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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되어라 (Adopted by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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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강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는 것
임 바울  2016-04-04 19:26:10, 조회 : 1,422, 추천 : 269

                                                               제 9 장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는 것


        “나의 가족을 생각할 때마다 복 받은 것을 느끼게 된다. 그에게 충성된 사람들에게 후대까지 복을 줄 것을 약속하셨다. 내 가족에게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주님을 생각하지 않았던 날이 없었으며,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던 날이 없었던 것 같다. 바로 이것이 참된 입양의 모습이다.


        내가 16살이 되었을 때에, (그때까지 나는 데이트를 하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반지를 하나 주었다. 그 위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내 이름과 함께 R.W.Y.A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글자는 “너가 누구인지를 항상 기억하라”라는 뜻이다. 또한 갈 2:20절이 새겨져 있었다, “[갈 2:20]   (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는 이 가족의 반지를 “열쇠 반지”라고 불렀다. 나의 두 형제들도 그들이 16살이 되었을 때에 이 반지를 받았다. 이것은 우리 가족 반지이다. 우리가 누구인가를 축하하는 “열쇠 반지 저녁식사”를 가졌다. 결혼반지와 함께 내 손가락에 끼었다. 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자녀임을 상기시켜준다. 나는 하나님에게 속하였고, 나는 나를 위한 그의 온전한 계획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린다는 것은 정말 놀랄 일이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것을 아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Susan의 생생한 단어들은 이 책에 대한 모든 것을 요약하고 있다.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음을 그녀는 알고 있다. 그녀가 받은 복들 중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도록 양육시킨 부모가 최고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기독교인의 삶을 성경은 여러 가지로 설명해준다. 강한 적들을 대항해서 싸우는 영적으로서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마음을 정하고 달려가는 경주로서 비교한다.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로서도 기술되고 있다. 우리가 하늘에 있는 우리 집에 도착할 때까지 순례자의 삶으로도 그려준다. 입양 교리의 관점에서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알아가는 삶이 바로 지구에서의 우리의 인생이다.


        하나님을 하늘의 아버지로서 아는 것이 주는 세 가지 혜택을 조사해보자

        ⓐ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부른다
        ⓑ 아버지의 공급에 의존한다
        ⓒ 아버지의 징계를 받는다


1.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다

        입양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가진다. 예수님과 성도들이 하나님을 부르는 방식을 성경은 이런 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깊은 고뇌가 시작되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말을 하고나서, “내 영혼이 슬픔으로 죽을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머물러 깨어있으라고 하였다(막 14:24). 그러나 세 번이나 그들은 잠에 빠졌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간청을 하였다: “ [막 14:36]   (36)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고난의 시간에, 그가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할 때에, 그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불렀다. 여기서 “헬라어 ”아바“를 아이들이 부르는 " 아빠”라고 하는 것은 적합하지가 않다. 이 단어는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가진 사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아바”라는 단어가 “아빠”라는 의미가 없는가? 물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장성한 자녀들이 부르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은혜에 의해서, 전에 마귀의 자식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게 되었고 , 하나님이 사랑하는 독생자인 예수님처럼 그를 부를 권리를 받았다는 것은 기적적인 일임에 틀림이 없다. 성경은 이것은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로, “ [갈 4:6]   (6)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라고 말한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불렀던 방식으로 하나님을 부르도록 해주었다. 성령은 아버지의 아들의 영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 것처럼 우리들도 부르게 해준다.


        둘째로, 거주하는 성령은 하나님을 우리를 위한 아버지로 부르게 해준다. 바울은 이 진리를 롬 8:15절에서 가르쳐주고 있다; “[롬 8:15]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 우리의 은혜로운 아버지는 두려움에 싸인 우리들을 자유를 가진 자녀로서 대체하였다. 우리가 새롭게 얻은 자유에 대한 증거로서, 그는 우리들에게 양자의 영을 주었다. 양자의 영은 우리를 위해서 두 가지 사역을 한다. 우리가 진심으로 입양이 되었음을 확신시켜준다( 롬 8:16).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성령에 의한 것이다. 양자의 영으로서 그 분의 사역은 예수님처럼 우리로 하여금 우주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한다. 이 진리는 다음과 같은 결과들이 일어나게 한다.


        ① 아버지와의 친밀감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해주는 우리의 영은 입양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의 친밀함을 말해준다.  우리는 아버지를 매우 가깝게 알기에 그의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 허용되었다. 이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이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그는 우리들을 편안하게, 기쁘게, 그의 가족의 구성원으로 느끼게 해주고 있다!


        입양 전문 변호사인 David V. Anderson은 말하기를, “ 내가 도와준 입양가족의 생활을 나를 위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한 하나님 사랑의 그림을 가지고 보기 시작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최근에 있었던 입양 절차를 끝낼 때에, 판사는 그녀의 엄마의 남편이 그녀를 입양하는 것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느냐고  7살 먹은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그녀는 부끄러워 바닥을 보고 있다가, 무엇이 생각났는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기를, "나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바로 이것이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해서 느끼게 하고 말하게 하는 것이다.”  


        성령 사역의 결과로서, 우리는 살아있는 하나님과 친밀함을 즐긴다. Tennyson이라고 부르는 젊은 여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개인적으로 나에게 말하는 입양 교리는 내가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다. 그래서 위대하신 하나님이며 우주의 창조자를 나의 아버지로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오랫동안 갈망했던 친밀감을 준다. 내가 세상에서 거절되고 무시되었을 때에, 그들이 나의 아버지를 모르기 때문에 나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언젠가는 나는 알려질 것이다. 내 아버지의 이름 때문에 나는 유명하게 될 것이다.”


        ②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한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권리가 주는 혜택의 두 번째 이유가 있다.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라고 불렀을 때에 그는, 큰 고통 중에 있었다. 나는 어려움을 당할 때에만 아버지를 부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시기에 아들이 아버지에게 부르짖는 것은 합당하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구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아버지 즉 우리 아버지와 특별한 관계를 가진다. 결과적으로, 어느 때고 아버지에게 나아가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는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가 그에게 오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그분의 임재, 능력, 평강을 필요로 할 때마다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달려오기를 원하신다.


        싱클레어 퍼거슨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하나님의 자녀들은 두려움과 의심으로 상처받고, 부서지고, 넘어질 수 있지만, ‘아버지’라고 부르는 일은 멈추어서는 안 된다. 넘어져서 상처를 받은 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소리쳐야 한다. ‘아버지, 도와주세요!’ 아들 됨의 확신은 신앙이 아주 좋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가장 약하고 가장 못난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출생의 권리이다. 이것이 우리들의 영광이다.”



2. 우리는 아버지의 공급에 의존한다.


        아버지를 아는 것의 혜택은 그가 공급하시는 것을 의존할 수 있다. Tracy와 그녀의 남편은 기독교 선교사로서 주님을 봉사하는 것을 기뻐한다. 동시에, 그들의 생활수준을 조정하였다. 전보다 적은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서 세상적인 편안함을 기꺼이 희생하였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Tracy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현재, 우리는 과거보다 조금 못하게 살고 있다. 이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 물론, 우리는 조금 편안하게 살기를 원한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와 그가 우리들에게 약속한 유산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들을 돌보시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이 세상의 편안함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지금 아버지가 나를 돌보아주시는 것을 즐기고 있다. 미래에 나에게 줄 큰 유산을 바라면서 소망 속에서 살아간다.”


        트레이시는 매우 값진 교훈을 배우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고, 우리는 그의 공급을 의존할 수 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것을 강조했다.

마 6:25-34


        예수님이 하나님을 제자들의 아버지로서 언급한다는 사실이 이 전체 구절의 중요한 점이다. 하늘 아버지가 그의 자녀들을 돌보기 때문에, 삶의 기본적인 것들을 얻는 일에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예수님 메시지의 주안점이다.


        그의 제자들이 그들의 아버지를 신뢰하고 걱정하지 말아야 하는 예수님의 이유는 간단하지만 매우 심오하다. 첫째로, 중요한 면에서부터 시작하여 덜 중요한 면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을 주었다. 즉 생명과 몸이다. 그들에게 이것보다 덜 중요한 것들을 주실 것을 우리는 기대할 수 있다; 그들의 생명을 유지하고 그들의 몸을 유지할 음식이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덜 중요한 면에서부터 더 중요한 면으로 그의 논증을 전개한다. 하늘의 아버지는 중요하지 않는 새를 먹인다. 우리들은 새보다 아버지 하나님에게 더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는 확실히 우리들을 돌볼 것이다.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노래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하늘 아버지가 우리들을 돌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근심은 비생산적이라고 맏형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에게 경고를 한다. “ [마 6:27]   (27)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 반대로, 극도의 염려는 우리들의 삶을 단축할 수 있다.


        네 번째로, 덜 중요한 것에서 더 중요한 것으로 그의 논증을 전개한다. 이번은 예로서 꽃을 사용한다. 산등성에 있는 아름다운 백합화를 생각해보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꽃들보다 더 중요하다. 하나님이 백합화를 아름답게 입혔다면, 더 좋은 것으로 우리들을 입히지 않겠는가?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관대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촉구한다.


        다섯 번째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물질에 사로잡힌 삶을 금지한다. 이것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  [마 6:32]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소유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걱정하는 것은 그들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사는 것과 같다. 물질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은 하늘에 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우리를 감시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걱정 대신에, 성도들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한다.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이 주어질 것이다. 물질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그의 아버지의 뜻을 찾아서 일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을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그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 신실하시다.


        예수님은 유머스러운 말로서 끝을 맺고 있다.“[마 6:34]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우리의 업무는 오늘 아버지를 위해 일하는 것을 염려해야 한다. 매일 매일의 어려움이 있다. 내일의 일을 오늘 걱정하게 되면 우리는 넘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통제 하에 있지도 않는 것을 걱정하는 것을 금지한다. 우리 하늘의 아버지가 미래를 통치한다. 그래서 오늘과 내일에 아버지의 공급해주심을 의지할 수 있다.


        제니퍼는 육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방치한 것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하늘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었다.


        “육신적인 아버지에게서 버림을 받은 나는 아버지 상에 대해서 긍정적인 견해를 가진 적이 없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내가 아버지에 대해서 갖고 있는 불쾌한 기억은 심한 기관지염 때문에 필요한 약을 사기 위한 돈을 엄마에게 주지 않았을 때이다. 내가 더 아플까봐 또는 죽을 까보다 두려움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서 엄마는 아버지에게 애원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무정하게도 주지 않았다. 그때에 나는 약 5살이었다. 그 때에 아버지에게 결코 의존하면서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약 22년이 지난 뒤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그에게 헌신하기 전에 그리고 내가 그에게 헌신하는 것보다 더 많이 하나님은 나를 돌보아주신다. 그의 말씀을 통해서 육신의 아버지를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나를 가르쳤다. 나에게 거룩한 “네 분의 아버지”를 줌으로서 아버지 사랑을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나에게 특별한 은혜와 내가 필요한 것을 공급해준 분이다. 그는 나를 귀하게 여겨주었다. 선교지역으로 나를 인도함으로서 나에게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매우 가난하고 시골 지역에서 살았던 나는 선교사를 지원할 돈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아버지가 나에게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선교사의 일을 하게 되었다. 믿음의 결정을 하고 나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선교사로서 첫해에, 나는 생활비를 전혀 면전이 없었던 사람을 통해서 후원을 받았다. 또한 주님은 신학교에 들어갈 비용을 제공하여주었다.


        이것은 5년 전의 이야기이다. 나는 한 번도 생활비를 받지 못한 적이 없었다. 주님은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서 나의 믿음을 세워주었다. 그리고 주님이 나에게 열심히 제공해준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나에 대한 지원이 낮아질 때도 있었지만, 나의 아버지가 계속해서 공급을 해줄 것을 나는 안다. 나는 사람들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나 주님은 나에게 지원을 해주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는 확신을 놓쳐본 적이 없다. 세상의 지원자들은 아주 조금 나에게 공급을 하였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많은 공급해주었다.


        내가 필요한 것을 하나도 부족하지 않게 해주는 아버지를 찬양한다. 차도 주었고, 살 집도 주었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아주 좋은 집도 주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받을 가치가 없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값진 딸에게 좋은 선물을 주기를 기뻐하신다.“



3. 아버지의 징계를 받는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우리의 하늘 아버지로 앎으로서 얻게 되는 두 가지 유익에 대해서 말했다. 그를 친밀하게 부를 수 있는 권리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주는 분. 추가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우리는 징계를 받는다. 이 주제에 대한 가장 중요한 구절은 아마도 히 12:4-11절일 것이다;

히 12:4-11


        이 구절의 가르침을 탐구하는 좋은 방법은 , 왜 하늘 아버지는 그의 자녀들을 징계하시는가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세 가지 좋은 대답이 있다;


        ① 사랑하기 때문에 그는 우리를 징계한다 ;


                    첫 번째로, 우리 아버지는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한다. 일반적인 오해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히 12장이 징계에 대해서 말할 때에, 그의 자녀들이 불순종할 때에 아버지가 벌을 주는 것으로 많은 신학생들은 잘못 생각을 한다. 물론 이런 생각은 성경적이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이런 의미가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여기서 말하는 징계는 하나님을 위해서 겪는 고난이다. 7절은 이것은 확인해준다; “ [히 12:7]   (7)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 표준 새번역 ;주께서 여러분을 훈련하시거든 그것을 견디어 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녀에게 대하듯이 여러분에게 대하십니다. 부모가 훈련하지 않는 자녀가 무슨 자녀이겠습니까?].” 그리고 4절에 의하면, 징계는 피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는 것을 담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징계는 고난 중에 견인을 말한다. 히브리서의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저자는 그의 독자들이 참된 기독교인으로서 남아있도록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믿음 때문에 겪는 고난 때문에 인내하라고 보낸 편지이다.


        아버지가 이런 고난을 우리들의 삶에 주는 것은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에서 , 전 남편의 외도와 버림을 포함한 극한 어려움을 겪었던 마리아는 하늘 아버지의 징계를 사랑한다;


        “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입양 교리의 유익은 나의 아버지의 징계이다. ‘[히 12:5-6]   (5)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나는 아버지의 징계를 사랑한다. 내가 그의 자녀라는 것을 확신시켜주기 때문이다. 그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징계한다. 그가 나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 나를 징계한다. 나로 하여금 가족을 닮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징계를 한다.”


        ② 우리의 입양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징계한다;


         두 번째로, 마리아의 말처럼, 우리 아버지는 우리가 입양이 되었음을 확신시켜주기 위해서 징계를 한다. “ [히 12:5-6]   (5)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이것은 매우 분명하다. 그가 그의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징계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불신자들이 경험할 지옥의 형벌을 면하지만, 그들의 아버지는 이 땅에서 우리들의 삶을 바르게 만들어준다. 그가 우리의 아버지이고, 우리가 그 분의 자녀임을 보여주는 한 가지 방법이다. 따라서 어려움이 우리들의 삶에 나타날 때에, 아버지가 여전히 이 땅을 통치하고 있는가를 의심해서는 안된다. 대신에, 우리는 그 분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 [히 12:7]   (7)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명령(징계를 참으라)은 어렵다. 설명(하나님이 우리들을 자녀로서 대우하신다)은 달콤하다. 이것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확신시켜주는 것이다.


        입양과 징계의 관계는 매우 깊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모순이다. “ [히 12:8]   (8)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아버지의 징계를 경험하는 것은 입양의 증거이다. 반대로, 징계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증거이다. 왜? 아버지는 그의 자녀를 사랑하고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그가 자녀들에게 확신을 주는 한 가지 길은 깊은 수렁에서 그들을 건지는 것이다.


        크리스틴은 하늘 아버지의 은혜롭고, 확신 있는 징계를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학대와 비교를 한다.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족에 입양된다는 것이 나에게 기쁨을 주었다. 내가 어렸을 때에 아버지가 죽었다. 이것은 사랑하는 작은 딸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참되고 거룩한 사랑을 아버지 하나님에게 받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학대나 징벌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는 아버지의 징계를 사랑한다. 사랑에 의해서 나온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를 갖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그가 사랑한다는 것을 확신시켜준다. 받을 자격이 없는 여자에게 이런 사랑을 베풀어 준다는 것은 기쁨이다. 아버지의 기쁨이 되기를 원하지만, 늘 실망만 주었던 여자에게 이런 사랑은 정말 기쁨이 아닐 수 없다.”


        ③ 우리의 삶에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징계한다; 세 번째로, 우리 아버지는 삶에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징계를 한다. 10절을 보자; “[히 12:10]   (10)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일반적인 가정의 관점에서 저자는 말을 한다; “ [히 12:9]   (9)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많은 어른들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아버지의 징계에 감사를 드린다. 영생을 갖게 하는 하늘 아버지의 징계에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얼마나 중요한가!


        기자는 세상의 아버지의 하늘 아버지를 비교한다. “  [히 12:10]   (10)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징계를 할 때에 세상의 아버지와 하늘 아버지의 목적을 비교하고 있다. 그들이 아는 한에서 최상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따라서 우리가 징계를 받는다. 그러나 하늘의 아버지는 최상의 것을 알면서 우리들을 징계한다. 그는 우리의 선을 위해서 어려움을 가지고 온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으로, 기자는 징계의 고통과 그것의 보상을 비교한다. “[히 12:11]   (11)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이것은 인간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맞는 말이다. 누가 부모의 징계를 즐거워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어른들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들의 노력에 감사를 드린다. 지금 우리는 징계를 받을 수 있다. “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평강한 열매를 갖게 된다.” 여기에서 아버지의 징계를 통해서 얻게 되는 열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보라! 평강(의와 평화)의 열매.


        산드라(Sandra)는 아이들로 하여금 예방주사를 맞게 하였을 때에 그녀 가족이 겪었던 일을 말하면서 이 점을 보여주고 있다:


        “예방을 위해서 아이들을 의사에게 데리고 간다. 남편은 간호사가 주사를 놀 때에 아이들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아파서 아이들이 울지만,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들에게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들은 힘께 그들을 붙잡고 있다. 하나님의 입양된 딸로서, 나의 관점과 응답은 똑같은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게 주님이 주시는 징계를 받는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성격은 하나님처럼 의를 찾아나갈 것이다. 그들의 자녀들이 거룩함을 함께 나누어가질 수 있도록 징계를 계획하신 것이다. 순종하는 자녀로서, 그들의 성격은 하늘에 있는 아버지의 성격과 닮아가게 될 것이다. 추가적으로, 그들은 “평강”이 넘칠 것이다. 그들은 만족이라는 좋은 교훈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들이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려운 시기에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값진 교훈이다.



결론


        모든 기독교인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늘에 아버지를 갖고 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아버지의 부성애와 우리의 아들 됨이 깊숙이 우리들의 마음에 심어지게 되면, 우리는 하늘 아버지와 같이 될 것이다. 신학자 J. I. Packer는 이 진리를 다음과 같이 우리들에게 전달해준다.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내 자신을 아는가? 나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다. 나의 구원자는 나의 형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나와 똑같은 형을 갖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매번 이것을 말한다. 잠잘 때에도 이 말을 한다.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이 말을 한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이 말을 되풀이한다. 이것을 온전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행복한 삶의 비밀이다. 확실히 우리는 정말 좋은 것을 갖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의 삶의 원동력이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삶이다. 실제적으로 우리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 비밀이 바로 우리들의 것이 되고, 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는 우리들을 사랑하기로 정했다. 아들은 우리들을 구속하였다. 성령은 아들이 우리들의 구속자가 되도록 해주었다. 결과적으로, 죄가 가득 차 있는 마귀의 자녀였던 우리는 이제 살아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아버지는 그의 자녀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우리의 필요성을 제공해주심으로서 우리들을 돌보시고 복 주신다. 우리는 그의 사랑하는 징계를 받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매트(Matt)의 말은 이 모든 진리들을 잘 요약했다;


        “ 나에게, 입양교리는 힘이 나게 한다. 하나님 아버지가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혜택을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그에게 가까이 가도록 만들어준다.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평안하게 그의 안에 머물도록 해준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우리들을 징계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려준다는 진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안정감을 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입양 교리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서 노래하게 한다. ‘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옵소서!”

        
P.S. " Adopted by God", Robert A. Peterson, P& R  제 9 장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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