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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부 표적으로서의 기적들 : 제 3 장 요한 복음에서 보여진 기적들
임 바울  2018-01-19 19:01:12, 조회 : 232, 추천 : 34

                                                           제 3 장
                                          요한 복음에서 보여진 기적들


요한복음은 더 노골적으로 어떻게 예수님의 기적들이 구속의 표적인가를 논의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 기록된 여러 가지 기적들을 가지고 시작한다.


A. 생명의 떡

        요 6장을 보자. 거기에는 5,000명을 먹인 기적이 기록되어 있다( 요 6:1-14). 똑같은 기적이 다른 세 복음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마 14:13-21, 막 6:30-44, 눅 9:10-17). 그러나 요한만 후에 생명의 떡에 대한 예수님의 강화를 동일한 장에서 포함시켰다( 요 6:25-59). 이런 강화는 기적 후에 같은 날에 일어났다( 요 6:22).


        예수님은 기적을 언급하면서 그의 강화를 시작한다; “[요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육체적인 음식으로서의 빵과 영생을 주는 영적인 빵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계속했다; “[요 6:27]   (27)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한 시점에서 군중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만나를 말했다( 31절). 그때에 예수님은 만나의 주제를 잡아서 하늘로부터 내려온 참된 빵으로 그들을 인도하는 일에 사용하였다.


[요 6:32-33]   (32)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그리고 나서 그는 “ 나는 생명의 떡이다”( 35절_이라고 선포했다.


        예수님은 모세의 시대에 있었던 만나와 5천명을 먹인 기적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만나는 기적적인 방법으로서 내려왔다. 이런 기적적인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정적인 생명만을 유지할 뿐이다. 유사하게도, 5천명을 먹인 빵도 육체적인 생명만을 유지시킬 뿐이다( 26-27절).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들은 좀더 깊은 의미를 가르키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즉 영생을 가르킨다. 예수님 그 자신은 영생을 제공하는 분이시다. 영생은 그를 먹는 사람에게 속해 있다. “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그러므로, 5,000명을 먹인 기적은 신적 능력을 보여준다는 사실 보다 더 많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것의 의미는 구약의 선지자와 같이,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참 메시야라는 사실을 확증하고 증명하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다. 예수님은 그의 삶, 죽음, 부활을 통해서 영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상징적인 형태로서 기적은 보여주고 있다. 즉 그는 영생을 가지고 온 것이다. 믿음으로 그에게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토록 있는 영적 자양물을 주고 있는 것이다.
( 그림 3.1 참조)

 




두 번째 기적을 보자.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을 고친 일이 요 9장에 기록되어 있다. 이 기적은 신적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하나의 표적이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가 무엇을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는지를 말해준다. 그리고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요 8장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한 곳에서 있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요 8:12] (12)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소경을 고치기 바로 직전에, 예수님은 유사한 선언을 하였다, “ [요 9:5]   (5)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끝에 가서, 육체적 고침은 영적 소경에서 영적 고침의 상징이다고 예수님은 분명히 하였다;

        “
        “ [요 9:39-41]   (39)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근본적으로 조명은 아들을 통해서 아버지를 아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 [요 14:8-11]   (8)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요 17: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18]   (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소경을 고친 육체적 기적은 소경안에서 영적인 일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 사람은 인자를 믿게 되었다( 예수님, 메시야);
        [요 9: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소경은 영적 시야를 받았다. 이렇게 됨으로서 그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구원을 받았다. 그러므로 육체적인 기적은 백성을 구속하고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구원얻는 지식을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체 사역을 조명한다( 그림 3. 2 참조)






C. 부활과 생명


        예수님의 공적 사역의 부분에서 요한복음에 기록된 마지막 기적은 나사로의 부활이다( 요 11:1-44). 줄거리 중간에서, 예수님은 그 자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한다;


[요 11:25-26]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기에서 예수님을 믿는자는 육체적으로 부활을 얻게 될 것을 약속하였다; 비록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그는 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육체적 부활은 이미 신자가 소유하고 있는 영적 생명을 위한 부속적으로 수반되는 사건이다. “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영생을 현재 소유하고 있는 요한복음 다른 곳에서도 확증해준다;


“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 17:3]   (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이 영생을 위한 기초가 무엇인가? 분명히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의해서 오는 것이다. 그는 부활과 생명이다. (그림 3.3 참조)






D.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우리가 지금까지 관찰한 것처럼, 나사로의 살아남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마지막 공적인 기적이다. 예수님의 기적을 제외하고. 나사로의 기적에 대한 응답으로서, 가야바와 유대인 지도자들은 모임을 가졌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모략을 하였다. 또한 나사로도 죽이기로 한다( 요 11:47-53, 12:10-11). 그리고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절절에 이르는, 베다니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날을 요한복음은 설명을 한다.


        요한복음에서 전체 줄거리는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예수님 사역의 절정으로 나아간다. 예수님 그 자신이 이런 다가오는 사건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요 12:31-33]   (31)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32)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나사로의 살아남은 특별히 예수님의 부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그의 부활을 미리 보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과 똑같은 수준은 아니다. 다시 살아났을 때에, 나사로는 그가 죽기 전에 가졌던 동일한 생명을 가졌다. 그는 미래에 다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영생을 가진다. 그는 결코 다시 죽지 않는다( 롬 6:9).


[고전 15:20]   (20)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리스도는 첫 열매이다. 그는 다시 생명을 얻는 첫 번째 사람은 아니다. 생명의 회복은 사르바의 과부( 왕상 17:17-24), 그리고 수넴의 아들( 왕하 4:18-37), 그리고 야이로의 딸( 마 9:18-26), 그리고 나사로를 통해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예수님이 첫 열매인가? 인성을 가지고 예수님이 영생으로 그리고 부활의 확실한 생명으로 들어간 첫 번째 사람이다. 나사로의 부활은 그러므로 앞으로 올 좀더 위대한 사건의 예표 또는 그림자이다. 예수님의 부활과 비교하면 단지 그림자에 불과하다. 이것은 그의 부활의 결과로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줄 영생과 , 영원한 생명에 대한 작은 규모의 그림을 우리들에게 제시해준다.( 그림 3.4 참조)





        나사로의 부활이 예수님 부활을 예견되는 사건이라면, 요한복음에 있는 다른 기적들에도 마찬가지이다. 5,000명을 먹이신 사건을 생각해보라.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다( 요 6:35)이란느 실체를 물질적인 측면에서 묘사한다. 그가 자신의 몸과 피를 줌으로서 영양분을 제공할 것이라는 요 6장에서 설명한다.( 53-56절). 이런 말씀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아간다. 죄를 위한 희생으로서 그의 몸과 피를 주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영적 영양분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일어난다. 믿음으로 우리는 그의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과 연합된다.


        예수님은 항상 생명의 떡이다.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은 그의 사역의 qnsrltwjadelk. 특별히 이런 절정의 사건에서,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항상 영양분을 받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그가 성취하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을 고치신 예수님을 고려해보자. 그리고 그 사건과 연관된 주장을 고려해보자,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 1:4절은 성육신이 일어나기 전에도 그는 넓은 의미에서 빛이었음을 알려준다. 창조에서의 그의 역할을 보자. “ 그 안에 빛이 있었고, 그리고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성육신을 함으로서, 그는 그 자신을 구속의 빛으로서 그 자신을 제공하였다.



[요 1:14]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계시의 빛과 영광의 빛은 십자가와 부활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최고로 보여주었다.



[요 13:31-32]   (31)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32)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요 17:5]   (5)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여러 가지 기적들은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위대한 기적을 미리 가르킨다( 그림 3.5 참조).




        요한복음에 있는 다른 기적들도 십자가와 부활을 미리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씩 간단하게 고찰할 것이다.



E. 38년 동안의 병자 (요 5장)

         요 5장에 있는, 양문에 있는 병자 치유사건을 생각해보자. 예수님은 다른 강화(講話)를 주기 위해서 요 5:19-47절의 사건을 선택했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일과 아들의 일과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 아들은 아버지의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로서 사람을 고쳤다( 요 5:17). 안식일에 예수님이 치유를 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안식일에 계속해서 일을 하였다는 사실과 일치한다; "나의 아버지는 지금까지 일을 한다“(17절). 예수님은 그의 신분의 표적으로서 병자를 고치는 그의 사역을 사람들이 보도록 초청을 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행하도록 그에게 주신 일이다. 그는 아버지와 연합해 있음을 나타냈다; ” 내 안에 있는 아버지가 그의 일을 하신다“(요 14:10). 게다가, 더 위대한 일들이 오고 있다;


        “ [요 15:20-21]  (20)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1)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죽은 사람의 살아남은 예수님의 부활에 기초한다. 예수님이 행하신 초기의 일들은 이런 위대한 일을 지시한다.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불완전한 세계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물질적 결과를, 즉 타락에 의해서 영향을 받은 세계를 말해주고 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은 병이 든다. 그리고 병은 죽음을 향한 전조이다. 육체의 기능의 완전한 파멸을 말한다. 병에서부터 한 사람을 회복시키는 것은 위대한 회복, 부활체로서 온전히 건강한 육체의 회복을 지시한다. 그리고 이런 온전한 회복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다. 치유는 또한 죄로부터 고침에 대한 일종의 은유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용서한다; 성령을 통해서 그는 죄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삶을 살아갈 능력을 우리들에게 준다( 롬 6:7,14)


        게다가,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자유는 새로운 하늘과 땅에서 우리가 가질 온전한 자유를 미리 맛보는 것이다. 요 5장에서 병자의 치유는 이런 완전함에 대한 그림자로서 작동을 한다. 그리스도는 그의 부활로 인해서 우리들을 이런 완전함으로 이끌 것이다.


F. 새로운 창조라는 주제

        요 5장에서 치유는 새로운 창조의 좀더 큰 패턴의 일부분이다. 예수님의 사역은 새로운 창조를 가져온 하나님 왕국의 사역이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최종적인 형태로서, 새로운 창조는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담고 있음을 계 21;1절은 말한다. 그러나 또한 새로운 창조는 예비적인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영원한 생명은 우리 시간안에서 시간한다. 새로운 영적 생명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각 개인에게 오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명이 지금 시작한다. 그리고 후에 완전하게 된다. 지금 개시하였지만, 새하늘과 새땅에서 절정에 이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아들로서 입양이 되었다( 롬 8:15-17, 갈 4:5-7, 엡 1:5). 이런 입양은 창조가 새롭게 될 ,미래에 온전히 실현될 것이다(롬 8:23).

        
        개신된 삶과 절정에 이른 삶 사이의 관점에서보면, 우리는 신약에서 새로운 창조의 많은 표적들을 볼 수 있다. 요 3장에서 기술된 거듭난다는 것은 일종의 새로운 창조이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의 취임상태를 나타낸다. 나사로의 부활은 육체의 최종적인 부활을 예상케 한다. 그리고 그의 최종적 부활은 새하늘과 새땅의 창조라는 좀더 큰 그림의 부분이다( 계 21;1). 육체의 부활은 새로운 창조의 절정적인 형태이다.


        종말론이라는 단어는 마지막 일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위한 문구입니다. 좁은 의미에서, 종말론은 그리스도의 재림, 그리고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가르침과 관계됩니다. 그러나 “ 마지막 일”에 대한 구약 예언의 성취에 속한 어떤 사건도 넓은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 동안에 하나님 왕국의 도래는 이런 성취의 시작이다. 따라서 종말론에 속한다. 이것은 개시된 종말론이다. 다른 한편으로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육체의 부활은 성취된 종말론에 속한다.


        우리는 요 9장에서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에서 개시된 종말론의 패턴을 볼 수 있다. 영적 시각의 회복은 영적 시간의 개시된 형태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그의 얼굴을 볼 최종적인 시각 회복을 예기한다( 계 22:4). 오늘날 알려진 것보다도 더 온전한 방식으로서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 계 21:23, 22:5).


        우리는 5,000명을 먹인 기적을 통해서 개시된 그리고 성취된 새로운 창조의 새로운 패턴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떡임을 보여주기 위한 기적을 일으켰다. 그러나 우리가 그로부터 지금 받은 음식은 또한 완전하게 제공될 절정을 기대하게 한다. 우리는 어린 양의 결혼 잔치를 기대한다( 계 19:9).



G. 포도주로 바뀐 물

        다음으로 포도주로 바뀐 물의 기적을 고려해보자. 이 기적도 또한 표적이다;

[요 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이 기적이 어떤 식으로 표적이 되는 것인가?  이 기적이 의미는 우리가 지금까지 고려했던 기적보다는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여러 가지 암시가 있다. 11절은 예수님이 그의 영광을 나타냈다고 말한다. 영광이라는 단어는 요한 복음에서 나중에 토의될 것과 연결된다. 아버지와 아들의 영광은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통해서 보여지고 있다( 요 13:31-32). 이야기 초기에, 예수님은 그릐 어머니에게 말한다, “ 내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다(요 2:4)” 이것은 어머니에게 거절을 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요청에 응답을 하였다. “ 나의 때”에 대한 말은 암호와 같다.그러나 의문중에 있는 “ 때”는 분명하게 그의 십자가와 부활의 시간임을 요한 복음이 진행되면서 더욱 분명해진다.


[요 12:2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요 12:27-28]   (27)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28)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7:1]   (1)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컨대, 그의 “때”가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 동안에 아직 오지 않았지만, 결국은 올 것이라는 것을 요 2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왔을 때에, 잔치를 위한 포도주를 제공할 것을 그에게 요청하는 것은 합당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왕국에서의 잔치가 될 것이다. 이 잔치는 유대인 명절을 성취한다. 그리고 사 25:6절에서 종말론적인 약속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사 25: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사실, 포도주는 우리로 하여금 마시도록 주어진 그의 피이다( 요 6:53-56). 결혼을 위한 포도주의 준비는 더 큰 잔치를 위한 준비를 기대하게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에서 그것을 성취했다.


        가나에서의 혼인 잔치 기적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의 이런 연결은 다른 더욱 신비적인 것과 연결됨으로서 강화된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기 전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를 위해서 거기에는 6개의 돌항아리에 담겨져 있었다. 물은 구약에 속한 유대인의 정결 의식과 상징적인 연결이 되어 있다. 이것은 종말론적 구원에서 하나님이 가지고 올 참된 정결의 예표이다. 가나의 기적에서 상징주의는 예표와 그림자인인 구약의 수준에서부터 성취의 신약의 수준으로 상징적인 전환하였다는 표시를 담고 있다.그리고 어떻게 성취가 이루어졌는가? 그리스도 메시야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가 물을 포도주로 바꾼 것처럼, 그는 한 세대로부터 다른 세대로 전체 역사적인 과정을 바꾸었다. 구약에서 그림자인 물이 신약에서 성취의 “포도주”가 되었다.


        요한복음 1장은 세례요한의 사역에 대한 설명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이 설명은 또한 관계가 있다. 요한은 물로서 세례를 주었다. 물은 정결을 의미한다.그러나 이것은 오직 표적이다. 그것은 뒤에 오는 좀더 큰 어떤 것을 지시한다;


[요 1:26-27]  (26)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요 1:33]   (33)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세례요한은 전체 구약 제도의 마지막 주자이다. 예수님 안에 있든 하나님의 종말적인 왕국의 여명에 서 있다. 그것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례요한이 했던 일들이 예수님께서 가지고 올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갈릴리 가나에서의 기적은 상징적으로 이런 전환의 전조가 된다. 구약 선지자의 마지막으로서 요한을 가르키며, 하나님 왕국의 잔치로 나아가게 한다. 이 잔치는 구약의 연속 또는 첨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약을 기적적으로 변형시킴으로서 발생한다.


        물이 포도주로 바뀐 기적은 개시된 종말과 완성된 종말론을 위한 의미를 가진다. 예수님에 의한 종말론적 포도주의 제공은 “그의 시간,” “ 그의 십자가와 부활의 시간”과 함께 시작됐다. 포도주는 그의 피이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영생을 가진다. 포도주의 제공은 개시된 종말론의 형태이다. 동시에, 우리는 새하늘과 새 땅에서 영생의 최종적인 형태, 그리고 최종적인 결혼 잔치, 즉 어린양의 혼인 잔치( 계 19:9)를 기대한. 최종적인 잔치는 종말론을 절정으로 인나아가게 한다.

    

H. 신하의 아들의 치유와 물위를 걸으심

         요한복음에 2개의 기적이 더 있다. 이 기적에 대해서는 짧게 다루겠다. 하나는 왕의 신하의 칭유이며 요 4:46-54절에 있다. 숨김없이 요한은 이것은 표적이며 가나에 일어난 표적과 연결이 된다고 말한다.


[요 4: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요 4: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신하의 아들은 죽음 직전까지 갔다고 치유를 받았다. 죽음 직전에서의 치유는 분명히 예수님이 성취한 죽음에 대한 온전한 승리의 그림자이다. 그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에, 예수님은 실제로 죽었다; 그는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니다.

        보통, 신하의 아들을 치유하는 기적에서의 의미는 개시된 종말론과 완성된 종말론을 담고 있다. 개시된 종말론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일어났을 때에 왔다. 완성된 종말론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일어날때에 올 것이다. 즉 더 이상 죽음의 지배를 받지 않는 부활된 육체를 가질 때이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이 물 위를 걷는 기적을 갖고 있다.요 6:16-21절에 있다. 5천명에게 먹이는 기적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요한은 분리된 논평을 제공하지 않는다. 언듯보면, 요 6:25-65절에서 생명의 떡에 대한 예수님의 강화(講話)는 5,000명을 제공하는 것만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님과의 연합을 통해서 영생을 가졌음을 말했다. 예수님은 영벌로부터 사람을 구출했다. 물은 죽음의 상징의 될 수 있다. 사람은 물에 빠져 죽기 때문이다. 물에 빠지는 것은 무덤이라는 지하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바다속으로 요나가  3일을 있었다는 것은 죽음과 부활에 알맞은 상징이 된다.


[마 12: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물위를 걷는 것은 자연을 지배하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죽음을 지배하는 것에 대한 적당한 상징이다. 이런 식으로 이것은 그의 부활을 예표한다. 그의 부활은 개시된 종말론을 구성한다. 또한 그는 우리를 위한 새 생명을 그의 성령을 통해서 제공한다. 완성된 종말론은 신자의 몸의 부활과 함께 온다.



요약 (Summary)

        그러므로, 요한 복음에서 보여지는 각각의 기적들은 그리스도 부활이라는 위대한 기적의 그림자이며 그리고 기대하게 한다.( 그림 3.6 참조)



## 그림 3.6 ##



p.s. "The Miracles of Jesus" BY  Vern S. Poythress가 쓴 제 3 장 Illustrative Micrcles from the Gospel of John" p. 33-46을 번역한 것입니다. 오류를 지적해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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