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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름학기 윤리학 : 제 10 장 원하지 않는 임신의 문제
임 바울  2013-07-12 13:49:44, 조회 : 3,120, 추천 : 525

                                                          제 10 장
                                                 원하지 않는 임신의 문제



        처음부터 우리의 욕망을 조절하지 않고 하나님 섭리에 의해서 태어난 자손들을 황산과 사악한 기술을 가지고 빼앗는 것을 피한다면, 우리의 모든 삶은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이다.
                                - Clement of Alexandria-



        간단하게 말하면, 여성은 아이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낙태를 한다. 이 결정은 많은 이유 때문에 추진된다. 그녀가 간음과 근친상간과 같은 강제적인 사건의 희생자이기 때문에 임신을 할 수도 있다.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태아는 불구로 태어날 수도 있고, 심각한 의학 질환을 겪을 수도 있다고 예비 의학 리포트는 지적하고 있다. 아이의 출생이 여성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고, 나머지 가족들에게도 같은 어려움을 줄 수도 있다. 또는 부모들이 여자보다는 남자를, 남자보다는 여자를 원할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하면, 엄마나 또는 부모가 아이를 갖기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확실히 가장 흔한 상황중에 하나는 결혼 전의 임신이다. 사회적 또는 가족의 당황함 또는 상처가 너무 커서 낙태는 도피의 방법으로 제시된다. 이것은 낙태를 선택하는 몇가지 예에 불과하다.


        모든 동기중에서 가장 흔한 이야기는 아이의 탄생이 가지고 올 예상되는 고통이다. 낙태는 너무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예상되는 고통을 가장 신속하고 깔끔하게 처리하는 해결책처럼 보이는 것 같다.


1. 낙태와 향락주의(쾌락주의: hedonism)
        어떤 사람은 미국의 문화를 신 향락주의 또는 향락주의의 황금기로 분류한다. 향락주의는 종종 정열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관 또는 인생관으로서 정의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향락주의는 선(善 )은 고통을 최대한 피하고 즐거움을 최대한으로 누리는 것으로 기술된 윤리 철학이다. 가능하면 최소한의 고통을 가지고 모든 즐거움을 취하는 것이다.


        철학으로서, 향락주의는 많은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통제되지 않는 즐거움의 추구는 결과적으로 원하지 않는 많은 고통을 가지고 올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 예를 들면, 망치로 치는 것과 같은 두통은 알코올을 과다하게 섭취할 때에 일어날 수 있는 결과이다), 고대 에피쿠로스 학파는 즐거움을 위한 평형을 얻으려고 하였다. 향락주의에는 역설이 있다. 우리가 찾는 즐거움을 성취할 수 없다면, 우리는 좌절감을 가지게 되고, 우리가 찾는 즐거움을 얻으면, 우리는 지루함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즐거움의 추구는 좌절감을 가지거나 지루함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공식적인 윤리로서 향락주의는 Hugh Hefner와 같은 몇 몇 진지한 옹호자들이 있지만, 실제적인 면에서 우리 모두는 향락주의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다. 우리가 변태 자학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 대부분은 고통을 즐기지 않는다. 그것을 피하거나 없애기 위한 길들을 찾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낙태를 택하려는 유혹이 매우 강한 이유이다. 이것은 도피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의사들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택하도록 사람들을 조언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덕을 위해서 가장 지나친 요구일 수 있다. 선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과 개인적인 고통과 손실일 감안하면서 그것을 추구하도록 도덕적인 용기를 가지게 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그러나 자기 희생은 참된 덕을 추구하는 일에 필수적이다. 옳은 것을 하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고통은 덕있는 사람의 표지이다. 좋은 것이라고 “느끼는 ”것을 행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선한 것을 행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Doing what feels good is often easy. it's not so easy to do what is good). " 기분이 좋다“와 같은 윤리의식을 받아들일 때에 문화 습관은 바닥에 도달한 것이다. 이런 슬로건은 타락한 사회의 비명(碑銘)이다.


        미래의 고통을 피하려는 모든 노력이 이기적인 것은 아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가 질병이나  불구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육체적인 고통을 직면할 가능성이 있을 때에, 이 관심은 어린아이를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낙태를 위한 구체적인 동기에 대한 논의를 진전하기 전에, 현대 국가적인 논의는 치료낙태 또는 강간이나 근친상간과 같은 낙태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다. 주요 논쟁은 요구에 의해서 행해지는 낙태이다. 물론, 치료 낙태나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돠한 낙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런 특별히 복잡한 윤리적인 문제가 토의의 핵심을 흐리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뒤에 볼 것이지만, 아주 적은 숫자의 낙태가 강간이나 근친상간에서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여성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행해지는 낙태도 매우 드물다. 실제적인 문제는 아이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또는 편의를 위해서 요구되는 낙태이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근거로서 낙태를 정당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방침이다. 이 동기가 태아의 권리를 무시한다면, 그때에 똑같은 이론이 유아살해와 자살과 같은 형태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아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낙태를 찬성하는 사람은 또한 유아살해와 자살을 제안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있는 태아를 원하지 않는 것이 파괴를 위한 정당한 윤리적 근거가 된다면, 똑같은 원리가 다른 살아있는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다른 말로 하면, 부모가 원하지 않기 때문에 3살 짜리 아이를 죽이는 것이 정당치 않다면, 그때에 마찬가지로 출생전에 살아있는 사람을 죽이는 것도 정당치 않다는 것이다. 원하지 않다는 것이 한 인간을 죽이는 정당한 도덕적 근거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요점이다.


        비록 아이를 원하지 않지만, 낙태의 문제로 괴로워하는 여성들이 자신의 임신을 계속할 것을 결정하였을 때에, 아이가 태어난 후에 자신이 생각이 극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흔하다.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보고 안고 있을 때에, 자신이 왜 낙태를 생각했는가 의아해 한다. 분명히, 낙태 후에는 여성이 아이를 가지는 문제에 대해서 마음을 바꾸는 것은 늦은 것이다.


        자라나는 태아가 살아있거나 또는 잠재적인 생명이라고 할지라도, 아이가 가난하게 살 운명에 처했거나 또는 다른 사회적인 핸디켑을 갖고 태어날 경우에, 낙태는 정당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출생전에 아이를 없애는 것이 좋다고 그들은 말을 한다.


        역사를 보면 확실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태어난 날을 경멸하는 것을 본다. 심지어 성경적인 인물도 그들의 탄생을 저주하였다. 욥과 예레미야는 이런 예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욥 3;1-4, 11, 16; 렘 20:18). 그들의 삶이 태어나지 않은 것이 나을 뻔 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려움고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어려움을 이겨나감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인물로 나타났다. 다른 예로서, 음악가 베토벤을 미래의 삶을 본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가 장님이 된 후에 인류에게 이런 엄청난 공헌을 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살은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가장 극적인 좌절의 표현이다. 많은 자살이 미국에서 증가되고 있다. 특별히 10대 중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두 번째 서열에 속한 죽음이다. 도덕적인 결과가 무엇이든지간에, 자살은 중요한 점에서 낙태와는 전혀 다르다. 자살 희생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선택을 자신이 한다.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다른 사람이 나의 삶의 질 때문에 나를 반드시 파멸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을 찬성할 수가 없다.



2. 입양 선택
        가장 뜨거운 논쟁이 일어나는 문제중에서,  논리적인 실수가 낙태 문제에서 종종 일어난다. 이런 것중에 하나는 낙태 찬성 옹호자들이 소위 양자 택일의 질문이라고 불리우는 “잘못된 딜레마의 오류“를 범하는 경향이 있다. 여러 가지 대안(代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두 가지 선택만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False Dilemma는 꼭 양자택일의 선택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꼭 양자택일의 상황이라고 몰고 가버리는 상황을 만들어 버리는 것). 물론, 어떤 질문들은 분명하게 두가지 선택밖에는 없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있는가, 또는 없는가와 같은 문제이다. 여기에는 중간적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문제들은 오직 두가지 선택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들을 두가지 문제로만 함축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낙태에서 양자 택일의 오류는 다른 잘못된 원리와 결합시킨다. 두가지 악중에서 작은 악을 택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이것은 마치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낙태를 허락하는 것은 즐거운 선택이 아니지만, 원하지 않는 아이를 갖는 것 또는 아이의 삶이 바람직하지 못한 더 나쁜 악보다는 낫다.” 따라서, 낙태는 두가지 악중에서 더 작은 악이기에 정당하다. 그들은 다른 선택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낙태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안은 아이를 입양시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출생후에 원하지 않는 아이를 돌보는 짐을 여성으로부터 제거할 수 있다. 여전히 그녀는 임신이라는 고통스러운 과정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겪어야 할 것이다. 그녀는 부모로서의 비난, 공적인 창피, 또는 치욕을 참아야 할 것이다.  입양의 대안을 선택하는 것은 그녀에게 많은 댓가를 지불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찌보면 명예스러운 지불이다. 그녀는 바르게 행동을 한 것이고, 자신의 품위를 더럽힌 것이 아니다.

        사실 나는 품위( integrity)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택하였다. 창피함과 치욕을 피하기 위해서 낙태를 하는 것이 품위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품위가 이 논쟁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살아있는 태아를 파괴하는 것은 인격적인 품위가 부족함을 보여준다.


유감스럽게도, 입양 조건이 현재에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가득차있다. 한편으로, 백인 부부들은 입양할 수 있는 백인 아이의 절대적인 부족을 겪고 있다.  입양하기를 원하는 많은 백인 부부들이 인종과 상관없이 아이를 입양하지 않는다면, 찾을 찾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역으로 말하면, 아이를 입양하려는 가족보다는 입양을 위해서 아이를 포기하는 소수민족 또는 혼혈아가 많다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입양을 위한 아이의 수가 감소한 것이 아니라,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생명권 옹호자들은 그들과 다른 인종의 아이들을 입양하려는 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아이를 입양한 가족들은 생명권 옹호자들을 위한 모델을 제시한다. 낙태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아이를 입양하는 사랑스러운 행위들 보여줌으로서 훨씬 더 많은 일들을 성취할 수 있다.


3. 강간과 근친상간의 문제들
        강간과 근친상간으로 이루어진 임신을 끝내기 위한 낙태는 매우 적은 숫자에 해당하며, 낙태 합법화의 광범위한 문제와 분리해서 다루어야 한다. 이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절대적인 연민(憐憫)을 요구한다. 그 숫자가 적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임신을 한 강간 피해자에게는 어떤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녀의 문제는 심각한 것이다.


2008년에, 90,000거의 강요된 강간이 미국에 보고 되었다. 그러나 강간의 실제적인 숫자는 보고된 숫자보다 약 4배나 많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을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약 360,000의 강간이 매년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임신가능한 사람 사이에서 원하지 않는 성관계로부터 임신의 확률은 약 3 %이라고 연구서는 보고한다. 우리가 이 기준을 강간 통계에 적용을 하면, 약 10,000의 임신이 강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실제적인 숫자는 아마다 매우 낮을 것이라고 한다.


        Dr, Carolyn Gerstner는 강간에서 임신률은 매우 낮다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충격적인 상황들이 벌어질 때에 즉각적으로 배란이 억제된다; (2) 난자는 배란 뒤 약 24시간 동안만 번식력이 있다; (3) 정자는 약 48 시간동안만  생존할 수 있다; (4) 강간의 사건속에서는 실제적인 삽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5) 실제적인 삽입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사정이 실제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6) 강간의 연령이 유아부터 100살 된 여성까지 보고된다. 12살부터 최대한 50살까지 임신 가능한 연령이라고 한다면 강간 임신률은 상당히 축소될 수 있다; (7) 강강간의 희생자중에는 임신 가능한 상태에 있지 않을 수 있고, 임신이 불가능한 사람도 있고, 임신 중절을 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8) 강간자가 자식을 못나는 정자를 가질 수 있거나 정관수술을 할 경우도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치료를 받지 않는 상태로부터 얻어지는 임신률은 매우 적다.


        강간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 행해지는 의학적인 치료는 임신을 방지하는 데에 성공률이 높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1971년에 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stion of October는 Minneapolis와 Saint Paul, Minnestota에서 10년간 4500명의 강간을 다룬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이 발표에 의하면 어떤 임신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였다.


        강간의 결과로서 임신이 되었을 때에 임신된 확률보다는 그가 겪어야 하는 상처를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희생자는 임신의 문제에 어떤 선택을 갖고 있지 않다. 이제 원하지 않는 아이에 대해서 그녀는 결정만이 남아있다. 희생자가 나의 딸이고 교회의 회원이라고 할지라도, 그녀 안에서 자라나는 태아도 강간자의 잔인한 범죄의 희생자라는 근거로서 임신을 유지할 것을 나는 권면할 것이다. 죄가 없는 태아를 죽이는 것은 받은 상처에 모욕을 더하는 것이다. 이런 잔인한 위치에 있는 여성에게 특별한 지원 체제를 설립하기 위해서 어디든지 갈 것이고, 그녀가 받은 상처에 대한 보상을 찾는 일에 모든 일을 다 할 것이다.



4. 치료를 위한 낙태(Therpeutic abortions)
        엄마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낙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이루어진 의학의 발전은 그런 상황을 방지했다. 그러나 이런 곤란한 딜레마가 일어날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두 가지 악 중에서 적은 악을 선택을 우리들에게 요구한다. 엄마를 구하기 위해서 태아를 파괴해야 하는가 또는 태아를 살리기 위해서 엄마의 생명에 위험을 주어야 하는가?


        원리면에서, 나는 아이를 구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국가법으로 제정할 정도로 열성적이지는 않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엄마를 선택이 죽이는 자연법을 허락할 것인가 아니면 , 아이를 죽이는 사람이 될 것인가라면, 직접적으로 태아를 죽이는 일에 참여하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결과로서 여자를 죽도록 하는 수동적인 행위를 나는 선택할 것이다. 이 괴로운 문제는 수동적인 죽임이나 적극적인 죽임이냐이다. 태아를 죽이지 말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이 엄마의 생명을 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심각하고 어려운 의학적 환경들이 복잡한 윤리적 답변을 요구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이 책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중심 문제는 극도로 어려운 문제에 의해서 흐려지거나 어둡게 되어서는 안된다. 국가적인 논쟁이 이런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도 안되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낙태가 윤리적인 선택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이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극단적인 사건이 일반적인 법을 독점해서는 안된다.


A. 본문 요약
1. 낙태에 이유 중에 어떤 것들은 태아와 엄마와 가족들이 겪어야 할 예상되는 경제적인 어려움, 가능한 출생 장애, 다른 의학적인 질병, 결혼 전에 아이를 가지지 않으려는 마음, 강간과 근친상간으로서 이루어진 임신등이 있다.

2. 낙태를 위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경우에 있어서 낙태는 예상되는 고통에 대한 “빠르고  흠이 없는 해결책으로서 인식되어졌기 때문이다.

3. 낙태의 아주 적은 수만 강간과 근친상간의 결과로서 행해진다. 치료를 위한 낙태-엄마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행해지는 낙태 또한 매우 드물다.

4.입양은 낙태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원하지 않는 혼혈아와 소수 민족의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생명권 옹호자들은 이런 아이들의 입양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5. 극단적인 사건이 낙태 토론의 초점을 흐리게 해서는 안된다. 국가적인 문제는 요구되는 낙태이기 때문이다.

B.연구문제
1. 낙태가 살인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허용할 수 있는가?

2. 즐거움을 찾고 고통을 피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인가?  왜 그런가 또는 왜 그러지 않은가?

3. 문제가 있는 임신 상황에서 태아의 살 권리를 어떻게 연민을 가지고 확언해야 하는가?

4. 왜 낙태 옹호자들은 그들의 논증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극적으로 드문 임신 상황에 집중을 하는가?

5. 핸디켑을 가진 생명이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

6. 육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 갖고 있지 않는 사람보다 근본적으로 덜 행복한가?

7. 왜 기독교 단체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 아이들을 입양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인가? 이것을 바꾸기 위해서 무엇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P.S.  Abortion : Rational Look At An Emotional Issue by R.C. Sproul의 제 10 장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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