하였다. 말하지 못한 것들이 참으로 많이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예수님 그 자신은 지옥에 대해서 말씀하신 장본인이다.


눅 12:4-5


        이것은 구원자이시고,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7. 어려움


        악한 자들의 운명을 보면서 어떻게 우리가 천국에서 완전한 평강가운데 영화롭게 될 수 있는가?  지옥에 있는 사람에 대한 우리들의 전망은 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깊은 슬픔을 줄 수 있다. 이 문제는 교리적인 깊이와 어려움의 문제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감정의 동요 없이 악한 자들의 운명에 대해서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이 문제에 대해서 종종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응답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존재 자체가 말살될 것이라는 것이다(보통 영혼 멸절설이라고 부른다). 최근에 몇몇 복음주의 교단에서는 영혼멸절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 견해의 옹호자들은(멸망이나 제 2의 죽음이라는 성경적인 용어에 의존을 한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존재를 멈추게 된다고 말을 한다. 그럼으로서 많은 무리들이 바깥 어두움에서 영원토록 심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천국의 기쁨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천국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기 때문에, 지옥의 존재가 야기할 수 있는 슬픔들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영혼멸절설이 이런 어려움에 대한 성경적인 대답이라고 우리는 믿지 않는다. 분명한 한 가지는, 옹호자들이 기대하는 것과 같은 심리적인 위로를 제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비존재는 그들의 존재가 없어졌다는 것으로 마음의 위로를 받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고, 고통을 제거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들의 고통은 남아있을 것이다.


        성경 그 자체는 우리가 여기에서 느끼는 심리적인 갈등을 말하고 있지 않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죄성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들에게 약간의 힌트를 준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우리들의 죄성을 분명하게 볼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죄성이 온전하게 제거된 다음에, 우리는 심판에서 보여진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로움을 기쁘게 인정하게 될 것이다( 계 19:1-3).


        두 번째로, 악한 자들이 거하는 곳이 바깥 그리고 어두움이라는 강조를 생각해보아야 한다(계 22:15).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천국의 시민들에게, 지옥은 단지 밤하늘에 불과하며, 하나님의 도성은 아주 밝게 빛날 것이다. 우리는 밝은 빛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지옥을 우리가 전혀 인식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로, 지옥은 사단과 그의 옹호자들인 적그리스도들이 사는 장소이다. 비록 마굿간에서 태어났지만 모든 것을 채우시는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알맞은 장소이다. 지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천국을 오히려 더 흉악한 것으로 볼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것을 더 못견뎌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계시는 우리들에게 악한 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충분한 답을 주고 있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말씀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만한 이유가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들이 자기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였다(요 17:2).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모든 영광가운데 살 것이며 그와 같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모든 성경의 가르침처럼 신약이 중요한 것으로 우선순위를 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알기를 원하는 가장 중요한 것을 그는 자주 그리고 분명하게 계시하였다는 것이다. 어떤 것들은 우리가 알 필요가 없어서 말씀을 해주지 않았다. 다른 것들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많은 말씀을 하신다고 할지라도 우리들의 이해력이 부족한 것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세처럼 하나님께서 계시한 것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오묘한 것들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으로 인정을 해야 한다(신 29:29).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을 때에 천국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4).


        바로 이것이, 주저함이 없이 우리가 즉각적으로 애를 써야 하는 과업이다.
  
<< 제 5 장 시험문제>>

1. 사물에 대한 불신자와 신자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2. 예수님의 부활과 하나님의 미래에 하실일과는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

3. 과거에 잃어버렸던 것들이 미래에 어떻게 되는가?

4. 재림때에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부활하는지 설명하라

5. 부활체는 현재의 몸과 어떤 차이점과 공통점을 가지는가?

6. "영광"이라는 단어를 설명하라

7. 천국과 지옥에서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가?

8. 새로운 세상인가, 새롭게 된 세상인가? 논증해보라

9.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10.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평강을 가질 수 있는가?

11.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타난 교리가 무엇이며, 간단한 설명을 하라

12. 이 문제를 정통주의자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1. <<눅 17장 연습하기 : 눅 13-15장의 관점을 가지고>> 범위 : 눅 17:26-37

a. 이 본문이 나오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b.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까?

c. 인자의 날을 왜 보지 못한다고 말씀합니까?

d. 인자의 날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눅 17:20-24절에서만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e. 누가 인자의 날을 보지 못합니까?
(눅 17:20-24절에서만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f. 노아의 때에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감으로 멸망을 당했던 사람이 구체적으로 누구입니까?( 이 본문이 나오게 된 동기를 생각하면서 대답해주시기 바랍니다)

g. 롯의 때에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지음으로 불과 유황으로 멸망을 했던 사람들이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본문 안에서만( 눅 17:20-37)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h. 지붕에서 내려오고 뒤로 돌이킨 사람이 누구인지 본문에서만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i. 롯의 처와 같은 행동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본문에서만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j.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고 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본문에서만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k. 버려둠을 당한 남자는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본문에서만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l. 버려둠을 당하는 여자는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본문에서만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m. "주여 어디오니이까?“라는 말씀을 본문의 문맥에 맞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n.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이느니라”라는 말씀을 본문의 흐름에 맞게 무슨 뜻인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p.s. 이 책은 " If I should die before I wake"의  "제 5 장 The Best is yet to be"를 번역한 것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다고 한다면 전적으로 번역자인 저의 잘못입니다. 이 책의 번역 내용은 번역자의 서면 동의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 admin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5-04-30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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