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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 강 입양과 중생
임 바울  2016-03-26 14:07:41, 조회 : 1,342, 추천 : 270

                                                   제 13 장
                                               입양과 중생


        유명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책에서, J.I. Packer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기독교인의 삶에 얼마나 중심이 되는가를 증명해주고 있다;


        “만일 신약성경을 거룩한 창조주의 부성에 대한 계시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신약성경을 단 한 줄의 말로 요약하는 것이다. 만일 또한 신약을 누구나의 거룩한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의 지식으로 묘사한다 해도, 신약 전체를 요약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기독교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판단하기 원한다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얼마나 많이 생각하는가를 알아보라고 하겠다. 만일 그 생각이 예배와 기도와 삶에 대한 모든 사고방식을 추구하고 조정하는 사상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가 기독교를 매우 잘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 신약성경을 새롭게 하는 모든 것, 신약을 구약보다 더 낫게 하는 모든 것, 기독교를 단순한 유대교와 구별 짓게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지식 가운데서 요약된다. 아버지는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적인 이름이다.”


        Packer는 옳다. 아버지를 아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 놓여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를 말해주는 두 가지 그림이 있다. 입양은 아버지가 성도들을 어른 자녀로서 그의 가족에 놓는 것이다. 중생은 죄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줌으로서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한다. 이 장에서, 우리는 중생의 다음과 같은 국면들을 볼 것이다.


        ⓐ 중생의 필요성
        ⓑ 삼위일체와 중생
        ⓒ 중생의 열매        
        ⓓ 입양과 중생



1. 중생의 필요성


        엡 2:1-3절은 중생의 필요성을 우리들에게 설명해준다:

엡 2:1-3


        이것은 -성경에서 가장 추악한 것 중에 하나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의 곤경을 그려준다. 그들은 영적으로 죽었다.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상 체계의 독재자에 따라서 살았다. 악한 자의 길로 걸어갔다. 그들의 죄 된 욕망을 추구하였다. 그래서 하나님 진노의 대상이었다. 이런 설명 중에서 첫 번째 것과 마지막 것에 우리는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전에,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다”(엡 2:1). 불신자는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다고 바울은 말한다. 그들은 영적으로 죽었다. 그들은 영생을 갖고 있지 않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모른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 17:3


        영생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


        불신자는 마치 제 2차 세계대전에 독일의 암호가 풀리기 전의 연합군 암호 해독자와 같다. 그들은 자기 앞에 있는 글자들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암호가 해독되었을 때에 죽은 글자들은 살아나고, 연합국들은 제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AXIS(일본, 독일, 이탈리아) 주축국들의 계획을 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알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는다. 그들은 이야기를 알게 되고 심지어 구절들도 암기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기 전까지는 성경은 그들에게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요 3:3


사람이 영적 시야를 갖기 전에 먼저 영적 생명(중생)이 있어야 한다.


        엡 2:3절에서 보이는 불신자에 대한 마지막 설명은 또한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본질적으로 진노의 대상이다.” 하나님의 중생시키는 은혜가 우리에게 오기 전에, 우리는 본질적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진노의 자녀이다. 여기에서, 바울은 구약의 관용어를 사용한다. 어떤 분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그 아버지에게서 그것을 받을 자격 또는 유산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다윗왕은 부자를 부인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였다. “ [삼하 12:5]   (5)다윗이 그 사람을 크게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영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이 되어 있다. “the man who did this deserves to die!.” 따라서 바울이 진노의 자녀라고 우리를 불렀을 때에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마땅히 받아야 함을 의미한다.


        왜 하나님은 불신자에 대한 설명을 엡 2:1-3절에서 비참하게 말하고 있는가?  왜 그들이 영적으로 죽었고 그들은 진노를 받을 만한 것으로 가르치고 있는가? 보석판매자들은 그들의 값진 보석을 어두운 바닥에 깐다고 한다. 그래야만 보석이 더욱 눈에 띄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구출된 어두운 상태를 배경으로 보아야만 우리의 구원을 바르게 평가할 수 있다. 엡 2:1-3절 다음 구절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라! “[엡 2:4-5] (4)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우리 죄의 절망감은 하나님 사랑의 위대함을 드러낸다. 그의 긍휼과 은혜의 위대성이 부각된다. 위대한 우리의 의사가 우리의 고질병을 고친 처방전을 제공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영적으로 죽었을 때에, 그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우리의 중생에서 삼위 하나님은 어떤 역할을 하셨을까?


3. 삼위일체와 중생


   우리가 중생에 대해서 말할 때에 기독교인들은 중생에 대해서 말한다. 이것은 틀린 것은 아니다. 성령이 중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도 베드로는 이 분의 역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벧전 1:3-5


        삼위의 하나님은 중생에서 각자 역할이 있다. 아버지는 은혜롭게 우리들을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그는 우리가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셨다. 야고보는 다음처럼 설명한다:

약 1:18


아버지는 우리의 중생을 계획했다. 그는 새로운 탄생을 위한 주도자(主導者)이다.


        아들도 이 일에 관련이 있다. 아버지는 죽음에서 예수님을 부활시킴을 통해서 우리를 중생시킨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새롭게 태어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버지가 우리 중생의 계획자라면, 아들은 중생의 출처이다. 그의 부활이 우리를 살아나게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우리를 예수님에게 연합시킬 때에 우리는 중생의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된다. 예수님은 중생을 영적 부활로서 말한다.

요 5:24-25, 28-29


        예수님은 다가오는 때, 즉 무덤에서 죽은 자가 부활하는 때를 “오고 있으며 이미 온” 때와 대조하고 있다. “이미 온 때”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살고 있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이미 영생을 가졌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이 이전은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영생을 얻는 영적 부활을 말한다. 중생을 영적 중생으로서 말하는 것은 마지막 날에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행위임을 보여준다. 이것은 또한 성령의 역사를 보여주기도 한다.


        아버지는 중생을 계획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새로운 삶의 능력을 제공한다. 성령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성령은 중생을 각 개인에게 적용한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영적으로 살아나게 한다. 예수님은 중생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요 3:3]  (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성령을 바람과 같다고 하였다. “ [요 3:8]   (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예수님은 성령과 바람이라는 단어를 말함으로서 언어유희(言語遊戱)를 하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령을 하나님의 바람으로서 생각하기를 원하였다. 세 가지의 유사성을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은 바람에 대해서 말씀하였다. “ [요 3:8]   (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바람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의 죄를 책망하고 그들을 믿음으로 인도하도록 성령께서 우리들의 마음에 어디서 언제 역사할 것인가를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 성령의 사역은 이해를 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그 결과만을 본다. 그러나 우리는 미리 예견할 수 없고 또는 하나님의 거룩한 바람이 어떻게 언제 어디서 불 것인가를 전적을 이해하지 못한다.


        두 번째로, 바람과 성령은 주권적이다. 바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분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바람을 인간의 특징인 의지를 부여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성령은 선택과 의지를 갖고 있는 분임을 제자들에게 알려준다. 하나님의 성령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분다. 때때로 성령은 기대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리고 기대하지 않은 방법으로 역사를 함으로서 우리들을 놀라게 한다. 기쁜 일은 성령님은 일하기를 기뻐하신다는 점이다. 우리들과 같이 그 분은 일을 하신다. 우리는 좀 더 성령과 그 분의 사역에 경의를 돌려야 한다.


        세 번째로, 바람과 성령은 결과로서만 인식할 수 있다. 요한은 이것을 말로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였다. 우리는 바람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흔들리는 나뭇잎과 옷을 보면서 안다. “성령으로 태어나는 사람도 이와 같다”고 하였다. 우리는 성령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남긴 흔적 때문에 그가 이 길을 지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사람으로 하여금 중생케 한다. 영적으로 죽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준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딛 3:5


        하나님을 전기회사에, 영생을 전기로 비교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아버지는 회사의 사장이다. 그는 영생이라는 전기를 우리의 집에 공급한다. 아들은 우리가 영생을 위해서 전적으로 의지하는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이다. 성령은 각 집에 와서 우리의 집이 전기와 연결이 될 수 있도록 해주는 일꾼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실제로 우리가 전기를 갖게 해준다.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중생의 계획자이다. 아들의 부활은 발전기이다. 성령은 우리의 삶에 전기가 흐르도록 영적인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


        중생이 아버지, 아들, 성령님의 사역임을 고려하는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겸손하게 하고 놀라운 기쁨을 준다. 죽은 사람을 하나님에 대해서 살아나게 하는 것은 삼위의 사역이다. 우리로 하여금 중생케하고, 새로운 생명을 실제로 주는 일은 삼위의 역사이다. 우리가 이런 은혜를 맛보기 전에 우리가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는가를 고려할 때에 이런 생각들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삼위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려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아버지의 긍휼과의 대상이고, 아들의 부활에 의해서 수여된 영생을 즐길 수 있으며, 성령 하나님이 우리들의 마음을 열어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기쁨을 가진다. 베드로는 중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벧전 1:3


4. 중생의 열매


        우리들의 삶은 우리의 영적 상태를 보여준다. 요한은 이 점을 매우 강조하였다.: “[요일 3:10]  (10)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으로 인해서 태어난 사람들을 특징짓는 열매들을 조사하기 위해서 요한 일서를 연구해보자.


        ⓐ 죄를 고백하는 열매 : 첫 번째 열매는 놀라운 것이다. 언뜻 보기에, 요일서는 완전주의를 가르치는 것처럼 보인다. 기독교인들이 죽기 전에 죄 없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주의이다. 이 주장의 주요 예는 요일 3:9이다; “ [요일 3:9]   (9)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5: 18절도 보라). 이 구절은 완전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 요일 1:8-10절은 이 땅에서의 삶에서 죄 없는 완전주의를 강조해서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일 1:8-10


        요한은 그의 독자들에게 은혜롭다.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서 뛰어나다고 그들을 칭찬하기 전에, 기독교인으로서 그들은 여전히 죄를 짓는다는 것을 기억나게 해주고 있다(제 1 장에서). 그러므로 그들은 매일 용서와 깨끗함을 받을 필요가 있으며 요일 1:9절은 회개를 하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약속을 하였음을 알려준다. 요일서의 나머지 부분을 제 1 장에서 분리를 하게 되면, 우리는 공포에 잠기게 될 것이다. 몇 명이나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신앙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믿음의 형제들을 얼마나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가? 그리고 흠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는가? 답은 아마도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일 1:9절은 우리를 위한 귀한 약이다. 매일 매일 우리는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에게 오는 자들에게 주는 용서와 정결함을 필요로 한다. 이 약을 신실하게 취하자.


        ⓑ 하나님 아들을 믿는 열매 : 하나님의 자녀들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따라서 요일서는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을 믿으라고 촉구한다. 성육신에 대한 믿음은 매우 중요해서 요한은 거짓된 영과 성령을 구별하는 잣대로 사용한다.

요일 4:1-3


        하나님의 자녀는 또한 예수님이 독생자임을 믿는다;

요일 4:14-15


        추가적으로, 예수님이 그리스도, 구약에서 약속했던 메시아임을 믿는다.

요일 5:1
요일 2:22-23


        경고의 말씀이 순서적으로 주어지고 있다. 같은 신학교에서 교수로 있는 Robert Dunzweiler는 새로운 신자로서 교육에 참여하였다. 그는 기독교 대학에 입학했고 충실하게 예배에 참석하였다. 다른 용어로 복음을 제시하는 설교자 때문에 혼란을 겪었다. 한 설교자는 그리스도를 구원자로서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설교자는 믿음으로 그를 영접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회개를 해야 한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를 주님으로서 고백해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그는 자신의 영적 상태를 볼 때마다 대단한 고통을 당하였다. “나는 신뢰하고 영접하였지만 회개를 하였는가?” 다른 때에는 “나는 신뢰하고 영접하였지만,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였는가?” 설교자들은 똑같은 것을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고 그는 고백을 한다. 그때에 Bob은 그리스도 안에서 평강을 찾았고, 그가 벌써 믿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확신을 찾았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음의 세 가지 스텝을 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요한일서를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성육신을 믿고, 그리스도의 아들 됨을 믿고, 그리고 그의 메시야 됨을 믿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놓기 위해서 인간이 되신 독생자를 믿기를 원하는 것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 이런 진리가 너무 중요해서 사도 요한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아버지와 아들을 향한 사랑의 열매 : 하나님의 자녀는 그들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을 흠뻑 받고 있다. 이런 사랑 때문에 자녀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사랑한다. 이 사람의 원천이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요일 4:8-10


        하나님 아버지의 특징 중에 하나가 사랑이다. 그들을 위해서 독생자를 죽이면서까지 자신의 사랑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한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생은 그 자체가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의 동기가 된다.

요일 4:19


        아버지가 먼저 사랑을 하였기 때문에 우리들은 아버지를 사랑한다. 성도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요일 5:1-3).


        아버지를 사랑하는 결과는 다른 기독교인들을 사랑하게 만든다;

요일 4:1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임을 사도 요한은 분명히 하고 있다.

요일 4:7-8


        하나님과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은 중생의 열매이다.


        믿음의 형제자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아버지 하나님의 강한 사랑은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할 수 있다. Chardial는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한다;


        “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전에, 나는 온전히 혼자 였고 외로웠다. 나의 엄마는 사랑 또는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때에 나는 나의 종교 때문에 집에서 추방을 받은 사람처럼 대접을 받았다. 나는 여호와 증인이었다. 나는 소속감을 가졌다는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영접하고 난 다음에, 많은 믿음의 형제들이 나의 가족이 됨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기쁨, 사랑, 평화, 그리고 그들로부터 영접되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것은 정말 기쁜 경험이다.


        ⓓ경건한 삶의 열매 :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그의 자녀들은 또한 거룩한 삶을 영위한다. 이런 거룩함이 그들을 하나님의 가족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중생이 그들을 가족으로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일단 하나님의 가족으로 들어온 후에, 그들은 아버지와 그들의 형제인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된다.


        이런 열매는 전에 말했던 열매와 중첩된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다” (요일 5:3). 거룩함과 사랑은 하나님 자녀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요일 3:10
요일 2:3-4
요일 3:7-8


        사실, 거룩함은 중생의 증거이다.

요일 2:29


        거룩함을 나타나는 능력은 기독교인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것이다.

요일 5:18


        참으로, 삼위 하나님은 하나님 자녀안에서 거룩함을 나타나게 한다.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난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다.

요일 3:9


        이 땅에서 우리가 완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우리가 요일 1:8-10절에서 본 것처럼,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죄를 짓고 자주 하나님의 용서와 정결함을 받을 필요가 있다. Anthony Hoekema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들 자신과 다른 믿음의 형제들을 진실로 새로운 그러나 아직까지는 완전히 새롭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5. 입양과 중생


        입양과 중생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가족으로 들어가게 되는가를 설명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이 두 교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성도들을 그의 자녀로서 인식한다. 중생에서, 그는 그의 아들을 낳았고, 영적으로 죽은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었다. 입양에서, 아버지는 우리들을, 전에 마귀의 자녀들을 그의 가족으로 받아주었다.


        입양은 법적 행위이다. 우리들을 취해서 그의 가족으로서의 새로운 신분을 주는 우리들 밖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중생은 우리의 본질을 새롭게 한 것이다. 우리들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아버지께서 우리들 안에 영적인 생명을 부여한 것이다. 입양은 법적인 위치를 바꾸어준다. 중생은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준다. 이 두 교리는 하나님의 아들과의 연합에 의한 은혜의 결과이다. 이 장에서 보여준 것처럼, 중생과 입양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감사를 해야 할 풍성한 이유를 제공한다.


        왜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묘사하기 위해서 중생과 입양이라는 그림을 그리는가? 우리의 비참함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의 종이고, 아버지에 의해서 입양을 받아야 할 절망적인 필요성에 처해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영적으로 죽었고 다시 태어날 무서운 처지에 처해 있다. 입양과 중생은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서 달려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준다. 그의 자녀들은 다르다. 우리의 아버지는 우리들의 처지에 따라서 다르게 사역을 하신다. Renihan 목사의 예는 이런 진리를 이해하는 일에 도움을 준다:

        “ 주님은 다섯 명의 딸을 가진 나의 아내와 나에게 복을 부어주었다....그들은 비슷한 것을 갖기를 원하지만, 그들 모두는 다르다. 조금 다른 기벽과 성격을 갖고 있다.

        그들 모두가 필요로 하는 것은 엄마와 아빠로부터 양육과 애정이다. 그들은 종종 내 팔 안에 있다.

        나이 많은 딸은 늘 아침에 포옹을 한다. 그녀가 자기의 아빠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하루를 시작하도록 한다. 둘째 딸은 꽉 껴안고 간지롭힌다. 그리고 자주 껴안아 준다. 그녀 옆을 지나면서 어깨를 건드리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내가 그녀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때때로 내 무릎에 앉아 있는다. 세 번째는 조금 세게 껴안아주는 것을 좋아하고, 네 번째에는 자기의 등을 긁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긁을 때에는 옷 속에 손을 집어넣어서 긁어주기를 원한다. 아마도 내 손톱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막내는 포옹, 입맞춤, 미소를 온종일 받는다. 아기는 특별한 것이 있다. 막내는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필요로 한다.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의식 없이 행해지는, 일종의 자동적이다. 그들에게 관심을 주고 애정을 주겠다고 마음먹을 필요도 없을 정도이다. 사실, 내가 그들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찾아온다.....그들이 상처를 입거나 다쳤을 때에, 미소를 지으면서 그들을 위로해준다. 폭풍과 천둥과 비바람이 칠 때에 그들은 내 팔에서 평안함을 가진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들은 얼마나 귀한 존재들인가! 내가 나의 자녀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시는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다. 나는 가끔 사랑을 주는 일에 실패를 한다. 그의 사랑은 실패가 없다.”

  

P.S. " Adopted by God", Robert A. Peterson, P& R  제 8 장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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