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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부 공감이 넘치는 응답과 전략: 제 11 장 낙태는 용서받지 못하는 죄인가?
임 바울  2013-07-18 16:36:18, 조회 : 4,220, 추천 : 520

                                           제 3 부 공감이 넘치는 응답과 전략

                  
                                                           제 11 장
                                             낙태는 용서받지 못하는 죄인가?



6명의 자녀를 가지고 남편이 없고 낙태를 소망하는 정부 지원을 받는 여성은 윤리에 대한 강의를 위한 필요성을 갖지 않는다. ...물론 그리스도의 화해하는 사역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그녀가 주님의 사랑에 응답을 할 때에, 성령은 그녀에게 윤리적인 문제를 일깨워줄 것이다...... 종종 물질적이고,  명백한 필요성을 줌으로서 더 깊은 영적 필요성에 직면할 특혜를 받는다.

                                                -Bill Crouse-

기독교 교회는 상처 받은 곳을 건드리는 유일한 군대이다.
                                                - Unknown-


        성경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언급하기에, 이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많은 고찰들이 있었다. 낙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살인은 가장 가증한 죄중에 하나이고 낙태는 일종의 살인이라고 간주하였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에 대한 유효한 결론인가? 아니다.


        신학적 학술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말하자면, 낙태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는 생각을 지지하거나 부정할 성경적 증거는 전혀 없다고 명확히 말할 수 있다.


        다윗왕은 살인죄를 저질렀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아를 죽일 것을 계획하였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결혼을 하기를 원하였다. 그의 죄에 대한 다윗의 양심의 가책은 성격적인 회오의 모델이다. 시 51편에서 회개에 대한 그의 기도는 우리의 표준이다. 간음과 살인이라는 죄를 짓고 난 다음에도, 다윗은 용서를 받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였다고 믿는다. 낙태를 한 사람들도 또한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믿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



1. 하나님은 어떻게 죄와 죄책을 다루시는가?
        개인적인 죄책감은 낙태가 용서를 받을 수 없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때문일 수 있다. 열정적이고 성경의 윤리를 따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모든 사람이 행하는 똑같은 죄로 고심한다. 낙태가 교회의 회원 밖에서만 일어난다고 추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교회의 모든 회원들의 모든 행동들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소위 복음주의 진영안에서, 낙태가 전혀 상관이 없지는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유행병에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생명권(태아의 생명권 Pro life) 운동의 선두주자이면서도, 도덕적 모순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심각한 도덕적 갈등과 풀 수 없는 죄책감이 모순과 함께 오기도한다.



        자궁암으로 죽어가는 한 기독교 여성을 방문하였을 때에 일어난 슬픈 일화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녀의 병은 말기에 처해 있었고, 성찬을 요청하였다. 나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서 병원으로 갔고 성찬을 집행하였다. 그때에 그때에 자신을 지금까지 괴롭혔던 고민을 털어놓았다. 오랫동안 간직했던 비밀이라고 하였다. 심지어 자기 남편에게조차 말하지 않았고 낙태를 행했다고 하였다. 자신의 죄 때문에 자궁암이 하나님으로 온 형벌인지를 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목사는 종종 죄에 대한 형벌로서 사람에게 암을 발생하게 하는 일들을 하지 않는다는 근거없는 확신을 환자들에게 종종 준다.  그러나 이런 위로는 진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현재의 죄에 대해서 일시적인 형벌을 질병이나 또는 사망으로서 행하실 수 있으며 또한 행하시기도 한다. 하나님은 미리암과 웃시야 왕의 죄에 대해서 질병으로 괴로움을 주었다. 이 두 사람은 신적 심판의 행위로서 문둥병을 경험하였다(민 12:1, 9-11; 대하 26:16, 19-21).



        한편으로, 성경은 고통은 신적 징계의 표로 생각하는 것을 경고한다. 욥기서는  이런 개념을 없앤다.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에 대한 요 9장에서의 예수님의 가르침도 이런 개념을 없앤다. (나는 “고통이 주는 놀라움”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당혹스러운 문제들을 다루는 책을 썼다.). 고통이 항상 신적 심판의 징후라고 결론을 짓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신적 심판의 징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동등하게 잘못이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신적 심판의 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죽어가는 여성에게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경륜을 나는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녀의 고통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하기를 기뻐하신다고 말하였다. 요일 1:9절의 위로하는 약속을 언급했다: “[요일 1:9]  (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이 구절과 유사한 것이 성경에 또 있다: “ [사 1:18]  (18)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시 51:10-17]   (10)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3)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14)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주여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16)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17)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이사야서로부터, 하나님은 주홍같은 죄들을 눈과 양털처럼 하얗게 바꾸어주신다고 약속을 하신다. 이것은 멕베드의 여인을 괴롭혔던 죄책의 고통을 상기시킨다. 그녀는 피가 묻은 손에서 죄책을 없애기 충분한 비누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하는 은혜는 이런 죄까지도 완전하게 없앨 수 있다.



        다윗은 죄책이 제사로서 제거되지 않음을 이해했다. 또는 선한 행위로서 해결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은 상하고 회개하는 마음만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조건없이 용서를 주지 않는다. 종종 우리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영접과 용서에 대해서 듣는다. 그런 생각은 용서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니다. 하나님은 조건에 맞는 것을 요구한다. 전적으로 그리고 아낌없이 용서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진지한 회개와 고백을 요구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낙태와 관련된 죄책으로 괴로워한다. 낙태를 했던 여성과 그것을 하라고 충고했던 사람과 시행했던 의사들에게서 죄책감이 떠나지 않는다. 어느 의삭 New York Times에 보고 하기를, 낙태를 시행하기 전날에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려고 하였지만, 종종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낙태를 시행하려는 마음이 일으키는 감정이 너무 강해서 .....의사들은 그것에 대해서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 다른 경우에, 낙태를 시행하고 난 다음에 ,이 의사는 감정이 너무 복받쳐서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고 한다.

        
        죄책감을 강한 감정이고 어떤 사람은 심각한 정신적 마비를 겪기도 한다. 한 정신과 의사가 자신들의 스텝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기를 요청받았다. 많은 환자들이 심각한 죄책감과 관계된 문제로부터 고통을 겪고 있다고 그는 설명하였다. 이 사람들은 의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목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그들이 용서받았다는 것을 말해줄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이 정신과 의사는 기독교에 충성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단지 그의 환자의 정신상태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해결되지 않는 죄책의 무서운 힘을 그는 이해했다. 그것을 부인하고 합리화시키는 것은 실제적인 죄책감을 다루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도 그는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손에 있는 더러운 것을 숨기려고 하는 것은 더러운 것을 없애기 위한 는 가장 나쁜 방법이다.



2.  하나님 용서를 체험하기
        죄 사함의 깊은 자유를 체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에게로 가고, 진실한 마음과 회개하는 마음으로 죄를 고백해야 한다. 회개는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진실한 그리고 거룩한 슬픔이 있어야 한다. 뉘우침과는 다르다. 그것은 형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어난 거짓 회개이다. 뉘우침은 과자를 훔치다고 걸려서 , 몽둥이를 들고 있는 어머니를 보았을 때에 후회를 하는 아이들에게도 나타난다.  참된 회개는 죄책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것을 정당화하지 않는 것이다. 참된 겸손과 회개와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려는 진지한 결심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확실히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을 듣는다, “ 다시 한번 이 세상에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때때로 사람들은 똑같은 것을 하겠다는 말로서 대답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들의 말을 진심으로 믿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들을 과거에 갖고 있다. 나의 경우에, 말하지 않기를 원했던 것들을 말했던 일들이 있다. 그러나 일단 입에서 말이 나가면, 그것을 돌이킬 수 없다. 활에서 떠난 화살과 같다. 내가 말을 바꿀 수 있고 내 말에 대해서 사과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표현이 되면 그것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이루어진 일을 돌이킬 수 없다. 이제부터는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했던 것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용서받을 수는 있다.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중에 놀라운 것이다. 용서가 주는 치료의 효력은 놀랍다. 여자가 낙태에 관련이 있다면, 그녀의 가슴에 평생동안 죄책감에 눌려서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은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죄에 대해서 회개하기를 원하고 용서로 인한 깨끗함을 얻기 위해서 자기에게로 오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할 때에, 우리는 용서를 받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정결케 하면, 우리는 깨끗해진다. 바로 이것이 축하해야 할 가장 큰 원인이다.



A. 본문 요약
1. 낙태가 용서할 수 없는 죄라는 생각을 지지하는 성경구절은 하나도 없다

2. 겸손하게 그리고 슬퍼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 심지어 낙태의 죄라 할지라도 용서하신다.

B. 연구문제
1. 비기독교인들은 죄책을 어떻게 다루는가?

2. 하나님이 용서한다면, 왜 기독교인은 낙태를 할 수 없는가?

3.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에게 기독교인들은 보통 어떻게 응답을 하는가?

4. 낙태와 낙태를 실행하는 것이 주는 심리학적 영향은 무엇인가?

5. 낙태 문제에서 기독교 교회는 어떤 역할을 성취할 수 있는가?

5. 우리가 용서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P.S.  Abortion : Rational Look At An Emotional Issue by R.C. Sproul의 제 11 장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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