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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Back to the christian life, 제 19 장 부르심에 답하기
편 집 자  2011-11-04 20:11:19, 조회 : 2,082, 추천 : 359

제 19 장
부르심에 답하기

        트위드 천으로 만든 코트, 평범한 옥스퍼드 대학, 그리고 부랑아들. 이것들은 교수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과의 연대의식을 주장하려는 시도로서, 농사를 짓는 곳에서 “텍사스 사람들이 시는 긴 부츠를 신었다. 그는 교실안을 점잔빼면서 걸었다. 밤마다 그의 강의실을 닦는 청소부보다 더 많은 돈을 주는 ”악한“ 자본주의에 대한 적응을 격려하였다. 전에 잘알려진 기사로서, 이 하버드 법률 학교 교수는 법대에 있는 모든 교수들이 청소부와 자리를 바꾸어야 한다고까지 제안하였다. 그러나 청소부들이 교수들과 자리를 바꾸기를 원하는지를 물어보지는 않았다.

        어느날, 이 교수의 교실에 있던 한 학생이 제안을 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Wall Street Journal에 게재하였다. 모든 청소부들은 이 교만한 교수의 제안을 기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교수가 된다는 것이 청소부가 된다는 것보다 더 고결하다는 교만한 가정이 그 뒤에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교수는 사람으로서 청소부의 존엄성을 지키려 하였지만, 그들의 직업을 손상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교수가 청소부보다 더 낫고 더 품위가 있다는 개념을 분명히 부인하려고 했지만 결과는 그 반대로 교수의 직분을 더 우월한 것으로 만들었다.

        여러 가지 직업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품위를 지키려는 잘 의도된 그러나 잘못된 시도에 대해서 명쾌한 성경의 진리는, 개혁자들에 의해서 선포된 진리,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진리, 부르심에 상관되는 교리들을 통해서 대항하였다. 잘 이해를 하기만 하면, 이 교리들은 다른 직업을 추구하는 성도들의 품위를 회복시킨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가르쳤다. 어떤 직업으로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부르셨던지 간에 그리고 섭리적으로 그들로 하여금 어떤 직업을 추구하도록 인도하였던지 간에 모든 성도들은 그를 섬기고 영화롭게 해야 한다.


1. 문제에 근원을 찾아가기

        개혁신학과는 달리,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어떤 직업은 하나님의 눈에 다른 것들보다 더 품위가 있다고 믿는다. 물론, 이 믿음은 기독교인의 삶이 통일된 전체임을 보지 못한데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모든 삶의 영역에 주인이라는 것을 보지 못한데서 기인한다. 그리스도가 모든 삶의 주인이라고 한다면,이 세상에 있는 우리들의 삶을 “거룩한”것과 “세속적”인 것으로 분리하는 것은 잘못된 결과를 산출한다. 종교 개혁시대의 로마 카톨릭 교회는 삶을 이런 식으로 나누었다. 당연히 사람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직업으로서 제사장을 뽑을 수 밖에 없다. 제사장은 평신도들과 다른 복장을 함으로서 분리되었다. 성직자가 있고( 영적 신분) 그리고 모든 다른 사람이 있었다( 세속적인 신분).

        불행하게도, 중세 카톨릭의 후손들은 여전히 우리 주위에 있다. 심지어 개신교 영역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조금 다른 복장으로 영적-세속적인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개신교는 어떤 사람을 제사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사람들을 평신도로 부르는 사상에서 뚜려하게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그리고 주의해서 이런 사람들을 보게 되면, 이와 같은 서열이나 계층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새롭게 나타난 개신교 제사장직은 풀타임 기독교 봉사를 하는 사람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한다면, 너가 외국으로 가는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개신교의 서열에서 낮은 단계에 있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면, 도시 목회자가 될 수 있다. 더 낮은 단계는 시골 목회자이다. 평신도로 내려갈 때까지 이 서열은 계속된다. 그들은 봉사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너희들은 직업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은연중에 서열의식을 갖고 있다.


        슬프게도, 이런 서열개념은 우리가 인정하는 것 보다 더 널리 퍼져있다. 한번은 존경하는 복음주의 신학교를 방문했다. 법률을 공부한다음에 신학교를 입학할 마음을 갖고 있었다. 나의 계획을 학교 행정 담당자에게 알렸을 때에, 그는 엄숙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선교사(전문 사역)를 하기 위해서 성공적인 사업가로서의 경력을 포기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말하기를 “ 목회를 진진하게 생각한다면,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교회에 두고는 살 수 없다고 충고하였다.

        이 행정 담당자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주로 복음주의 공동체는 이와 같다. 기독교인의 삶은 총체적이다. 영적인 부분과 세속적인 부분으로 억지로 나누어서는 안된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부름을 받았다. 먹고 마시는 아주 일상적인 일까지도 포함한다(고전 10:31). 우리가 무엇을 하던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 예수님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일을 해야 한다(골 3:17). 쉽게 말하면, 우리는 주님의 위해서 살아야 한다( 롬 14:7-8).

        우리의 전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총체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하나님의 눈에 어떤 것은 덜 중요하고 어떤 것은 덜 품위가 있지 않는 것으로서 어떤 삶의 영역을 다룰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정확하게 이런 행동들을 하고 있다. Paul Helm의 말했던 것처럼, 어떤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책임은 “교회 현관에서 끝이 나는 것처럼 행동을 한다. 기독교인의 복음은 밖에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 안에서만 울려퍼지는 것처럼 행동을 한다”고 하였다. 그는 매우 정확하게 관찰을 하였다,

        “ 오늘날 부르심 또는 직업에 대한 생각이 돌보는 일 또는 사회적인 일과 같은 직업으로 제한되었다. 그러나 성경적인 관점은 어떤 합법적인 직업도 부르심이 될 수 있고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전체 삶을 하나님께서는 부르셨다..... 그의 섭리적인 통치의 산물이다.... 그런 생각이 종교개혁때에 지배적이었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잊어버렸다.”

        우리 개신교인들의 기억력이 점점 떨어져가고 있다. 우리 모두는 종교개혁자들과 그의 후계자들이 우리들의 삶 그리고 하나님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직업에 대해서 - 성도로서의 제사장 직에 대해서 앉아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제사장인가? 어떻게 우리가 제사장이 되고 이 진리는 우리들을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는가? 종교개혁자들과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서 증명된 것과 같이, 이 모든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성경으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자.


2.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
        우리의 주권적인 하나님이 성경적 메시지의 중심에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제사장직은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에 뿌리를 두고 근거를 두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예수의 대제사장직은 사람에 의해서 임명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의해서이다. 사실, 하나님은 구속력을 가진 맹세을 하였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멜기세댁의 반차를 따라서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이었고, 제사장이며 또한 제사장이라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언약이다(히5:6, 6:26, 7:26-27).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신인(神-人)으로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의 유일한 중보자이다(딤전 2:5). 그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단번에 그 자신을 희생물로 바쳤다.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우리의 죄책을 속죄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셨다.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돌려놓기 위해서 화목제물이 되었다. 그럼으로서 우리들을 하나님과 화목시켰다(우리의 죄 때문에 분리되어 있었다). 죄와 죽음의 저주로부터 우리들을 구속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단순하게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이 우리를 위해서 속죄하기 위해서 죽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또한 그의 죽음 때문에, 우리가 그 안에서 그리고 그를 위해서 제사장이 되었다고 가르치기도 한다. 우리르 사랑하고, 그의 피로 우리의 죄를 풀어주신 바로 그 분이 우리들을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 제사장이 되게 하였다(계 1:5-6). 얼마나 영광스러운 진리인가!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으로서의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칼빈이 아주 정확하게 설명한 것처럼, 이 위대한 제사장 직분에 속한 그의 동료로서 우리들을 받아들였다.

3. 제사장 소집자
        어떻게 그리스도는 이 위대한 제사장 직분 안에 있는 그의 동료로서 우리를 받아들이는가? 하나님은 자신의 은혜를 우리들에게 주었고,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선택했고, 그의 언약 백성과 왕같은 제사장이 되도록 우리를 불렀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이 먼저 그의 선택된 백성이 되도록 부르지 않았다면 그의 제사장이 될 수 없다. 우리를 제사장으로 부르는 거의 모든 구절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을 그의 선택된 백성으로 말하고 있는 이유이다.

        예를 들면, 베드로는 첫 번째 편지에서, 하나님의 구약백성에게 적용이 된 속성들을 신약의 신자인 우리들에게 적용을 한다.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고 노골적으로 선포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은혜가운데 불렀고,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하면서 살면, 그들은 하나님 자신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출 19:5, 신 14:2,21). 이런 심상을 가지고 새로운 이스라엘로서 신약의 성도들에게 이런 속성을 적용시키고 있다. 베드로는 쓰기를,
        “  (9)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9-10).

        똑같은 맥락에서, 계시록에서 네 생물과 24 장로는 어린양이 죽었고 그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샀다고 하였다,

        “  (9)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하더라”(계 5:9-10).

        이들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에 대해서 배운다. 그는 우리들을 그의 왕같은 제사장이 되도록 불렀다. 특별히, 우리는 세가지 중요한 진리를 배운다. 첫 번째로, 그리스도의 속죄하는 피로서 하나님은 우리들을 모든 민족 모든 방언 그리고 모든 나라에서 회심하도록 불렀다.  베드로가 설명하는 것처럼, 어둠에서 기이한 빛으로 들어가도록 불렀다. 두 번째로, 우리는 그의 선택된 백성과 왕같은 제사장이 되도록 언약 안으로 불렀다. 세 번째로, 그의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우리는 그의 뛰어남을 선포함으로서( 우리의 제사장적 기능) , 그의 영광으로 이 땅을 다스림으로서( 왕적인 기능) 그를 매일 매일 섬겨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우리 모두는 왕같은 제사장이고 , 제사장같은 왕이다. 그를 위해서 통치함으로서 매일 매일 그를 섬겨야 한다.


4. 칼빈과 욥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며 영화롭게 해야 한다.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라는 생각은 낡아빠진 신학적인 표어로서 분류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개혁주의 신학의 초석이다. 그것은 매일 매일 우리들의 삶을 어떻게 영위해야 하는가, 어떻게 우리의 직업을 추구해야 하는가를 가르친다. 알맞게 이해를 하면, 만인 제사장은 가정과 교회와 일터와 나라에서 하나님께서 주어진 권위를 없애지 않는다. 만인 제사장은 우리들의 삶과 직업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것임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차이점을 없애버린다.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다. 인생에서 그들의 부르심이 무엇이든지간에 상관이 없다.

        루터가 아주 잘 설명을 하였다,
        “ 지금 영적이라고 불리우는 사람은, 즉 신부, 감독, 교황은 다른 평신도들과 다르지 않고, 그들보다 우월하지 않다. 단지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찬의 실행에 책임을 갖는다. 그것은 그들의 일과 업무이다. 또한 세상 권세도 갖고 있다. 그들은 칼과 막대기를 가지고 악한자를 처벌하고 선한 자를 보호한다. 구두 수선가, 대장장이, 농부- 각자는 그 자신의 일과 직분을 갖고 있다. 그들은 모두 성스러운 제사장과 감독이다.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의 일과 직분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고 봉사를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모든 종류의 일들은 공동체의 육체적 그리고 영적인 평강을 위해서 행해질 수 있다. 몸의 모든 부분들은 서로에게 봉사를 하는 것과 같다(고전 12:14-26).

        루터에 의하면, 제사장과 평신도의 차이점은 기능상에 있다. 제사장은 그들의 직업을 갖고 여러 가지 기능들을 행하는 반면에, 평신도들도 똑같다. 사실 평신도들은 그들의 신적으로 작정된 직업에서 제사장으로서 그를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거룩하게 구별되었다. 우리의 직분이 무엇이 되든지간에, 우리가 겸손하게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하고 몸의 생명을 공급하기 위해서 헌신해야 한다고 루터는 우리를 생각나게 한다.

        우리 인간 본성은 우리들을 “이리 저리로” 이끌어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업무와 장소를 지정하여 주었다. 이것이 우리를 제한하고, 우리를 위한 경계로서 봉사한다. 그는 이 업무와 장소를 직업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그들을 범하지 않을 때에 가장 질서가 잡힌다고 하였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이 이 목표를 향하고 있을 때에 가장 잘 정리될 것이다. 소명의 한계를 넘는 것이 합당한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아무도 경솔하게 굴어서 소명이 허락하지 않은 일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미천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아무 불평없이 자기의 생활을 해서, 하나님이 정해주신 대열을 이탈하지 않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의 인도자이심을 알면, 걱정과 수고와 곤란과 그 밖의 짐이 있더라도, 적지 않은 위안을 받게 될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은 더욱 기꺼이 직무를 수행할 것이요, 일가의 가장은 그 의무에 전심할 것이다. 각자의 생활 양식에서 받는 불편과 근심과 권태와 불안에 대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지워주신 것이라고 믿을 때에,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참고 견딜 것이다. 여기서 또한 소명임을 알고 순종하면, 아무리 낮고 천한 일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빛날 것이며 아주 귀한 것으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유일한 위안이 생길 것이다.”

        루터와 칼빈에 의하면, 모든 성도는,  구두수선가, 대장장이, 농부들도 동등하게 하나님이 주신 보물을 받았다. 어떤 직업도 다른 어떤 것보다 우월하지 않다. 어떤 직업도 다른 어떤 것에 비해서 더 거룩하지 않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다른 직분과 직업을 주었다. 바닷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부터 의사에 이르기까지, 심부름꾼에서부터 매니저까지, 전기수리공에서부터 사장까지 모두가 다 하나님 눈에는 같다. 모든 합법적인 직업은 하나님이 그의 사역을 하기 위한 수레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5. 핑계 그리고 또 핑계
        근본적인 문제는 모든 직업이 그들의 기독교 소명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성도들이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결과적으로, 제사장으로서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의 일을 하시며, 뜻을 이루시는 수단으로서 그들의 직업을 보는 일에 실패를 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놀랄만한 특혜를 성도들이 부여받았다. 어떤 성도들은 그들의 직업에서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영화롭게 할 가치있는 기회를 잃고서 매일, 매주일 그들에게 부여한 일로 휘청거렸다.

        A. 주말을 위해서 일하기
            때때로 성도들은 그들의 지겨운 주중의 정신상태를 다소 경건한 옷으로 가장을 하였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주일날 교회에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그들의 실제적인 소명을 추구할 수 있기 위해서 주중의 일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태도는 그들의 소명- 그들의 봉사-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들이 하는 일을 포함하고 있음을 잊은 것이다. 우리는 봉사하기 위해서 일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일하면서 봉사를 해야 한다.

        주중을 힘겹게 해치우는 사람들은 그들의 기독교 고백을 광채나게 할 탁월한 기준에 따라서 살지 못하고 있다. 복음을 전파하면서, 그것의 기초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그들 앞에 놓여 있는 일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실행하는 것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다(고전 10:31, 골 3:17).

        사실, 이 문제는 기독교 고용원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어떤 기독교 고용주도 그들의 편지 헤드레더에 고기 또는 십자가를 놓는 것을 자격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을 고용하는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무능력을 참아야 한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우리가 불신 고용주를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불신 직원을 채용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 있는 믿는 고용주와 고용원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 대한 봉사가 주일날 시작해서 주일날 마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은 출발점이 아니다.


        B. 증거를 위하여 일하기
           어떤 다른 사람들은 직업을 단순히 선교 영역으로서 보기 때문에 주중에 신적 소명을 성취하는 일에 실패를 한다. 심지어는 불신 친구와 동료들에게 증거하기 위해서 회사 시간을 소모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결국 그들의 증거를 업신여기게 만들고 그들이 속해있는 사업에 막대한 해를 끼친다.

        매우 잘 알려진 선교사의 이야기이다. 그가 선교현장에 나가기 전에 낮에는 구두수선공으로 일을 했고 밤에는 선교를 위해서 공부했다. 저녁 공부에 동기를 얻은 그는 가게에 들어온 거의 모든 사람과 함께 복음을 나누려는 간절한 소망을 보여주었다. 어느날 가게의 단골손님이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 자신의 주요 업무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기에 때문에 아무 상관이 없다고 응답을 하였다. 그리고 나서 자기가 구두를 수선하는 것은 공부를 위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장차 선교사가 되려는 구두수선공은 요점을 놓쳤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길이 , 낮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구두를 수선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영혼구원을 위한 존경할만한 열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구두수선공인 그는 영혼을 위한 동등한 열성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도록 부르신 일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회사 시간에 너가 증거를 해야 한다면, 그 시간을 매꾸어주어야 한다. 그것은 회사에게 속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제사장들이 고용주로부터 시간을 도둑질하도록 부르지 않았다(출 20;15, 롬 3:8).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은 영적인 일을 생각하느라고 세상일에 신경을 쓸 틈이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일하는 시간동안에 최선의 노력을 하는 산업전선에 있는 기독교인들보다 더 하나님을 경배하고 천국을 더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실제로 생각한다. 종교적 경배라는 이유로 필요한 일들을 무시하지 말라고 Richard Steele은 경고하고 있다. 영적인 생각 때문에 일터에서 방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충고를 Thomas Shepard가 했다: “ 영적이고, 천상적인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웠을 때에 세상적인 생각을 품는 것은 죄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적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세웠을 때에 영적인 일을 한다고 방해를 받는 것은 더 큰 죄이다.”

        우리의 마음을 일하는 곳에 쏟아놓을 때에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절대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일하는 곳에 두지 않을 때가 하나님을 경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을 봉사하고 영화롭게 하기를 원하신다. Os Guinness가 바르게 설명한 것처럼, 문제는 거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그들이 있어야만 하는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이 있는 곳이 반드시 그들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영화롭게 하지 못하고 있다. 바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서” 일하고 있지 않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봉사하는 분이 주님이라는 것을 잊어버렸다(골 3:23-24).

        직장에서 그들이 섬기는 분을 잊은 사람들은 이 점에 대해서 개혁주의자들과 그들의 후계자들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올릴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루터는 세속적인 일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이 매우 기뻐하시는 순종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썼다. “소명이라는 사상에는 어떤 한계도 있지 않다. 너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어떤 것을 하던지간에,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 그의 직장을 통해서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증거할 수 있다.” 좁은 의미에서 증거하기 위해서 일을 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넓은 의미에서 일을 통해서 증거해야만 한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을 명예롭게 하고, 그를 기쁘게 하고 참으로 그의 거룩한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가장 강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


        B. 더 좋은 곳에서 일하기
           다른 기독교인들은 좀더 좋은 곳으로 옮길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일에서 그들의 태도에 태만하다. 또는 때때로, 하나님이 이미 그들을 좋은 곳으로 움직이도록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태만한 경우도 있다. 파타임을 갖고 있는 학생이나 승진 프프로그램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가까운 시일에 더 좋은 곳으로 승진할 것을 알고 있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이나 이런 문제를 가지고 싸우고 있다. 불완전한 취업자와 마치지 못한 예술이나 운동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로 씨름을 하고 있다.

        전생애 동안에 하나의 소명으로 묶일 필요가 없다고 바울은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 고전 7:21-22절에서, 그는 다른 소명으로 움직일 기회가 주어지기 전까지 우리가 지금 있는 곳에 남아있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특별히, 종으로서 하나님에 의해서 부름을 받은 사람도 그들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걱정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으며,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자유롭게 되라고 말한다. 바울의 권면을 근거로, 우리의 소명을 바꾸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기회를 주면 할 수 있다. 잘못된 이유( 탐심, 질투, 조급함등)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고 괜잖다.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현재의 소명에서 지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제사장으로서 활동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비행기를 좌석을 배정하느 사람으로서 현재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너가 비행기를 탈 때에, 너는 앉을 특별한 곳을 지정받는다. 비행이 끝나기 전에 빈 좌석으로 움직일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빈 좌석으로 움직일 기회가 주어질 때까지, 유일한 좌석은 너가 지금 앉아있는 곳이다. 하나님이 현재 너에게 지정한 곳에 영원히 머무르지 않아도 되지만, 현재 지정된 곳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추구하는 일에 실패해서는 안된다. 노아를 생각해보라. 홍수 전에 방주건설자로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다. 홍수동안에는 선원 그리고 동물원 관리자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다. 홍수 후에는 농부로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다. 바로 그것이 950년이라는 세월을 살 수 있게 하였다.


        C. 저주로서 일하기
            어떤 사람은 주일날에만 하나님을 위하여 사역하도록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일터를 선교 영역으로 생각을 한다. 또 다른 사람은 그들의 현재의 일에 좌절감을 갖고 있다. 또 다른 사람은 일은 타락의 결과라고 잘못 결론을 맺었기 때문에 제사장으로서 주중에 일하는 동안에 하나님을 봉사하고 영화롭게 하는 일에 실패를 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비성경적인 노동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은 타락후 제정된 것이 아니다. 타락전에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고 지키라고 다스리라고 하였다(창 2:15).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는 또한 땅을 정복하고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라고 타락전에 명령했다(창 1:27-28). 분명히 창 1장과 2장은 창 3장 전에 있다. 확실히, 아담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는 그의 일도 포함하고 있다; 그는 전 생애동안에 땀을 흘려야 한다( 창 3:17-19). 그러나 바르게 이해된다면 저주는 그의 일의 환경에 영향을 주었지, 일 자체를 제정한 것이 아니다( 창 5:29). 아담은 타락전에 일을 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일을 했다. 차이는 타락 후에 세계는 더 많은 일과 더 많은 땀을 흘려야 한다.

        비 성경적으로 일에 대한 낮은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타락 전에 하나님이 아담으로 하여금 일을 하도록 정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타락 후에도 성경에 발견되는 일에 대한 높은 관점을 잊었다. 예를 들면 ,출 20:8-11과 신 5:12-15절에서 발견되는 제 4 계명은 우리들로 하여금 일을 하도록 명령하고 있다. 우리들로 하여금 휴식을 취하도록 명령도 했지만 또한 6일 동안 일을 하도록 명령하고 있는 것을 보아야 한다. 주님의 날을 경멸하는 사람은 일 또한 경멸하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다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주님의 날을 경멸하는 사람들은 6일동안 쉬고, 7일에는 일을 한다.

        일에 대한 성경의 높은 생각은 부지런함을 높이고 게으름과 태만함을 저주하는 말을 잠언에서 많이 발견된다(잠 10:4-5, 26. 12:11,24,27. 13:4. 14:23. 19:15,24. 20:4, 21:5, 25. 22:13, 24:30-34, 26:13-16. 전9:10). 솔로몬은 노동의 열매뿐만 아니라 노동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즐거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이고 우리들에게 주신 보상이다( 전 5:18-20).

        주님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바울의 지시가 있다(엡 6:5-8, 골 3:22-24), 우리 자신의 먹을 것을 위해서 일을 만들지 말고 조용히 일을 하라고 권면한다(살전 4:11-12, 살후 3:7-12). 우리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필요를 위해서도 일을 하라고 한다(엡 4:28). 그리고 우리의 신앙을 부인하지 않고 불신자보다 더 많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의 보호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라고 권면한다(딤전 5:8, 13-16).

        전체적으로  일은 단지 타락후에 제정된 것이라는 개념을 불찬성의 표를 한다. 타락 후에도 성경에는 명령을 하고 칭찬을 하고 있는 타락 전의 제도이다. 심지어 종도 주를 위해서 정성을 ekgotju 일을 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떤 핑계도 있을 수 없다. 그들의 사실은 보이는 사실이다. 우리 또한 보이지 않는 사슬을 갖고 있다.


        더 이상 태만해서는 안된다. 너 이상 경건한 것을 핑계로 이유를 제시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준 기회를 오늘부터 붙잡아야 한다. 열심과 정열을 가지고 우리의 경건한 직업을 추구하는 일에 전념을 다해야 한다. 우리의 위대한 제사장을 섬기고 영화롭게 할 기회로서 직업을 보아야 한다. “우리 삶의 최종적인 목적은 우리 소명을 열심히 수행함으로서 봉사라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라고 William Perkins가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우리의 소명을 성취하고 다른 사람을 섬길 때에, 우리의 주요 목적인 하나님을 섬기고 영화롭게 한다.

        우리는 우연히 목수, 치과의사 또는 교수가 된 기독교인이 아니다. 우리는 기독교 목수, 기독교 치과의사, 기독교 교수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우리는 주일날만 기독교인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날을 포함한 매일 매일 기독교인이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우리는 교회에서만, 기도실에서만 기독교인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곳에서, 직장에서 기독교인이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이런 빛에서 보면, 우리의 소명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시간이 가기를 바라는 방식으로서의 직업이 아니다. 직업은 천직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부르심이다. 그것을 통해서, 그것에 의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영화롭게 한다. 우리의 위대한 제사장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부여한 놀랄만한 혜택을 겸손하게 인식함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합법적인 천직을 - 그것이 어떤 직업이던지 간에- 신적으로 작정된 제사장직을 수행해야 하는 삶의 한 국면으로 보아야 한다.

6. 대의 명분 세우기
        이 시점에서 그들의 직업이 분명하게 기독교인의 대의명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그들의 삶에 주어진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지 못한다고 생각함으로서 다른 방향을 나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함으로서 제사장으로서 그들이 활동한다면, 그들은 벌써 기독교인으로서 대의명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영적인 일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기독교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 종교자유의 사건만을 다룰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기독교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 주의 만찬을 그릴 필요가 없다. 기독교 판매원이 되기 위해서 성경을 팔 필요가 없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은 사역의 서열을 팔고 있는 것이다. 봉사 서열이 발견되는 곳에는 항상 평범한 봉사라는 개념이 따라오게 된다. 예술에서, 그리고 모든 삶에서 또는 부분적으로 제사장적 소명이라는 관점을 잃었기 때문에 이런 개념이 오게 된 것이다.

        “오늘날 바하, 핸델, 밀튼, 렘브란트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마이클 호튼이 매우 분명하게 물었다. 오직 풀타임 사역만이 하나님을 충만히 영화롭게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 풀타임 사역자가 되도록 권면을 받았지만,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먹기 위해서 2 또는 3개의 직업을 가졌다. 풀타임 사역만이 삶에서 가장 높은 또는 가장 좋은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호튼은 다음과 같은 말로서 응답했다,

        “기독교인이 사업가, 변호사, 주부, 예술가, 쓰레기 수거자, 의사, 또는 건축가가 되는 것이 선교사, 복음전도자, 목사, 청년 지도자, 또는 기독교 단체의 직원이 되는 것만큼이나 거룩한 것이라고 보기 시작할 때에, 비로서 그들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기독교 여성이 메트로폴리탄에서 노래하는 것이 교회에서 노래하는 것만큼이나 영적이라고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는 창조주와 구속자에게 우리의 소명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새로운 세대가 탄생되는 것을 보게 된다. 모든 성도들이 다시 한번 제사장이 될 때에, 우리는 풀타임 기독교 사역자를 구별되고 뛰어난 소명으로 보는 일들에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다.”

        풀타임 사역이 구별되고 우월한 소명이라고 생각하는가? 메트로폴리탄에서 노래하는 것이 교회의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것만큼이 영적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가?

        너는 지금 사역의 서열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닌가? 종교개혁자와 그의 후손들이 보았던 것을 볼 눈이 필요하다. 루터에 의하면, “사역의 일은, 하나님 앞에서 밭에서 일하는 농부의 일보다 더 이상 우월하지 않는다. 그들의 집을 돌보는 사람보다 뛰어나지 않다”고 하였다.  똑같은 의미에서, Perkins는 “다시 한번 양을 치는 목자의 일이 하나님 앞에서 판결을 내리는 재판장 만큼이나 좋은 직업이고,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만큼이나 좋은 직업이고, 설교를 하는 목사만큼이나 좋은 직업이다”라고 하였다. William Tyndale는 하나님의 눈에는 접시를 닦는 일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서 어떤 차이점을 찾지 못한다“고 말함으로서 똑같은 점을 강조하고 있다. 어떻게 우리가 이 진리를 회복시키고, 다시 일어서게 할 수 있을까?


7. 너는 어떤가?
        접시닦는 일로 부름을 받은 적이 있는가? 밭에서 일하도록 부름을 받은 적이 있는가?  메트로폴리탄에서 노래 부르도록 부름을 받았는가? 너의 삶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무엇이며, 그 소명을 너는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어떤 성경적인 소망을 주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은 출발점이다. 결국 어떤 일을 즐기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즐거움이 성경적인가? 숫자를 가지고 일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렇게 할 욕망을 갖고 있지 않다면,하나님께서 회계사나 수학자로서 너를 부르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다. 똑같은 증거로서, 너가 숫자를 가지고 일하는 것을 즐거워하면서, 편집자로서 일하는 것은 비 성경적이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과 반대되는 것을 어떤 것을 사람들이 하도록 부르지 않는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서 하나님에 너에게 준 책임과 너가 쏟는 열심을 평가하는 것이다. 아침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섹스폰을 연주하면서 길가에 서있는 것을 너는 좋아할 수 있다. 그러나 너가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고 방세를 내야 하는 가족이 있다고 해보자. 하나님이 너에게 부여한 책임과 너가 쏟는 열심을 게을리하는 일을 하도록 결코 부르지 않는다. 책임과 열심을 회피하게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가 벌써 본 것처럼, 그의 가족에게 부양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신자보다 더 나쁜 사람이다(딤전 5:8), 그리고 그런 일로 얷매여 있는 사람은 자기를 해롭게 하는 사람이다(시 15:4). 어떤 소명은 금전적 희생이 따른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개인적인 소득을 희생하는 것과 개인적인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희생은 칭찬할만 하지만, 회피는 가증한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님이 지금까지 너의 삶에서 인도한 것을 볼 수 있도록 너의 주위를 살펴보아야 한다.  너의 교육과 경험은 너의 소망과 책임을 지키는 특별한 직업을 위한 준비인가? 예를 들면 , 너가 의과를 다니지 않았다면 뇌 전문의사는 매우 어려운 업무이다.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다른 재능과 능력을 주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John Murrey가 말했던 것처럼, 이것이 우리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소명에 대한 색인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들을 수 있는 말로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합리적인 재능을 우리들에게 줌으로서 부르신다”고 Steele은 말했다. 너가 어떤 특정한 직업에 부름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면, 이 소명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또는 너안에서 개발할 수 있는 이런 기본적인 재능들이 너와 다른 사람이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 직업에 필요한 기본적인 재능을 주지 않고 특정한 직업으로 사람들을 소명하지 않는다.

        두가지 중요한 함축적인 의미가 이 진리에서 나온다. 첫 번째로, 하나님이 우리의 소명을 위해서 재능을 주었다면, 우리는 이런 재능을 알 필요가 있으며 하나님을 섬기며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그 재능을 사용해야 한다. 많은 것을 준 자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재능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일을 하도록 불렀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면, 부모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똑같은 재능을 동일한 양으로 주지 않았다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들로 하여금 똑같은 학력과 똑같은 전문직의 길을 가도록 부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머리를 쓰면서 일을 하도록 불렀지만, 다른 사람은 그들의 손을 가지고 일하도록 불렀다. 어떤 다른 사람들은 양쪽을 다가지고 일하도록 부를 수 있다. 하나님이 아담을 동산을 돌보는 사람으로 불렀을 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으로서 그런 일이 품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담은 그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았다. 더 지적인 일에 자기의 시간을 사용할 수 없다면 그만둘 것이라고 위협하지도 않았다( 동물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 또는 분류하는 것). 우리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처음부터, 동산을 돌보고 동물들을 분류하는 소명은 함께 존재한다. 하나는 다른 하나보다 더 우월하지 않다. 아담이 해야 하는 일의 목록은 손으로 하는 일과 머리로 하는 일을 다 포함하고 있다. Murrey는 말하기를, “ 손으로 일하는 노동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었다면, 경제, 도덕그리고 종교적인 파멸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준비되지 않은 직업을 추구하는 헛된 야망을 갖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솔하고 깨달은 마음을 가지고, 그들은 찾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너는 어떤가? 그리스도가 목수였다는 사실을 통해서 너는 무엇을 배웠는가? 베드로, 야고고, 요한이 어부였다는 것에 대해서 무엇을 배웠는가? 바울이 천막을 짓는 사람이었다는 것에 대해서 배운 것이 무엇인가? 너의 재능이 무엇이며 너의 삶에서 하나님의 소명에 대해서 그들은 너에게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때때로 우리는 우리들의 재능에 대해서 냉정하게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소명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의 현명한 조언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솔로몬은 말하기를, 모사가 많은 것이 승리의 비결이라고 한다( 잠 11:14, 15:22, 24:6).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실패하는 한가지 이유는 그들의 부모나 그들의 동료나 그들의 목회자로부터 진심어린 충고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아버지는 집이나 그리스도의 몸안에 있는 어머니와, 형제와 자매처럼 자기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일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소명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실일 수 있다. 이런 생각속에서, Richard Baxter는 그 소명에 대한 분별력있고  신앙이 있는 사람의 충고 없이 어떤 소명도 택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전문적으로 그들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욕망, 책임, 경험 그리고 재능을 평가함으로서 우리의 소명을 추구하고 성취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의 지혜와 충고를 찾음으로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주권적으로 부르시고 우리의 모든 가는 길을 섭리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위로를 받아야 한다. 전심으로 그를 의지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그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우리들의 길을 인도할 것이다( 잠 3:4-5, 16:3). 그의 사역은 우리를 부르고, 인도하고, 지도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역은 그를 신뢰하고, 그가 우리를 부르신 인생과 직업을 평가하고, 책임감있게 살아가야 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앞에서 살아아 하고, 모든 소명은 칼빈의 주장한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매우 귀중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8. 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되기
        만인제사장은, 바르게만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백성중에서 교만, 자아도취, 불만족, 또는 시기를 위한 여기가 없다. 어떤 성도도 그가 추구하는 직업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더 혜택과 신분이 높지 않다. 바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에 종도 자유인도 없다(갈 3;28).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들의 부름에 진실하고, 열심히 어떤 합법적인 직업을 추구하는 사람은 동등한 품위와 고결함을 하나님 앞에서 갖는다. “모든 합법적인 소명은 동등하게 건전하며 가치가 있다. 각 사람은 근원으로서 하나님을 갖고 있고 대상으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루터가 설명한 것처럼, “우리는 모두 영적인 신분을 갖고 있고 모든 진실로 제사장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똑같은 일을 갖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다른 직업이 그들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일과 다른 의무를 부여한다. 그리고 한 직업은 다른 직업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고임금을 받는 사람은 저 임금을 받는 사람보다 더 품위가 있거나 고결하지 않다. 그것은 실제로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분하는 것은, 어떤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이다. John Barkliy가 말한 것처럼, “ 유일한 농부는 기독교 농부이다. 유일한 의사는 기독교 의사이다. 유일한 사람은 기독교인이다. 유일한 여자는 기독교 여성이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우리는 어떤 사람도 아니고, 어떤 것도 할 수 없다(요 15:5). 오직 그의 은혜에 의해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고 그가 하도록 부르신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빌 4:13).

        “최선의 사람이 되는 것은 한 가지 직업이 다른 직업보다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직접적인 결과로서 온다. 우리의 위대한 제사장을 앎으로서 온다. 그가 우리들로 하여금 하도록 부르신 것을 한다는 것에서 온다. 만인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고 영화롭게 하는 내적인 일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된다. 또한 우리 각자의 직업을 열심히 추구하는 곳에서도 두어야 한다. 모든 곳에 있는 사람앞에서, 심지어 직장에서 우리의 빛을 비추기 위해서 외적인 일에도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어떤 사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늘에 있는 아버지를 영화롭게 한다(마 5:16).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은 다른 사람과 자리를 바꿈으로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아는 것을 통해서 나온다. 또는 우리의 위대하신 대제사장에 의해서 알려진 것으로부터 나온다. 그는 우리의 자리에서 죽음으로서 우리와 자리를 바꾸었다는 것을 앎으로서 나온다. 그가 우리에게 은혜와 긍휼을 쏟아부어주었다는 것을 앎으로서 나온다. 그의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그를 섬기고 영화롭게 하도록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앎으로서 나온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제 19장을 시작할 때에 긴 부츠를 입은 하버드 법대 교수가 반드시 들을 필요가 있는 메시지이다.

연구문제
1. 주중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2. 이런 이유들은 성경적인가?

3. 너의 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라고 일을 시작할 때에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적이 언제인가?


4. 오늘부터 시작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가?

5. 직장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분명한 종교적인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 설명해보라

6. 교회의 성가대에서 처럼 메트로폴리탄에서 노래를 하는 것은 영적인 일인가?

7.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8. 너의 삶에서 하나님의 재능과 소명을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 admin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2-2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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