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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 강 입양의 확신
임 바울  2016-04-11 19:48:32, 조회 : 1,438, 추천 : 227

                                                         제 10 장
                                                       입양의 확신


        “얼마 전에, 신문기사에서 Texas의 Uncertain 시의 거주자들이 Uncertain 시에 사람이 살 것인지 안 살 것인지에 대해서 더 이상 의문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런 의문은 Uncertain 시에서 행해진 선거를 판사 C. L. Ray가 공식적으로 발표했기 때문에, 유효하다고 결정했다. 58대 11로, Uncertain 시는 만들어졌다. Caddo Lake 북동쪽에 위치에 있다. 어떤 사람이 Uncertain 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의 확실성은 더 이상 의문시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행을 할 때에 그리고 거주지를 명시하는 서류에, 이 도시의 거주민들은 반드시 “uncertain”이라고 써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모두는 Uncertain 시의 시민이 아니지만, ‘Full Assurance of Faith(완전한 확신)’라고 불리는 도시에 아주 저주받은 이방인으로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인정해야 한다. 구원에 대한 우리 소망의 확신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하나님 은혜의 확신을 우리는 각자 어떻게 가질 수가 있는가? 이 장은 이런 질문들에 답하려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최종적인 구원을 확신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세 가지 방식으로 확신을 시킨다.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성령의 증거를 주심으로서, 우리들의 삶을 바꾸어주심으로서. 세 가지 똑같은 방식으로 성도들에게 입양의 확신을 주신다. 아버지는 그들의 자녀들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준다;


        ⓐ 입양의 약속
        ⓑ 양자의 영
        ⓒ 가족의 유사성(類似性)


1. 입양의 약속


        때때로, 기독교인들은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혼동을 한다. 영적 경험을 통해서 확신을 찾는 사람도 있다. 영생의 확신을 얻으려는 소망으로 그들의 마음을 면밀히 조사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들의 삶을 강조한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을 찾는 가장 확실한 장소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가 우리를 입양했다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말한다. 바울은 각 성도들에게 이것을 확신시킨다.

갈 4:7


        우리는 더 이상의 죄의 종이 아니다.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것을 선포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줄 믿는다.


        하나님 아버지의 입양의 약속은 성경에서 두 가지 방법으로 표현되었다. 때때로 인간의 책임감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입양은 믿음이라는 수단을 통해서이다.

갈 3:16

        여기에서 하나님은 한 가지 사실을 밝혀준다. 그의 아들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똑같은 진리가 요한복음에서도 반복된다.

요 1:12


        나오미(Naomi)는 이 진리가 그의 영혼 깊숙이 닻을 내리도록 하였다;

        “내가 하나님에 의해서 입양이 되었다는 것을 앎으로 얻어진 개인적인 유익은 안정감이다. 나의 신분은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누구인지를 나는 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나는 그의 가족의 회원이 되었다. 나는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안다. 나는 하나님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그는 나의 아버지이다.”


        다른 때에는, 입양의 확신을 든든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주권을 가지고 표현된다. 입양은 그의 백성을 하나님께서 미리 선택하심에 근거를 둔다.

엡 1:4-5


        하나님이 우리들을 입양하도록 미리 선택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신뢰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양자의 아름다운 약속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질문을 한다, “우리가 구원으로 예정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바울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고 있다.

살전 1:4-5


        그들이 그리스도를 신뢰한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하나님이 구원을 위해서 선택을 하였다는 것을 안다. 성경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을 알기를 노력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이것은 무용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가르킨다. 그들이 복음에서 제시하는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사실에 의해서 선택이 되었음을 우리는 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는 아들 됨의 확신을 강화시킨다.

엡 1:4-5


        궁극적으로, 우리의 입양은 하나님의 사랑, 기쁨, 그리고 뜻에 달려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 아버지의 전능하신 팔에 의존할 때에 안도감을 가진다. 우리가 몇 살이던 지간에, 우리 모두는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가서 그분 안에서 만족감을 가진다.


        하나님의 계획 또는 인간의 책임이 언급되었던 지간에, 결과는 같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선포한다. 확신의 튼튼한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많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Wes는 확신이 부족함으로서 불안감을 가졌다. 그의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위에 세워져야 한다.


        “나는 아들이다. 그 때문에 나는  나보다 위대하신 분, 긍휼이 많으시고 이해를 잘 해주시는 아버지를 갖고 있다. 나의 정체성은 그 불안에 있다. 상처와 결함을 이길 수 있는 신분이다. 그래서 나는 안전하고 든든하다. 나는 친구들과 반대자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나를 비난하지 않는 아버지를 갖고 있음을 나는 안다.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에, 내가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은 하나님 말씀의 확실한 약속에 근거한다. 나의 신앙과 나의 삶 자체를 강화시켜주는 것은 양자 교리에 대한 성경 말씀이다.”


2. 양자의 영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가 아들 됨을 확신시키는 주요 방법은 우리를 입양했다는 성경의 약속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구원의 약속과 함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었다. 복음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의 소망, 미래 영광의 소망을 주었다.

롬 5:5


        양자의 영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함을 우리 안에서 확신시켜준다. 이 주제의 가장 중요한 구절은 로마서이다.

롬 8:15-16


        양자의 영이 우리를 자유롭게 했음을 유의해야 한다. 전에 배운 것처럼, 진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해주는 영이다.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는 것은 그에 의해서이다.


        현재 우리가 다루고 있는 주제를 언급하는 구절은 성령의 사역이다. 성령은 입양의 메시지를 믿게 할 뿐만 아니라. 그 메시지를 참임을 알게 한다.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자녀임을 증명한다고 할 때에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녀임을 성령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주로, 우리가 입양되었음을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면 안 된다. 우리의 입양됨은 내적으로도 증거를 받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성령 하나님에게 맡겼다. 양자의 영은 우리의 마음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보증케 해준다. 우리에게 하신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증거이다. Beth가 이 진리에서 얻게 된 위로를 입증해주고 있다;

        “고등학교 이후로, 나는 좌절감에 몹시 괴로워했다. 이번 여름과 겨울은 이 괴로움이 조금 더 길게 동안 지속되었다. 직장을 옮겼다. 하나님이 구원을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하는가에 대한 연구로 나의 마음은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내가 최근에 연구하는 교리 중에서, 입양은 틀림없이 내가 좋아하는 주제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상속자라는 성령의 참된 증거를 경험했다. 이 때문에 나는 하늘의 아버지를 찬양한다.”


        Beth는 은혜의 생수를 흠뻑 마신 것처럼 보인다. 말씀과 성령으로 입양의 확신을 받았다. 우리의 영과 함께하는 성령의 증거에 대해서 할 말이 더 있는가? 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성령은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초자연적으로, 개인적으로 그리고 신비하게 확신을 준다. 여기에 사용되는 형용사는 주목할 필요할 필요가 있다.


        양자의 영은 개인적으로 우리에게 확신을 준다. 매우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이 증거는 복음을 믿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확실히, 성령의 증거는 복음을 믿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그러나 복음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추가적인 증거이다. 성령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아들 됨을 증거하고 또한 우리 안에서 성령이 증거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우리의 마음 깊숙이 심어주시는 분이 성령이다. 성령은 우리의 성격, 삶, 환경 등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고, 우리의 자녀임을 다정하게 증명해준다.


        양자의 영은 초자연적으로 우리에게 확신을 준다. 확신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 하나님만이 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정기간 기도하고, 성경 읽고, 찬양을 하면 자동적으로 딸려 오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창조하고, 부활을 주시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사역이다. 우리가 생명을 창조할 수 없는 것처럼, 성령의 증거를 다른 사람에게 주지 못한다. 우리가 무덤에서 죽은 자를 살려줄 수 없는 것처럼, 이 증거를 만드는 일에 우리들은 무력하다. 마음에 확신을 주는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업이다. 그리고 이런 환상적인 일을 성령이 하신다. 그의 성령에 의해서, 그들이 하나님에게 속하였음을 알려주는 일을 그 분 자신이 하신다.


        양자의 영은 개인적으로 우리에게 확신을 준다. 그리스도 안에서 각 개인은 성령의 내적 증거를 가진다. 이 확신은 영적 거장들에게만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와 같은 하찮은 사람에게도 성령님께서는 부여하신다.


        많은 영적인 일에 성공할 때에도 경험할 수 있지만, 대부분 영적인 실패 속에서 이런 확신을 가질 때가 많다. 죄 때문에 괴로워하고, 인내의 한계에 도달할 때에, 내 안에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 것이다. 나는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라는 성령의 조그마한 음성을 듣는다.


        그런 때에,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받을  가치가 없다는 것이 진리이다. 바로 이것이 은혜의 모든 것이다. 성령의 필요와 능력을 소원하도록 이끄는 것은 우리의 실패를 통해서이다. 하나님은 선하신 아버지이다.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고 징계한다. 우리를 서로 다르게 만드셨다. 각 개인의 필요에 맞게 우리를 다루신다. 필요한 한 가지는 확신이고, 아버지는 우리 안에서 성령을 두심으로서 우리가 그의 것이고, 그가 우리의 것임을 확신시킨다.


        양자의 영은 신비스럽게 우리에게 확신을 준다. 하나님의 사역과 길에 대해서 많은 이해하는 것같이 행동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이런 영적 교만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있어서 안 된다. 우리는 특별히 성령 하나님의 사역과 뜻에 대해서 무지하다.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을 성령께서 어떻게 중생을 시키는가를 누가 과연 설명할 수 있는가? 부패한 사람을 선택해서 성령께서는 어떻게 성도로 만드는 가를 누가 이해할 수 있는가? 어떻게 불신자들을 하나님의 아들과 연합을 시킴으로서 예수님과 함께 있도록 하시는 성령의 일을 누가 이해할 수 있는가? 성령께서 이런 큰 사역을 어떻게 성취하시는가를 우리는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단지 그의 사역을 보지만, 우리는 전적으로 예상, 통제, 이해할 수 없다.


        입양도 마찬가지이다. 죄의 종이 ‘아바, 아버지- 구원 얻는 믿음의 첫 번째 음성-’부르짖을 때에 우리는 성령 사역의 결과만을 본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께서 사람들을 어떻게 그 상태까지 이끄는가를 정확하게 추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내적 증거를 믿는다. 성경은 그 실체를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에서 체험을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성령의 모든 사역과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고, 능력 밖에 있다. 요약하면, 우리 아버지는 우리보다 더 잘 아신다. 그는 우리에게 매우 은혜로우시며, 우리의 입양을 보장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셨다.


        양자의 영에 의해서 아버지가 얼마나 은혜스럽게 자신을 대했는가에 대한 Phil의 간증을 들어보자;


        “1990년에 나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대학교 목회자로서 보았고,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삶속에는 진정한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부족했다. 매일 아침 나는 위선적인 나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서 보았다. 그때에 나의 아내는 참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나의 진정한 도움은 주님에게서 왔다. 내 자신에 대해서, 나의 신앙에 대해서, 나의 신학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물었다. 1990년 9월 19일에 , 나는 빨간 편지를 잊지를 못한다. 나는 로마서를 연구하고 있었고, 절망 중에 롬 8:16절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정확하게 설명을 할 수 없지만, 나는 그 구절에서 말하려는 내용을 경험했다. 하나님의 영이 내가 그 분의 아들이라는 것을 간증해주었다. 더 놀라운 것은 나의 영도 그 증거에 참여를 하였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였다. 이런 대화는 너무 깊어서 내가 기억하는 것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나는 할 말이 많지 않다. 그러나 이 경험은 나의 모든 세계를 흔들어놓았다. 신학과 방향과 결혼관계, 그리고 소명에 대해서 적극적인 변화의 과정을 겪게 하였다. 아마도 가장 큰 변화는 나의 공적인 삶과 개인적인 삶이 더 나은 조화이다.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


        우리도 Phil의 삶에서 일으킨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영광을 돌린다. 모든 사람이 Phil이 경험한 것들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내 경우에는, 21살에 그리스도에 나아가는 회심 뒤, 첫 해에는 성령의 증거가 극적이지 않았다. 대신에, 매우 은밀한 그리고 미세한 소리였다. 그러나 성령의 증거는 항상 진짜이다. 또한 이것만이 성령의 모든 증거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속하였다는 것을 그의 자녀들에게 확신시켜주는 또 다른 길들이 있기 때문이다.


3. 가족의 유사성(類似性)


        아버지는 우리가 그 분의 아들이 된다는 약속에 의해서 우리 입양의 확신을 준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그의 말씀에서 약속을 하셨다. 이것뿐만 아니라, 양자의 영을 우리들에게 보내주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내적으로 증명케 해주었다. 아버지는 세 번째 방법도 쓰신다. 가족의 유사성을 통해서도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나는 한 여인이 자기 딸의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말하고 그 분이 여인의 아버지를 닮았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그런데 엄마, 나는 입양이 된 아이잖아요!” 이 말에 엄마는 다음과 같이 대꾸를 하였다, “나는 항상 그것을 잊어버린다.” 헌신하는 부모처럼, 하나님도 그의 자녀를 사랑한다. 인간 부모와는 달리, 그는 그의 입양한 자녀들이 가족을 닮아가도록 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우리 아버지는 죄의 종노릇에서 우리들을 해방시켰고 우리들에게 아들이 신분을 주었다(갈 5:4). 결과적으로, 우리들의 성격이 아버지의 성격을 닮아가게 된다. 이 유사성은 이 땅에서는 온전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비슷하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의 삶과 유사하도록 만드신다. 이렇게 함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임을 알려준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신원이 확인될 수 있다. 롬 8:14절의 가르침이다.

롬 8:14


        때때로 이 구절은 많은 오해를 일으킨다. 신적 인도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잠 3:5-6절을 보면 이런 신적 인도함은 성경적인 진리, 가르침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바울이 롬 8:14절에서 성령의 인도함에 대해서 말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인도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기에서 말하는 인도함은 하사관의 인도함이 병장의 인도함과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위 있게 하사관은 자기가 그들을 인도하고자 하는 방양으로 반드시 인도한다. 양자의 영도 똑같은 일을 한다. 권위 있게 하나님의 자녀들을 의와 평강의 길로 인도한다. 그들이 아버지의 뜻을 따르도록 인도한다. 이렇게 하기 때문에, 그들의 신분이 무엇인지를 인식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즉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에게 순종한다. 그들은 그의 길을 가며 그의 명령을 따른다. 즉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되는 방법은 아니다.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된 다음부터,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천부를 닮아가게 된다. 입양의 부모들은 이것을 경험을 통해서 안다.


        “ 내 아들이 입양된 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나를 닮았
으며, 얼마나 비슷하게 아버지처럼 행동을 하는지를 우리들에게 말해준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자랄 때에, 내가 점점 더 그의 성격을 닮아간다는 것을 이해하는 일에 도움을 준다.”


        이 메시지는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많은 주제를 담고 있다. 그러나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이것에 대해서 잘 모른다. 종종 성경은 혜택과 책임을 나란히 배열한다. 바울은 위대한 혜택에 대해서 말한다;

롬 8:17


        아버지에 의해서 입양된 사람은 그의 자녀이고 후사이다. 이것은 위대한 복이다. 아버지에 의해서 입양된 사람들은 그의 아들의 고통에 참여한다. 이것은 우리들의 책임이다.


        롬 8:17절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고통을 당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오해를 하여 왔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그의 은혜에 의해서만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 구절의 의미를 여는 열쇠는 “함께 받는다”라는 반복된 단어에 있다. “우리가 참으로 그의 영광을 나누기 위해서는 고통도 함께 나누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고통과 영광을 나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성도들을 그의 아들과 연합시켰다. 이  영적인 연합 때문에, 우리는 아들의 구속적인 행위에 참여를 한다. 우리는 그와 함께 죽었고, 그와 함께 부활한다. 그리스도와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기독교인의 정상적인 삶이다. 그리스도에 속한다는 것은 지금 겪는 고통과 나중에 있을 영광을 나누는 것을 포함한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통당하는 것은 우리가 가족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한 국면이다. 우리의 형인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했고 , 우리를 위해서 자기를 주었다. 그의 사랑과 자기희생은 우리 구원의 기초이다. 우리가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되었을 때에, 우리는 아들과 연합했고 그의 고통에 참여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큰 형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들어오고 난 다음에, 우리는 그의 고통까지도 함께 나누는 한 가족이 되었다.  


          어떤 사람이 항의를 할 수도 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통을 겪지 않는다. 이것은 수단, 인도네시아, 북한과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위한 것이다.” 나는 이런 항의를 하는 솔직함에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딤후 3:12


        그는 순교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박해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주님과 그의 관심사항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미국에서 불이익을 당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정부에서, 군대에서, 그리고 이웃들에게 이런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것은 모욕, 처벌, 형사소송을 자처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들은 박해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고통을 기대하는 것은 불쾌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믿음의 동기를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통은 아들 됨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는 그의 자녀들의 성격이 부분적인 고통을 통해서 그의 성격과 같아지기를 원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가족의 유사성을 보여주고 확신을 갖게 된다. Hillary의 간증을 들어보자;


        “ 나의 가족들은 주님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이 나의 삶에서 나로 하여금 그분을 닮아가게 하고 죄가 있는 패턴을 따르지 않도록 하기를 소원한다. 가족이 닮아간다는 것은 내가 그 분의 가족이 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결론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세 가지 방식으로 그 분의 자녀 됨을 확신하기를 원하신다. 그는 말씀으로서 우리가 그 분의 자녀임을 알려준다. 그 분은 양자의 영을 우리들의 마음에 쏟아부어준다. 그는 우리를 바꾸어줌으로서 우리가 그 분을 닮아가게 한다. 말씀과 성령과 삶의 변화에 대한 모습은 확신을 강화하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이런 지식은 우리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영향을 미친다. 갑자기 나로 하여금 멈추게 하고 나의 신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제니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입양을 연구해보면 나는 고아처럼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딸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였다는 것을 나에게 보여준다. 필요할 때에 그 분에게 나아가는 것에 실패하였다. 내 자신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처럼 행동을 하였고, 내가 원하지 않고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을 하나님이 나에게 줄 것이라고 두려워하였다. 내 죄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녀 됨을 알려주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는 나의 믿음을 생각나게 하고 나를 향한 끊임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나게 해준다. 그의 사랑은 나로 하여금 그가 나를 만들었던 자녀처럼 행동하게 동기를 부여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우리는 즐겨야 한다. 자녀 됨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온전한 확신을 믿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 아들을 닮아가야 한다. 우리는 입양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그것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운 확신을 찬양해야 한다. 아만다는 이렇게 간증을 하였다.


        “나의 입양을 알면 알수록 내가 오래전에 받아야 했던 어떤 것을 나에게 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잊어버렸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 안간힘을 쓰는 문화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주님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수년 동안 안간힘을 쓰면서, 내가 속한 하나님을 놓치고 있었다. 가족으로서 입양의 그림은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내 가족과 매우 가깝게 지낸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선택했고, 나는 그리스도의 자매이고  그 분 나라의 상속자라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가 그 분의 가족이 되었다는 것은 이 지구에서 나의 가족과 함께 누리는 모든 소중한 것을 뛰어넘는다. 그 안에는 평강이 있다. 나의 신분은 100%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든 그리스도의 사역에 쌓여있다. 나는 나의 신분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바로 그 옆에 있으며 이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매일 기쁘게 살아간다. 그 분이 나의 아버지이고 나는 그 분의 자녀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은 기쁨 중에 기쁨이다. 나는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을 이제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P.S. " Adopted by God", Robert A. Peterson, P& R  제 10 장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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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 4 강 구원의 서정 ; 칭의와 양자    임 바울 2015/12/31 271 1799
3  제 3 강 구원의 서정 : 신앙과 회개    임 바울 2015/12/31 269 1568
2  제 2 강 구원의 서정 : 선택, 부르심 그리고 중생    임 바울 2015/12/31 225 1794
1  제 1 강. 교재소개 및 수업진행 소개. 들어가는 말    임 바울 2015/12/31 26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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