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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 강 하나님의 가족
임 바울  2016-04-18 19:03:38, 조회 : 1,338, 추천 : 241

                                                          제 17 강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입양되는 것은 나의 많은 필요와 더 나은 가족의 삶 그리고 더  나은 아버지와 딸과의 관계에 대한 나의 욕망을 성취해주었다. 불신자의 가족에서 자라난 나는 복음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고등학교 때 기독교인이 되었을 때에, 내가 새로운 가족을 가졌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형제자매가 된 기독교인들은 서로에 대해서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내가 알고 있는 참된 가족이었다. 입양된 딸로서, 하나님은 나의 가족이 갖고 있는 사랑의 부족으로 일어난 죄들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되기 전에, 나는 내 자신의 미래의 가족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이혼, 고통, 무시 등의 결과를 예상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내 가족에게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본질적인 계획이 무엇인가를 하나님은 나에게 보여주었다. 하나님은 자유롭게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그의 가족을 사랑한다. 이것이 나에게, 입양된 딸에게 본이 되었다. 나의 형제와 나의 자매와 미래에 있을 자녀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알려주었다.”


        자라면서 겪었던 우리들의 경험이 제니퍼처럼 실망일 수도 있고, 또는 보람찬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참된 의미를 갖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 가족이다. 예정된 은혜에 의해서,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이다. 구속사역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들의 구원자이면서 또한 우리들의 형제이다. 결과적으로, 그 안에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고 유일한 하나님 아들의 형제들이다. 총체적으로 보면, 신자들은 하나님의 가족이다. 교회, 세례, 성찬 그리고 교회의 징계를 위한 이 진리의 의미들을 탐구해보자.


        ⓐ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 세례와 성찬은 가족 예식이다.
        ⓒ 교회의 징계는 가족 개선(改善)이다.


1. 교회는 하나님 가족이다.
        

        성경은 교회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설명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 새로운 피조물의 구성요소, 등등으로 보여준다. 입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교회는 어떤 모습인가?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가르친 것처럼,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전에 바울의 독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다. 대신에 그들은 진노의 자녀였다(엡 2:3). 그때에 그들의 상태는 다음과 같았다.

엡 2:12

그러나 그들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상태일까?

엡 2:13

믿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엡 2:18

모든 신자들은 아버지에게 나아갈 수 있다. 추가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집의 회원들이다.

엡 2:19-20

        놀랄만한 일이다. 전에 진노의 자녀들이 이제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 가족에게 속한다. 바로 이것이 바울이 그들을 권면하는 이유이다.

엡 5:1


        바울의 말은 1세기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20세기에 살고 있는 신자들을 아름답게 묘사해준다. 우리는 귀한 사랑을 받는 자녀들이다. 사도는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요청한다. 우리는 한 하나님과 모든 신자의 아버지에게 속하였기 때문에 가족의 모습이 보여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라는 사실은 교회의 삶에 영향을 준다. 가족은 연합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엡 4:4-6


        인류 진보의 신봉자들은 미국의 인구가 변화를 겪고 있다고 말한다. 조지 바나 리서치의 예견이 맞아 들어갔다; “젊고, 활기찬 중산층이 중심이 된 미국의 시대는 사라졌다; 미국은 점점 어두워져간다. 경제 후퇴가 활성화되고 있다.” 알렌 모휘니(Allen Mawhinney)는 말하기를, “이것은 차이점이 점점 뚜렷해지고 가치관의 충돌이 눈에 보이게 나타날 것을 의미한다. 차이점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이 증가하고 우리들의 삶의 방식에 위협이 되는 미움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라고 바르게 예견하였다.


        과거 몇 년 동안 일어난 사건들을 조사해보면 알렌 모휘니의 염려가 적중하였음을 보여준다. 다른 것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이 미국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 이미 있는 사람들의 이런 변화의 결과를 능히 다룰 수 있는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은 이 세상 앞에서 하나님 가족의 연합을 보여주어야 한다. 교회는 연합된 하나님의 가족이다.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교회는 두려움과 미움에 대한 해결책을 갖고 있다. 많은 교회들이 이 문제를 다루는 일에 부족하지만, 하나님 가족의 연합은 그들의 부모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차이점에 대한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다.


        하나님의 가족은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환영해야 한다.

계 5:9


        어느 한 날에 피로 우리들을 구속한 어린 양을 찬양하는 방대한 찬양 팀이 하나님 보좌 주위에 모일 것이다. 우리가 영생을 위한 노래를 지금 이 땅에서 연습하는 것을 본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이것은 교회와 그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이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고, 그의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너무나 자주 미국의 삶을 특징짓는 편견, 심지어 교회의 삶에서도 보이는 편견을 없애는 일을 해야 한다. 우리들의 세대는 외로움의 세대이다. 하나님의 가족은 소외되고 외로운 현대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입양된 하나님의 가족은 독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가족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형제를 갖고 있다. 그는 신실하고, 가깝고 믿을 수 있는 친구이다. 우리들의 연약함을 잘 알고 있으며,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이다.

히 4:15-16


        덧붙여,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를 갖고 있다. 알렌 모휘니는 쓰기를, “유다를 제외한 모든 신약의 저자들은 동료 기독교인들을 형제로서 언급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다른 신자들을 말할 때에 바울이 즐겨 쓰던 단어이다. 그는 133번이나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어떤 의미도 담지 않고 단어만을 나열한 바울이 아니다. 깊은 사랑을 담아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이다.

벧전 1:22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는 외로움이라는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피난처로 사용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지역교회는 이혼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교제를 제공해야 한다. 아버지는 그의 가족을 외로운 사람들과 활발한 교제를 위해서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자신의 향락을 추구하는 대신에, 하나님과 동료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바쳐서 그들에게 만족과 행복을 주는 그들은 얼마나 복된 사람들인가?


2. 세례와 성찬은 가족 예식이다.


        입양의 관점에서 보면, 교회의 의식(儀式)들은 신적으로 주어진 하나님 가족의 예식들이다. 기독교 세례와 주님의 성찬은 가족 행사이다.


        A. 기독교 세례

          세례는 가족이 되는 것을 환영하는 첫 번째 의식이다. 우리의 맏형이 원형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지만, 그가 세례를 받는 것은 아버지의 의지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아버지는 “이는 내 아들이고,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라고 선언을 하였다(마 3:17). 물론, 예수님은 마귀의 자식이 아니다. 구속될 필요가 없다. 대신에, 그는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 인간이 된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요컨대, 세례를 통해서  아버지는 우리들을 “나의 사랑하는 자녀”라고 선포를 한다. 갈 3:26-27절은 이것을 뒷받침한다.

갈 3:26-27


        이 구절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입양이 되었음을 가르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라고 사도 바울이 말했을 때에 우리의 입양을 세례와 연결을 시켰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다”라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위한 비유적인 표현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몸을 가리기 위해서 옷을 입는 것처럼, 세례를 통해서 성도들은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덮는 것이다. 옷이 몸에 붙어있는 것처럼, 그들은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가깝다. 기독교 세례는 우리들을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을 시킨다는 것을 여기에서 가르친다.


        물론 세례를 받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에 속한 수백만 명의 남녀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세례를 받아왔다. 많은 구약의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았던 것처럼, 불신속에서 받은 세례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할지라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세례를 통해서 자신의 약속을 성취한다. 갈 3:26-27절에 의하면,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며 , 그것은 입양의 한 요소이다. 이것은 두 구절을 연결하는 접속사인 “for (영어 성경은 for라는 단어가 있지만 한글 성경은 번역을 하지 않았다)”라는 단어의 의미이다, “you are all sons of God through faith in Christ Jesus, for all of you who were baptized into Christ have clothed yourselves with Christ.” 세례는 예수와의 연합을 의미한다. 그리고 입양은 그 연합 속에 포함된다. 따라서 세례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들어가는 입양을 의미하는 예식으로 보는 것이 알맞다.


        교회 생활을 위해서 이것의 함축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 가족으로 들어가는 최초의 예식으로서 세례를 이해하는 것은 이 의식을 따라다니는 불필요한 신비를 없애는 데에 도움이 된다. 물론 세례와 성찬에는 신비가 있다. 죄인들의 삶속에 생명을 창조하기 위해서 선포된 말씀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용하시는가를 나에게 설명해준다. 그리고 그의 아들에게 우리들을 연합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그 연합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말씀인 세례와 성찬을 그가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나는 여러분들에게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해부족 때문에 이 의식에 따라다니는 많은 불필요한 신비들이 있다. 세례와 성찬의 의미에 대해서 간단한 교훈을 필요로 한다.


        세례를 가족 의식으로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세례를 받은 사람들을 구원시킴으로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과 연합을 시킬 것을 신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약속을 하였다. 교회 회원들이 세례를 받은 아이를 양육시키는 일에 부모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였을 때에, 이것은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약속을 하는 것이다.


        내 친구 칼씨(Karsee)는 이것을 잘 표현하였다;


        “14년 전에, 내 부모는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그 때에 나는 11살이었고, 마음이 벅찼다. 함께 놀 형제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가! 후에 우리는 ‘Wednesday's Child’라는 TV 프로그램에 갈 기회가 있었다. 내 동생이 태어났을 때에 그 프로그램에 나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입양 후에도 계속해서 하기를 원하였기 때문이다. 사회자가 인터뷰를 할 때에 나의 아버지가 한 말들이 많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특별하게 기억이 난다. 아이를 보았을 때에 첫 번째 한 것이 무엇이라고 물었을 때에, 아버지는 아이를 보자마자 “그를 사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세례를 받았을 때에, 우리 하늘의 아버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모들과, 그의 형제자매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도 너를 사랑할 것이다. 네가 믿음의 가족으로 들어온 것을 우리 모두는 환영한다.” 환영한다! 아이여! 너는 여기에 속해있다. 우리 모두는 너의 새로운 가족이다.


        과거에, 나의 아내 Mary Pat과 나는 주를 위한 십대 자녀를 양육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는 용기가 있었지만, 때때로 기독교 부모로서 실패자라고 느끼기도 하였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그 아이를 붙잡을 수 있는 계속되는 위로와 힘의 원천은 우리의 아버지가 우리와 자녀들에게 한 언약 때문이다. 부모로서 우리들이 한 일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세례를 받은 각 자녀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언약에 의지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우리의 궁극적인 확신은 우리들의 신실함과 성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신실함과 능력에 의존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들이 내 자녀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권면해주고, 후원해주는 것에 깊은 감사와 가족애를 느낀다.


        B. 주의 성찬


          세례처럼, 성찬도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하나님의 가족에게 주신 예식이다. 입양의 관점에서 보면, 주님의 성찬은 가족 교제 식사이다. 이것은 성찬 제정에 대한 바울의 말에 의해서 입증된다. 주님의 성찬을 남용했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의 어떤 사람들은 “[고전 11:30]   (30)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즉 죽은 자도) 적지 아니하니라”라고 하였다. 바울은 그들에 대해서 말한다, “ [고전 11:32]   (32)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의 손에 의해서 징계를 받은 고린도 교인들은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징계를 받았다. 이 징계로 죽었던 사람들은 세상과 함께 저주를 받지는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그의 자녀들에게 엄한 사랑을 보였지만, 불신자에게 주는 식으로 그들을 처벌하지는 않는다. 그의 가족 구성원을 사랑과 친절함을 가지고 다룬다. 그들이 불쾌감을 주고 아버지를 모욕했지만, 아버지는 그들을 가족에서 제외시키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의 일시적인 심판과 아마도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하지만, 우리 아버지의 팔 안에서 안전하다.


        고전 11장에서, 바울은 가족이라는 관점에서 주님의 만찬을 본다. 즉 사도 바울은 신자가 성찬을 남용했을 때에 부모로서 징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방식에서 유출할 수가 있다:

고전 11:33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이다. 하나님 가족에 속했다는 것은 주님의 만찬에 참석한다는 것이 증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성찬에 참여하는 것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세례의 경우에서처럼, 가족이라는 관점은 성찬에서 잘못된 신비 개념을 없앨 수가 있다. 확실히 신비는 존재한다. 하나님의 오른 편에 계신 분이, 어떻게 성찬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참여를 하는가를 우리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리스도는 참여하고 그의 백성들에게 은혜와 도움을 준다. 가족의 식사로서 주님의 만찬을 다룸으로서 그의 백성들은 혜택을 받는다. 아버지는 이 식사에 참여를 해서 그의 백성들에게 복과 사랑을 나누어준다. 아버지의 아들인 맏형 그리스도도 여기에 참여를 한다. 우리들에게 이 약속을 하신 분이 그리스도 자신이다.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고, 우리를 강하게 하고, 그에게 연합을 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 빵과 포도주로 그의 피와 그의 살을 우리들에게 준다. 가족 식사를 위해서 식탁에 가족으로서 앉아있다. 함께 우리 자신을 조사하고,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식사에 참여를 한다. 형제자매로서, 우리는 맏형과 함께 교제를 한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만찬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 때문에 미사에서 멀어진 중세기 말 로마 가톨릭과는 달리,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식탁에 참여하려고 노력을 한다. 하나님 가족의 가족 식탁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우리는 거기에 속해있다. 이것은 완전하게 된 가족( 이미 천국에 있는 가족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미 상이 주어진 그들은 더 이상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이미 주님 성찬의 목적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천국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용서를 받고 그리고 아버지 가족으로 입양된 가족은 주님의 만찬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용서와 , 재개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우리 아버지와 그의 유일하신 아들은 임재와 양자의 영의 사역에 의해서 그들이 약속한 것을 주신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그들의 부모와 형제들과 함께 모여 있는 저녁 식사에 참여하기를 고대하는 것처럼 주님의 만찬을 기대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도와주기를 원한다.


3. 교회 징계는 가족의 개선(改善)이다.


        또한 교회 징계는 , 성경이 가르치는 것처럼, 입양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교회에서 징계권을 사용하는 중요성을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하나님 가족의 언어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빠른 화목이 하나님이 뜻임을 예수님이 말씀하셨을 때에 이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마 5:23-24


        나한테 잘못된 것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서 예수님이 지침을 주었을 때에, 표현방식도 마찬가지이다.

마 18:15


        교회 징계에 대해서 그의 제자들을 가르칠 때에 주님이 가족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분명히, 징계는 하나님 가족의 중요한 일이다. 그 안에서, 아버지는 교회의 장로들을 통해서 그의 자녀들을 교정한다.


        교회의 징계를 입양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교회 회원을 다루는 일에 많은 도움을 준다. 모든 교회 회원들은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장로들의 행정 사무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아주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들을 교정시킬 때에 불만족한 십대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대신에 하나님이 세운 불완전한 장로들을 통해서 징계를 하고 있지만 , 아버지의 징계로서 받아들임으로서 기꺼이 복종을 해야 한다.


        교회 징계를 가족 교정으로 보는 것은 징계를 주는 사람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다. 우리가 종교개혁에서 배운 것처럼,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를 구분하는 교회의 표지가 있다. 순수한 말씀 전파, 성례 집행 그리고 성실한 교회의 징계 실행이다. 불행하게도, 교회의 세 번째 표지는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다.


        징계를 실행하는 교회라 할지라도 남용할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심한 징계를 행함으로서 부러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교회의 징계를 하나님 가족 안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보는 것은 남용을 막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장로들이 징계의 사건을 다루기 위해서 모여서 기도할 때에, 그들은 신앙을 고백한 하나님의 가족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갈 6:1-2절의 영을 가지고 가족 교정을 실행해야 한다.

갈 6:1-2


        “온유한 심령으로 범죄한 자를 바로 잡고”는 그들 자신의 아버지와 그들의 맏형을 대표하는 장로들이 그리스 도안에 있는 형제자매를 교정할 때에 잊지 말아야 할 단어이다.


결론


    요한 일서 3:1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요일 3:1]  (1)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우리의 은혜로운 아버지는 우리를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특별한 가족이 되게 하였다. 이런 가족의 모습이 교회이다. 교회는 가족의 구성으로서 우리가 속해야 하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곳이다.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봉사하는 일을 배우는 곳이다.


        교회의 의식들을 새롭게 감사해야 한다. 세례는 아버지가 새로운 가족들을 자기의 가족으로 입양하는 가족 의례이다. 주님의 만찬은 가족 교제 식사이다. 사역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의 손으로부터 주어지는 식탁에 참여하고 영적인 영양분을 받는 자리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형제자매를 섬기는 곳이다.


        교회 징계는 새로운 의미를 가져야 한다. 가족의 교정으로서 보아야 한다. 장로들은 온유함과 친절함과 사랑을 가지고 그들 자신의 가족에게 하는 것처럼 징계권을 사용해야 한다. 교회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가족들은 장로의 직분을 어렵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겸손하게 장로들의 지시를 받음으로서,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가족 징계를 하고 있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과 양자의 영이 우리들의 모든 삶에 양자의 교리를 적용시키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교회적으로.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에게만 영광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P.S. " Adopted by God", Robert A. Peterson, P& R  제 11 장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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