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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름학기 윤리학 : 제 9 장 낙태 찬성자들의 입장
임 바울  2013-07-10 16:16:53, 조회 : 5,831, 추천 : 518

                                                        제 9 장
                                            낙태 찬성가들의 입장


        우리가 알지 못한다면, 그때에 우리는 도덕적으로 생명의 편을 선택해야 하지 않는가? 당신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에게 갔을 때에, 그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스스로 결정을 할 수 없었을 때에, 당신은  그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때까지 살아있는 것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은 삽을 들어서 그 몸위에 흙을 덮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낙태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똑같은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President Ronald Reagan-

        
        낙태에 대해서 진행되는 토론에서, 낙태 찬성의 입장은 대중들의 견해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과거 40년 동안,  투표결과는 모든 미국인의 1/2에서 3/4이 이런 진술에 동의를 하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낙태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그러나 나는 또한 낙태를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모든 여성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느낀다.”

        왜 낙태 찬성가들의 입장이 이 정도로 매력적이고 열성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것인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투쟁적인 낙태 찬성가들의 역사적인 전략을  관찰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1970년도 초에, 즉  Roe Vs. Wade의 판결전에, 낙태 합법를 위한 투쟁적인 옹호자들이 만나서 미국에서의 낙태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계획을 짜고 전략을 세웠다. 후에 그들의 전략이 낙태에 대한 생각이 바뀐 탈당자에 의해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자신이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고 있다고 온전히 확신을 하기 전에 수 천의 낙태 시술을 수행한 의사 Bernard Nathanson은  초기 낙태 찬성가들의 계획을 발표하였다.

        전략은 고전적이지만 효과를 발휘하였다. “분열시키고 정복하라”는 계획이었다. 먼저 낙태 찬성가들은 그들 자신에게 물었다, “ 낙태에 대해서 가장 치열한 반대가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 나온다는 것을 바른 판단을 하였다.  이 강력한 영향력과 평형을 이루기 위해서, 그들은 주요 개신교 교단의 지지자들을 영입하려고 하였다. 낙태 찬성가들은 공개적으로 낙태 찬성의 입장을 지지해달라고 이런 교단의 관계자들에게 요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 pro-choice"라고 불리우는 덜 비위에 거슬리는 중간 입장을 제안하였다.”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발산되는 독재성을 인식하게 함으로서, 이것을 반대하려는 감정들에 호소를 하였던 것이다.    

        동시에, 많은 주요 교회들은 여성신장론에 관계된 중요한 문제의 논쟁에 억류되어 있었다. 여성 안수에 대한 울타리가  부서지고 있었으며, 여자들은 전례없는 교회의 권위와 권세를 획득하였다. 이런 파죽지세와 같은  획득은 고통스러운 값을 치룬 결과였으며, 많은 여성들은 이런 획득이 확실하지 않은 것을 불안하게 생각하였다. 이런 낙태 합법화의 입장을 이런 여성의 권리에 연결을 시킴으롯, 낙태 찬성가들의 전략은 개신교단으로부터 낙태 합법화를 위한 많은 지지를 얻는 일에 효과를 거두었다. 낙태 찬성가들은  교회 안에서 여성 권리의 물결에 동승하였다.  교회에서 여성의 권리의  승인을 위해서 투쟁을 하였던 사람들이 낙태 합법화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권리를 위한 그들의 활동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위기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교회밖에서, 세상 사람들은 여성 신장론과 귀중한 선택의 자유와 연결이 되었있기 때문에 선택권( 여성 선택권 pro choice)의 견해를 채택하도록 격려하였다. 선택의 자유는 미국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것중에 하나이다.

        낙태 찬성자들의 전략의 강조는 사람들로 하여금 낙태를 찬성하는 분명한 입장으로 바꾸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정부의 간섭이나  강제없이  각 개인의 양도할 수 없는 선택의 권리를 확인하도록 유도하였다. 이것이 권위있는 진술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낙태를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견해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각 개인의 자유와 양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낙태 찬성자들의 전략이 여자의 권위와 품위, 개인의 자유, 양심의 사적인 문제와 교회의 윤리기준을 무시할 정부의 자유에 초점을 맞추었고, 낙태의 주요한 문제는 - 태아의 권리-뒤로 물러가게 하였으며, 점차적으로 부차적인 문제로 물러가게 하였다.


1. 법적인 동맹 : 낙태와 선택권(Pro- abortion and Pro- choice)

        낙태 찬성 전략가들이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을 선택권 중간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분명하게 감지하지 못하였다. 선택권은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매우 안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법적인 문제에서는 중간이라는 것은 없다. 이것이 바로 낙태 찬성 전략의 우수성이다. 법적인 견해에서, 선택을 위한 투표는 항상 낙태를 위하는 투표가 된다. 이 두 입장의 차이점은 하잖은 것이고 , 법적으로는, 그들은 같은 진영에 있는 동맹자들이다.

        현재의 법은 낙태를 명령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법은 그것을 허용한다. 법이 낙태를 금지하지 않는 한, 낙태와 선택권의 원인을 제공해준다. 개인이 선택권에 투표를 할 때에, 그들은 낙태를 허용하는 것으로 투표를 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활동적인 낙태 찬성가들이 목적했던 것이다.

낙태 옹호자들은 그들은 침묵하는 다수를 그들의 동맹자로 얻음으로서 그들의 적은 지지자를 이용해서 국민 전체의 다수 의견으로 만들었다. 낙태 옹호자들이 낙태 반대자들과 태아의 생명을 옹호하는 사람들보다 열등하게 숫자가 적었지만, 여자의 선택권을 주장하는 모든 사람을 모음으로서 극적으로 그들의 지위를 부상시킬 수가 있었다. 중요한 이동이 논쟁에서 사용하는 용어에서 일어났다: 낙태 옹호자들은 스스로 “여자의 선택권”이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이것이 중간에 입장에 위치한 선택권 자들로부터 반발을 일으킬 것인지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그들은 여자의 선택권이 분명하게 낙태 찬성과 동일한 것이 증명이 되면 반대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건강 보험 개혁과 낙태를 위한 납부된 세금을 통한 보조금에 최근의 토론은 “ 선택권과 낙태 옹호자들의 연합” 침식하기 시작하였다. 성실하게 선택권을 주장하는 사람은 의도하였던지, 의도하지 않았던 지간에 낙태 옹호자들의 입장과 법적인 동맹이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극단적인 진영을 피하기 위해서 선택권의 입장을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취한다면, 법적인 입장에서 여러분은 낙태 찬성가의 잔영을 선택하였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한다.



2. 선택권의 의미(The Meaning of Pro-choice)

        여성 선택권의 입장의 본질이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자신은 낙태를 하지 않지만 그것을 하도록 다른 사람의 권리를 부정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어떤 여자가 말을 한다면, 어떤 근거에 의해서 이 여자는 낙태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녀는 가능하면 많은 아이를 갖고 원하고, 원하지 않는 임신을 직면하는 것조차 기대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 여자는 태아가 살아있는 인간 또는 태아의 신분에 대해서 확신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도 태아가 살아있는 사람이지만 이 견해를 다른 사람에게 부과하기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선택권의 급소이다. 선택하는 권리는 절대적인 권리인가?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을 선택할 도덕적인 권리를 우리는 갖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대답을 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모든 법은 어떤 사람의 선택을 제한하고, 통제한다. 이것은 법의 당연한 본질이다. 우리가 입법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선택을 제한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입법하는 것을 멈추어야 하고 투표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선택의 자유는 절대적인 권리가 아니라는 것을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인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어떤 사람도 자신을 위한 절대적인 법은 없다. 우리가 순수한 상대주의 윤리체계를 묵인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한, 그리고 이런 체계속에는 법과 사회가 불가능하기에, 개인인 자율적이라는 전제로부터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추상적인 것에서 실제적인 것으로 이동해보자. 선택권 옹호자들은 그들의 개인적 소유권을 보호하는 법을 반대할 것인지 나는 궁금하다. 어떤 사람의 TV를 훔치기 위해서 침입해온 도둑이 이런 선택을 할 양보할 수없는 권리를 갖고 있는가? 여자를 강간을 선택할 권리를 갖고 있는가? 이런 극단적인 예들은 선택의 자유가 절대적인 권리로서 고려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한다.


        어떤 선에서 선택의 자유가 끝나야 하는가? 나의 선택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양보할 수 없는 생명과 자유의 권리에 해치는 곳에서 끝이 나야한다고 믿는다. 어떤 태아도 자신의 파멸을 선택하거나 부인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미국에서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장소는 여성의 자궁이라고 말을 한다. 수 백만명의 태아에게, 자궁은 죽음을 위한 무덤이 되었다. 거주자는  재판이나 변호의 말도 한번 못하고 약식으로 집행된다. 이 집행은 그대로 수족이 전부 잘라져나가는 것을 포함한다. 이런 설명이 너무 생생한가? 너무 감정을 자극하는가? 아니다. 그 설명은 진실하기 때문이다.


        선택하는 자유는, 신성한 것이지만, 사람의 생명을 파멸할  제 멋대로의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인간 태아를 버리는 것은 정의를 버리는 것과 같다.


        선택의 자유를 그렇게 귀중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Patrick Henry로 하여금 “ 자유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울부짖도록 했던 것이 무엇인가? 확실히 우리는 자신이 어떤 것을 결정하기를 원한다.  외부 강압아래에서 산다는 생각은 혐오스러움에 틀림이 없다. 우리는 생각하는 피조물이고, 선택을 하는 우리의 자유를 값지게 여긴다. 우리 대부분은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감시가 삼엄한 감옥소에서도, 선택을 할 사람의 권리는 전부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


        모든 태아와 낙태된 아이들에게 전적으로 거절된 것은 - 내 자신의 견해에서 말하자면-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원칙이다. 낙태를 할 것인지를 엄마의 결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전 생애는 그녀의 손에 달려있었다. 그녀가 낙태를 선택했다면, 나의 인생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는 진짜 사람이다. 그러나 전에 우리는 선택을 할 우리 자신의 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하였다. 우리의 존재를 전적으로 다른 사람의 선택에 달려있었다.

              선택할 권리에 대한 두 번째 중요한 점은 태아의 생명에 대해서 언제 도덕적인 선택을 하느냐는 질문이다. (이것은 성적 윤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드문 토론의 주제이다.) 아이를 가질 것인가 안가질 것이가를 선택할 시간은 임신을 하고 , 그것이 자랄 때에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니다. 강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피임을 하면서 관계를 맺을 것인가 아니면 피임없이 관계를 맺을 것인가는 여전히 선택의 문제이다. 성에 관한 것이든, 성에 관계된 것이 아니든, 우리가 내린 선택은 반드시 결과를 가지고 온다. 선택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윤리와 법의 규칙이다. 우리가 성관계를 가졌을 때에, 우리는 다른 인간 생명을 의도하지 않거나 원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성관계는 번식과정을 시작하는 것이고 그런 자손들을 생산할 수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후손을 죽이는 것은 이런 결정을 다루는 책임있는 또는 윤리적인 방법이 아니다.


3. 선택권(Pro-choice)과 여자 권리(Pro women)의 입장

        선택권과 여자 권리의 입장 사이에 역사적으로 밀접한 연결을 설명하였다. 낙태 반대를 하는 것이 여자의 권리를 반대하는 것과는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태아의 생명을 주장하는 것이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을 한다. 여성은 그들의 성(性 )때문이 아니라 본질적인 박애정신 때문에 가치와 품위를 가지고 있다. 낙태를 찬성하는 투표는 생명의 존엄성- 남성 생명의 존엄성뿐만 아니라 여성 생명의 존엄성을 대항하는 투표이다. 낙태는 성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생명의 문제이다.


        여성 신장론은 인간 품위의 잔인한 추구에 의해서 진행되었다. 바로 이것이 여성 신장론이 낙태 찬성론 또는 선택권의 입장과 연결을 시키는 근본적인 외곡과  지나친 불일치가 있는 이유이다.  낙태 찬성가 선택권은 인간 품위와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인간의 품위를 저하시키고, 함축적으로 여성의 품위를 부인하는 것이다.


4. 당신은 선택권인가 아니면 미결정인가?

        결론적으로, 낙태가 인간 생명을 취한다는 확신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낙태를 피하지만, 다른 사람의 선택을 침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선택의 권리를 기본적인 생명의 권리 위에 우선권을 두는 위험한 윤리적 오류를 범한 것이다. 내가 살 권리를 잃어버리면, 선택할 권리를 논의의 여지가 없다. 선택할 권리는 생명의 권리에 근거를 둔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들에게 권고한다. 당신이 여러 가지 이유로 여성 선택권의 입장을 갖고 있다면, 태아의 생명권으로 바꾸기를 촉구한다.


        그러나 선택권인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불확실하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바로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쓴 주요 동기이다.  나의 목적은 결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태아 생명권의 견해가 옳음을 확신시키는 것이다. 태아가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증거가 너무도 많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증거가 있다고 할지라도, 여러분 중에는 태아가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의아해 할 수 있다.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도덕적으로 또는 윤리적으로 불확실할 때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취급한 제 5 장을  다시 보기를 원한다. 당신 자신의 의견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그 견해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기가 싫다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


        나는 다시 한번 선택권의 견해는 미결정이 아니며 , 중간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힘차게 말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선택의 자유는 낙태를 선택할 자유를 포함하고 있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것이다. 낙태 문제의 반대(con)하는 것이 아니라 찬성하는(Pro) 쪽으로 가게 되어 있다.

        도덕적 불확실이라는 근거로 선택권의 입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가?  나는 당신이 다른 선택이 있다고 본다. 윤리적으로 의심스러운 입장에서 벗어나는 선택이 있다. 당신은 결정을 하지 않았다고 왜 말하지 않는 것인가? 결정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낙태 찬성도, 태아 생명권도, 선택권의 입장도  택하지 않았음을 의미해야 한다.


A. 본문 요약
1. 미국에서 현재 낙태 상황은 어느 정도 낙태 찬성가들의 신중하게 계획되고 집행된 전략의 결과이다.

2. 선택권이 중간 입장이 아니라 법적인 입장에서 보면 낙태 찬성에 대한 또 다른 말이다.

3. 선택의 권리는 더 기본적인 생명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절대적인 권리가 아니다.

4. 인간의 생명을 생산할 것인가 또는 막을 것인가에 대한 합법적인 도덕적 그리고 윤리적 선택은 성관계 이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5. 태아 생명권, 낙태 찬성 또는 선택권의 입장을 불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입장이 있다. : 미결정( Undecided)



B. 연구문제
1. 선택권의 입장이 사람의 흥미를 끌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2. 태아 생명권 옹호자들은 어떤 종류의 전략을 사용해야 하는가?

3. 낙태 찬성가 또는 선택권의 입장이 왜 여성의 권리로 간주되었는가?

4. “나는 낙태를 찬성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나의 견해를 강요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라는 진술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5. 낙태 찬성과 선택권의 입장은 왜 실제적으로 여성 권리를 부정하는 것인가?

6. 태아에게는 어떤 선택이 주어지는가?



P.S.  Abortion : Rational Look At An Emotional Issue by R.C. Sproul의 제 9 장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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